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사람은 모르겠어

글 입력 2022.10.21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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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관계에 대한 글을 쓰기에 참 좋지 않은 시기다. 번아웃과 우울증을 2년째 반려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참 잘 모르겠다. 바닥에 드러누워 생떼 부리는, 그저 나에게 관심을 달라고, 사랑해 달라고 징징거리는 아이의 심정으로 관계에 대해 적어 본다.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에 공감할 수도 있으리라.

 

나에게는 만 원짜리 싸구려 목걸이가 있다. 잘 꾸밀 줄 모르는 나에게, 왠지 액세서리는 많은 돈을 투자하기에 아깝게 느껴지는 물건이다. 얇디얇은 그 목걸이는 잘도 엉키곤 한다. 아무 데나 쑤셔 넣어놓다 보니, 아무렇게나 엉켜버린다. 이번에야말로 단단히 엉켜버려서 풀기를 포기한 채 방치해두었다. 쓸 목걸이라곤 이거밖에 없는데. 오늘은 꼭 풀고야 만다는 오기로 이쑤시개로 콕콕 찌르며 목걸이를 풀어가기 시작했다.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목걸이는 약 두 시간 만에 원상태로 돌아갔다. 물론 그 과정에서 화도 나고 짜증도 나긴 했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풀 수 있었던 건데, 왜 방치해뒀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관계도 꼭 이 목걸이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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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학창 시절 친구였던 s에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너랑 얘기할 때 종종 이야기가 끊긴다고 느낀 적이 꽤 있어. 너 하고 싶은 말을 많이 하는 느낌?” 데엥-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때가 그 친구랑 안 지가 연수로 3년째가 되는 해였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그래?”라고 어색하게 답장을 남긴 뒤 고민에 빠졌다. 우선 충격과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다. 너는 내 편인 줄 알았는데. 너는 나한테 좋은 말만 해줄 줄 알았는데. 그러고 나선 내가 싫어졌다. 나는 대화할 때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구나 하고. 당시엔 긍정적인 반성이라기보단 나에 대한 자책밖에 하지 못했다.

 

그렇게 꽤 오래도록 타인과 대화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둘만 남아 대화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걸까 봐. 내가 이 대화를 어색하게 만들까 봐. 내가 이 관계를 좋게 발전시키는 데 걸림돌만 될까 봐. 이 두려움과 불안감을 극복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당시에 받았던 상담이 도움이 되었다. 관계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함께 하는 거라고. 미지 씨 혼자 다 짊어지려고 하지 말라고. 그 사람과 친해지지 못한 건 내 잘못이 아니라 손바닥이 맞닿지 못한 거라고.

 

나는 용기를 내어 오랜만에 다시 s를 만났다. 이번에는 더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우리는 그날 밤 바닷가를 걸었고 함께 흑맥주를 마셨다. 다시 만난 s는 내게 왜 자기를 친한 친구로 생각하냐고 물었다. 그리곤 그 다음 날엔 내가 사소한 부분에서 배려가 부족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 카톡 대화가 우리의 마지막 대화였다. 나는 어렸고, s와의 관계에서 지쳐버렸다. 나는 s를 많이 좋아했지만, 그녀의 ‘친구’를 뽑는 오디션에서 나는 탈락해버린 것 같았다. 그녀가 원하는 사람은 되어줄 수 없을 것 같아 s를 떠났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 애가 나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을까 봐 두려웠었다.” - 「쇼코의 미소」, 최은영 中

 

어떤 우정은 꼭 연애 같다. 내겐 s와의 관계가 그러했다. 내가 스스로 끊어 낸 관계를 마치 미련 있는 전 애인 마냥 못내 자꾸 뒤돌아보곤 했다. 그건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슬쩍슬쩍 훔쳐보던 s의 인스타그램 친구를 신청하고서 가슴을 졸였다. s의 친한 친구 목록에 내가 있다는 게 신기하고 우스웠다. 또한 지금도 나의 인스타그램 친한 친구 목록에는 s가 있다. 내 친한 친구 목록 선정 기준은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나의 비밀을 알고 있는가 없는가인데, s는 알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나의 비밀을 말했다는 건 상대를 ‘좋은 사람’이라고 믿었다는 뜻이다. 그래 나는 종종 내 스토리를 본 사람 중에 s가 있는지를 꼭 확인했다. 내가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치졸한 마음에서였다. 내가 갔던 장소에 s가 간 사진을 올린 걸 보며 여전히 비슷한 취향에 묘한 기분을 느끼곤 하기도 했다.

 

1년 후에, 여행지에서 우연히 s를 만났다. 한 책방에서였다. 아니, 어떻게? 그 여행지는 s의 거주지이기는 했지만. 그날 그곳에 갔던 건 여행 계획의 일부도 아니었고, 좋지 않은 날씨에 급히 찾은 곳이었다. 거기서 그렇게 만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다시는 마주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운명 따위를 믿지 않는 나지만, 하늘이 찌질하게, 미적지근하게 어물쩍거리는 모습을 보고서는 가서 말이라도 걸어봐라- 하고 보내준 것 같았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너는 날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무슨 생각을 할까. 갑작스레 연락을 끊어버린 내가 밉진 않을까. 그렇게 고민하고 고민하다 겨우 건넨 인사에 s는 우선 놀랐고, 그리고 웃어주었다.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 그때 나눈 게 대화라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분명 “연락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는 누구도 먼저 연락을 보내지 않았다.

 

그 만남을 통해 확신할 수 있었던 건 적어도 우린 서로를 미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3


 

왜 그렇게 s에게 집착했는지 모르겠다. 처음 만난 고등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왜 이렇게 그녀에 대해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왜 우리가 더 이상 안부 인사도 묻지 않는 사이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때, 조금 더 어렸던 난 정말로 내가 빠져있는 주제에 대해만 상대를 신경 쓰지 않은 채 신나게 떠들어댔는지도 모르겠다. 너도 가끔은 내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여전히 친구였다면, 꽤 좋은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만약에 이 글을 네가 읽게 된다면, 넌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다.

 

사람을 모르겠다. 한 사람을 겨우 좀 알았다 싶으면,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나 내가 세운 가설들을 깡그리 무너뜨리고는 한다. 차라리 고양이 쪽이 훨씬 쉽다. 나와 동거하는 고양이 두 마리의 행동은, 예상을 잘 벗어나지 않는다. 울음소리만 들어도 이제는 화장실에 가고 싶은지, 놀고 싶은지, 배가 고픈지 알아맞추는 게 가능해졌다. 그에 반해 사람은 한순간에 마음이 휙 바뀌기도 하고, 쉽게 표정과 다른 마음을 짓기도 한다. 서로가 어긋난 것도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 타이밍이 달랐거나, 성격과 취향이, 가치관이 달랐기 때문에, 그 사소한 차이가 큰 간극을 만들어내는데 왜 그렇게 걷잡을 수 없게 되어버리고야 마는지도 잘 모르겠다. 왜 그 손을 다시 잡는 건 이렇게나 어려운지.

 

나는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나는 사람 없이 잘 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이 없어서 외롭기도 하고, 사람들과 함께할 때 큰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오기를 부리고 있다. 혼자서도 잘 살고 싶다고. 사람이 없는 허전함에 아등바등 사람을 만나려 노력해보았던 시기도 있었고, 나는 혼자서 잘 먹고 잘산다며 고독을 즐기는 시기도 있었다. 그 사이클을 반복하고 있다. 지금은 후자에 가깝다.

 

나는 약간 파인 상의를 입을 때만 꼭 목걸이를 착용하곤 했다. 엉킨 목걸이를 풀기 귀찮거나 목걸이의 행방을 못 찾을 때면, 그냥 어깨를 으쓱하고 외출하기도 한다. 목에서 쇄골 언저리가 좀 슴슴하고 허전해도, 그건 그거대로 나쁘지 않다. 앞서도 말했듯, 나는 잘 꾸며낼 줄 모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검은색 브이넥 위의 목을 만지작거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김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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