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청춘

청춘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나날들
글 입력 2022.10.2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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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YUKOH - Gang Gang Schiele <24 : How to find true love and happiness>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친한 동생과 청춘에 대해 논했다. 불안하지만 행복한 것, 돌이킬 수 없는 젊음을 온몸으로 만끽하는 것, 당장 알 수 없는 미래가 안개 같아도 그 너머에는 밝은 햇살이 비추어지고 있다는 것. 20대 초중반의 우리가 생각하는 청춘은 이런 것인가보다.

 

 

 

청춘은 원래 아파야만 하는 걸까


 

청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푸른 봄. 어려서부터 청춘이란 자유분방하고 열정적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매진하는 건 줄 알았다. 그래서 수능을 치르고 난 직후에, 성적과는 상관없이 들떠있었다. 드디어 나도 20살이 되는구나. 드디어 나도 청춘이 되는구나.

 

재야의 종소리가 울리고 나는 20살이 되었지만 성인의 나이라는 건 생각보다 별 볼 일 없었다. 미성년자에게 판매가 금지된 목록을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다는 점 정도가 직전까지 19살이었던 순간과는 다른 점이었고, 맥주를 처음 시키자마자 든 설렘은 곧 불안함으로 바뀌었다. 이제부터는 모든 행위의 책임자가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 두려웠기 때문에 술도 조금만 마시다가 곧 잔을 내려놓았다.

 

내게 20살은 너무나도 아픈 시기였다. 정말 많이 울었고 정말 많이 좌절했다. 그렇다고 21살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면 글쎄, 아니라고 답하겠다. 내가 원하는 공부를 극심한 반대로 인해 포기해야만 했기 때문에 관심도 없는 공부를 하느라 삶 자체가 지긋지긋했다.

 

그러다보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막심해져서, 항상 우울했다. 과연 이 길이 맞는 걸까, 나는 내 적성과도 맞지 않는 공부를 해야만 하는 걸까. 이런 고민들을 그 후로도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진행했기 때문에 20대 초반을 계속해서 우울하고 힘들어하며 보냈다.

 

불안감. 그것은 내게 백동(白冬)을 몸서리치게 겪게 한 것이었으며 재미없고 지루한 성인이 되어버리게 만들었다.

 

 

 

내 청춘은 내가 결정하기로 했다


 

올해 초, 나는 더 이상 이렇게 살기 싫었다. 그 청춘이라는 게 도대체 뭐길래 사람들이 청춘, 청춘 계속 얘기를 하는지 궁금해 경험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되고 싶었던 그 '청춘'이 되고자 스스로 변화를 만들었다.

 

일단, 나 자신에 대해 좀 더 공부했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해야 안정을 느낄 것인지. 나는 내가, 내가 평생을 사랑해 온 것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술, 그것은 내 삶을 관통하는 주제이고 절대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상과 현실에 대한 괴리감에 대해, 그리고 불안한 우울감에 대해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결국 난, 어떻게든 예술을 하기 위해 태어난 운명이고 어떻게 해서든지 예술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 먹었다. 그렇게 살기로 굳게 결심했다.


두 번째로, 내 마음가짐에 대해 반성했다. 절망과 좌절을 경험하면 그 속에서 최대한 마음껏 힘들어했었다. 그래야 다음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우울함 속에 너무나도 깊게 머무르는 것이 장기적으론 내게 좋지 못하다고 느껴서 나 스스로 극복할 수 있게끔, 다른 즐거운 일들을 찾아 해봤다. 여러 실험을 하며 나 자신에 대해 분석한 결과, 지금까지 해왔던 방법의 정반대인, 행복을 찾아서 끝없이 탐구하는 과정 자체가 내게 그 행복 자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의 나는 언제나 행복할 수 있는 몇 가지 소일거리들을 만들어 놓는다. 덕분에 끊임없이 나 자신을 환기하며 살아있는 기분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나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유독 내게 엄격했던 나의 완벽주의적이고도 강박적인 가치관과 기준을 내려놨다. 문득, 언제 어디에서나 시달리고 평가받는 내 자신이 안쓰러웠다. 나 자신도 나를 심사해버리는 것이, 내가 회피하고 싶었던 경쟁 구도를 답습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나라도 나를 전폭적으로 믿고 지원하고 응원하기로 마음 먹었다. 나 자신을 사랑하니 삶을 대하는 나의 가치관에 사랑이 가득해졌다.

 

나 자신에 대해 변화가 생긴 이후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경험들도 해보았다. 비즈니스적인 업무도, 그리고 내가 즐길 수 있는 취미 활동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했다. 함께 여러 일들도 진행하고 즐겼다. 마음이 편안해진 이후로 항상 여유를 가지며 사람들을 대하다보니 일적으로도, 그리고 사람으로서도 나 자신이 인정받고 사랑받게 되었고 언제나 웃게 되었다.

 

내게도 어느 순간 청춘이 어울리게 되었다.

 

 

 

청춘을 누리는 방법


 

며칠 전, 예전에 만들어 둔 자료를 찾느라 옛날 내 메모장을 키자 20대 초반의 내가 작성한 날것의 글들을 보았다. 지금의 내가 본 그 때의 나는, 너무 아프지만 제발 극복하고 싶어 몸부림치는 우는 아이다. 그 때의 내가 쓴 글 중 일부를 발췌해보았다.

 

 

나는 행복하면 불안하다.

떨어지는 낙폭이 커질수록 비참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행복해도 불행하고 싶다.

언제나 불행하면, 그만큼 행복해질 때 기분이 좋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항상 나는 슬프다. 그러나 이만큼 안정적일 수 없다.

 

 

지금의 나는 더 이상 행복해도 불안하지 않다. 행복하면, 그 행복을 최대한 더욱 느끼려고 한다. 행복에 진정으로 감사하고 그것을 사랑할 줄 알게 되니까 나의 내면이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행한 일이 생겨도 꿋꿋하게 이겨나갈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 또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며, 불행한 지금도 내겐 행복한 일들이 수도 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의 내가 비로소 청춘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불안감은 존재하고 미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행복하고 자유롭다. 나는 내 삶을 사랑하고 있으며 그 삶은 푸르다. 물론, 아파하던 20대 초반의 나도 잊진 않지만, 그건 '아프니까 청춘이다' 따위의 말에나 어울리는 슬픈 어린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밴드 혁오의 앨범 중에는 <24 : How to find true love and happiness>가 있다. 나는 이 구절을 19살 때부터 지금까지 쭉 마음 속에서 되내이고 있으며 타투로 내 심장 가까이에 새길 생각이다.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찾는 방법은 바로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 나를 사랑하는 순간은 나이와 상관없이 청춘이지 않을까. 사랑으로부터 우러러나오는 젊은 에너지가, 곧 청춘일 것이다.


나의 어리버리하지만 사랑하는 동생아, 우리 모두 청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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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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