[오피니언] 책임감을 줄이는 법 [사람]

나는 어째서 책임감으로 무장했는가.
글 입력 2022.10.23 12:5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상담.jpg

 

 

 

최근 상담을 다니기 시작했다.


 

전문적인 상담은 아니고 학교에서 하는 상담 프로그램에 지인이 내담자가 필요하다고 하여 일주일에 한 번씩 받기로 했다. 전문 작가에게 받는 상담은 아니지만, 인생 처음의 상담이었다. 그동안 상담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힘든 일이 생기면 가장 친한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상담하거나 하면 됐으니까.

 

하지만 친구들도 하나둘 바빠지고 만나기 힘들어졌다. 게다가 영원할 것 같았던 사이에도 균열이 생기다 보니 내가 가진 힘듦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어쩌다 보는 친구들에게 항상 밝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학 친구들도 이제는 대부분 졸업하고 취직 준비를 하다 보니 그들도 힘들어 보였다. 서로 힘은 덜 아는데 '내가 힘들다, 들어달라.' 같은 이기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상담 시간이 편했다. 사람을 만날 구실이 되어주기도 했고 나의 과거를 알고 오로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해결책을 같이 생각해줄 사람이라고 느껴지니 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책임감 얘기를 했다. 최근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가입했던 동아리에 일이 생겼다. 그저 자료 정리만 하려고 했는데 정신 차리니 이 사람 저 사람 혼자서 연락을 돌리고 자료도 혼자 만들고 다들 내가 주축으로 일을 벌리는 줄 알더라. 그걸 들은 상담자는 나와 내담자와 상담자가 아닌 친한 선배와 후배 사이였을 때부터 내가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누구나 다 그런 줄 알았는데 오래 몸담았던 동아리라고 아무나 그렇게 전투지휘 해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은 적다고 말해줬다.

 

나는 그렇게 느끼지 못했는데 이런저런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의지하는 게 부담스럽다가도 좋았다. '내가 누군가에게 의지가 될 정도의 인간이 안 될 텐데.'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데도 누군가 의지가 된다고 이야기해주면 그 기대에 더욱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정이 많다고 했다. 사람에게 대한 정이 그게 책임감이 되었고 그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그것 또한 나를 옥죄고 있는 줄은 몰랐다. 모자라도 문제고 과해도 문제인 것처럼 조금은 가벼워지고 싶었다.

 

 

씽크빅.jpg

 

 

 

세상은 대신 싸워주는 것 말고도 힘이 되는 방법이 많다.


 

사람과의 인연은 소중하다. 인생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나와 마음이 맞는 사람은 만나기 힘드니까. 그래서 최선을 다해 그들을 대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나는 노력하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맞지 않는 부분은 그들에게 맞추고 그들이 힘든 일이 있다면 대신 맞서 싸워주고 해결해주었다. 근데 그게 또 되게 힘든 일이더라 심적으로.

 

모두와 친해지려 했지만, 끝까지 나를 거부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도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과 거리를 뒀더니 나를 뒷담하고 파벌을 나눈다는 소문을 퍼트리더라.

 

어린 후배들이 다른 사람과 싸우는 게 싫어 앞서서 막아주거나 뒤에서 도와주었다. 그런 나를 저들은 보이게, 보이지 않게 공격하고 까 내렸다. 점점 사람이 너덜너덜해지는 기분이었다.


상담사 친구가 말해주었다. 너무 책임감에 그렇게 까지 남을 신경쓰며 상처받고 힘들어 할 필요 없다고. 항상 앞에서 그럴 필요 없다고 그들도 그런 일을 경험하며 강해져야지 내가 감당하지 않아도 될 일은 피하자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들의 뒤에서 그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듣고 격려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이야기를 더 붙어주었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꽤 충격을 받았다. 내가 그들을 생각한다는 마음에 그들이 강해질 기회를 놓치게 한 걸까. 그것만으로도 그들에게 힘이 될 수 있구나. 그 이야기를 듣고 인간관계에서 힘을 좀 빼기로 마음먹었다. 대신 싸워주거나 뒤에 소문이 내 귀에 들어올 때만 바로 잡아주고 날 헐뜯는 사람들은 무시하기로 했다. 피할 수 있는 건 피하자. 선을 그어 멀리서 보기로 했다. 내 인생은 내가 주인공이니 싸울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 인생에서까지 주인공이 아니니 그들에게 관찰자 시점으로 가끔 그들의 인생에 도움을 주거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으로 말이다.

 

 

 

도망치다 보면 다시 제자리가 되곤 한다. 그런데 또 다른 관점을 가지고.


  

왜 인간관계에서 유독 책임감으로 힘들어하는 것일까.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최근 취업 준비나 전공 공부 자격증이 겹치면서 그것들이 중요한 것은 알기만 하고 싶지 않았다. 그곳에서 회피하여 도망쳐 다다른 것이 사람이라 그런 것이 아니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기 싫은 일을 피해 다른 것에 집중하다 보니 거기서 내가 가진 책임감이 폭발하고 있는 게 아닐까? 맞는 말 같았다. 마치 시험 기간 대청소와 같은 느낌이다.

 

내게 닥친 나의 문제를 마주하기 싫어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 자꾸 도망치다 보니 여러 인간관계에 휘말려 그들에게 힘을 쏟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해결책이 내게 닥친 일들을 직면하여 그들로 관심을 돌려 책임감을 분산시키자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 일로 괜히 스트레스받기보다는 내 일을 해결하고 얻는 성취감으로 책임감을 줄이자는 것이었다. 진짜 천재인 줄 알았다. 혼자였다면 생각도 못 할 발상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이어리를 쓰기로 했다.


일을 조각조각 단계를 나눠 차근차근 해결해가면서 작은 성취감들을 쌓을 수 있게. 화려하게 꾸민 인터넷 속 다이어리까지는 아니라도 조금씩 일정을 정리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확실히 좋았다. 작은 성취감이 나를 계속해서 내 일하게 했다. 나는 나의 일로부터 도망쳐 인간관계로 도망쳤지만, 다시 그곳에서 도망쳐 원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말이다.


매주 상담은 꽤 심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매 상담이 기다려질 정도로 말이다. 내가 생각도 하지 않은 이렇게 된 원인을 찾아주고 내 관점으로는 찾을 수 없었던 새로운 발상의 해결책을 주곤 한다.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은 생각보다 좋은 영향을 주기도 하는구나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속 시원하게 털어놓는 것.

 

취직을 하고 사회인이 되어서도 혼자 견디기 힘들 때 상담이 나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에게 권해준 후배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책임감이라는 감정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삶에 있어 굉장히 중요하지만 다른 것들도 그렇듯 과하면 독이 되더라. 옭아 메인이라고 느껴지면 나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맞을 것이다.

 

상담을 진행하며 책임감이라는 감정은 어쩌면 다양한 이름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작용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성취감이나 원동력 같은 말이다. 나는 그 중 '책임감'이라고 불리는 형태로 인간관계에서 가장 크게 작용시켰던 것이겠지. 이미 가득 가진 것을 어쩔까 싶지만, 형태를 바꾸거나 줄여서 나한테 힘들지 않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 감정을 바꿔나갈 생각이다.

 

 

[빈민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