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로 박제된 불편한 진실들 - 기울어진 미술관 [도서]

낭만적 시선으로는 볼 수 없던 이야기들
글 입력 2022.10.19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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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미술관 -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이야기


 

도서 <기울어진 미술관>의 부제는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이야기'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게릴라 걸스”를 소개하며 이야기의 포문을 연다.

 

게릴라 걸스란 익명으로 활동하는 미국의 여성 미술가 그룹이다. 이들은 1984년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회화와 조각 국제 통람' 전시의 초청 작가 165명 중 단 13명만이 여성 작가였던 사건을 계기로 결성되었으며, 이후 미술계 및 사회 전반에서 행해지는 성차별에 저항하는 활동들을 선보였다.

 

특히 화제가 된 작품이 바로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벌거벗어야 하는가?'이다. 이들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현대 미술 섹션 중 단 5퍼센트만이 여성 미술가의 작품인데 반해 미술관이 소장한 누드 그림 중 85퍼센트가 여성이라는 점을 꼬집었다.


저자는 이에 대해 미술관은 필수적으로 후원자의 정당성을 보장하기 위한 목소리를 내야 하며 유럽과 미국의 미술관 후원자는 정치권력자 혹은 돈 많은 자본가의 경우가 많은데 이들 대부분은 높은 확률로 백인 남성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저자는 예술이 돈과 권력으로부터 독립하기란 어려운 일임을 폭로한다. 한편 예술은 필연적으로 자신을 잉태한 시대를 스스로 고발한다. 따라서 오늘날의 시각으로 그림을 비판적으로 읽는 행위는 예술 작품 속 권력자의 시선에 의해 소외되어 온 사각지대에 한 줄기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할 것임을 주장한다.


즉, 그동안 낭만적인 감상에 가려져 있던 혹은 무의식적으로 권력자의 의도대로 보아 온 그림들을 다시 읽는 행위가 필요한 것이다.

 

 

 

권력의 시각을 벗어던지고 낯설게 바라본 그림들


 

책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기울어진 그림을 부수는 존재들'에서는 그림 속에 나타난 흑인, 장애인, 아픈 사람, 성소수자 등의 존재에 주목한다. 에두아르 마네의 유명작 <올랭피아>와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거울을 보는 비너스>에는 주인공 백인 여성과 그녀들의 시중을 드는 흑인 하녀가 등장한다. 우선, 두 작품 모두 남성 작가의 시선에서 여체를 대상화하고 있으며 흑인 여성은 오로지 백인 여성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기 위한 시각적 대비 효과로 소비되고 있다. 이렇듯 오랜 시간 흑인들은 백인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그림의 장치'로 이용되어 왔다. 올랭핑아의 흑인 하녀는 훗날 미국의 흑인 예술가 바스키아에 의해 당당히 그림의 주인공으로 다시 등장한다.


또한 책은 정상성이라는 폭력적인 기준으로 격리되거나 미화되어 온 장애인들을 이야기한다. 영국의 존 에버렛 밀레이의 작품 <눈먼 소녀>에는 눈이 멀었지만 아름답고 순결한 외양의 소녀가 등장한다. 한때 미국에 존재했던 '어글리 법'이 증명하듯 사람들은 정상성을 벗어나는 장애인들을 극도로 꺼려 했지만 밀레이의 그림 속 가련하고 순결한 장애인의 이미지는 오히려 동정심을 느끼며 기꺼이 받아들였다. 반대로 비장애인들의 기준에 충격적이거나 신기한 모습을 한 이들은 '프리크 쇼'라는 공연의 광대로 이용당하거나 유럽 궁정의 애완 인간으로 취급받았다. 책은 과연 이 모든 일을 과거의 흑역사로만 이해해도 되는 건지 현대의 우리에게 물음을 던진다. 비장애인들과 같은 동료 시민으로 인정받길 원하는 장애인들의 요구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 중 하나이다.


2부 '그림 속 소품이기를 거부한 여성들'에서는 먼 옛날부터 가부장적 권력에 의해 철저히 행해져 온 여성혐오의 역사를 말한다. 여성을 남성에 비해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고 남성이 여성을 통제하는 데에 정당성을 부여한 자궁혐오는 얀 스테인의 <의사의 왕진>을 통해 드러난다. 히스테리라는 말은 자궁을 뜻하는 그리스어 '히스테라'에서 왔으며 이러한 왜곡된 인식의 잔해는 현재까지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열등한 여성이 숭고해지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바람직한 어머니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규정한 환상의 일종인 모성 신화는 여성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단이 될 뿐이다.


3부 '뒤틀린 권력에 균열을 내는 그림들'은 권력과 욕망의 역사 속에서 희생되어 온 어린이, 노인, 가난한 사람들, 인디언 등을 조명한다. 어린이의 인권에 대한 인식이 전무했던 시대에 아이들은 보호는커녕 덜 자란 인간 취급을 당했다. 윌리엄 호가스의 <그레이엄 집안의 아이들>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당대 영국 상류층의 부와 명예를 과시하기 위해 불편한 코르셋과 꽉 끼는 슈트를 입어야 했다. 빈곤층 아이들의 사정은 더욱 참혹했다. 그들은 오로지 어른보다 값이 싼 노동력으로만 기능했을 뿐이다.


한편, 스페인 화가 후세페 데 리베라의 <내반족 소년>에 나오는 허름한 옷을 입은 소년은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어떻게 이용했는가를 보여준다. 소년은 왼손에 “신의 사랑을 받으려거든 저에게 자선을 베풀어주세요”라고 적힌 쪽지를 들고 있다. 이에 대해 작가는 당시 교회가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면 천국을 갈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에 부자들이 주변의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었고 이러한 사실을 그림을 통해 과시하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자들의 자선행위는 분명 사회적으로 선한 것이지만 그 의중을 정확히 파악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선거철마다 재래시장에 찾아 서민 놀이를 하는 정치인들에게 감동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지 않은가.


4부 '선전 도구에 저항하는 예술가들'에서는 예술이 어떻게 권력에 의해 움직이는가를 보여준다. 르네상스 미술을 부흥시킨 후원자 '메디치 가문'이 바로 그 예이다. 당시 은행업을 하던 메디치 가문은 고리대금업의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을 면하기 위해 예술을 이미지 세탁용으로 활용했다. 레오 10세의 후원을 받아 탄생한 라파엘로의 작품 <샤를마뉴의 대관식>에 교황 레오 3세의 얼굴에 레오 10세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보면 예술이 얼마나 쉽게 권력자들의 도구가 되는지 알 수 있다.


예술은 정치권력에 의해서도 이용된다. 그 예시로 추상 표현주의의 거장 잭슨 폴록의 작품들이 사실 미국 CIA의 철저한 계획에 따라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공격하는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정치적, 계몽적 선전 도구로 활용된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과 달리 미국은 기다란 목줄 뒤에 숨어 정치적 의도를 감췄다는 것만이 차이점이다.

 

 

 

예술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


 

작가는 과거의 그림을 들추어내 샅샅이 파헤치고 그 속에 감춰져 있던 소수자들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가져왔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림은 잉태될 당시의 시대를 담고 있는 좋은 사료가 된다. 예술의 아름다움이라는 포장지를 살짝만 벗겨 내면 그 아래에 차마 부끄러워 고개를 돌리고 싶은 인류의 어두운 욕망이 들끓고 있다. 작가는 그림의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되 이를 용인하거나 묵인하지 않는다. 현대의 시각에서 주저 없이 그림들을 비판한다. 그의 신랄한 비판들은 나도 모르게 끼우고 있던 권력의 렌즈를 인지하게끔 한다.


어째서 나는 마네의 그림 속 흑인 하녀의 존재를 유심히 보지 못했을까? 왜 나는 툴루즈 로트레크가 성매매 여성들의 인간적 모습에 집중했다는 것에 감동하기에 그쳤을까? 책을 읽으며 내가 가진 편협한 시각이 얼마나 권력 지향적이었는가를 성찰하게 되었다.


한편, 작가는 계속해서 현재의 문제들을 언급한다. 시대가 변해도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잔존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사회도, 예술도 권력자들에 의해 주류 흐름이 형성된다. 단지 권력의 주체만 조금씩 바뀔 뿐. 그리고 <기울어진 미술관>이 품은 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 끊이지 않는 차별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우리는 이 책이 제시하는 비판적 시각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차별의 칼끝은 언제든 누구에게나 향할 수 있기 때문에.

 

 

[이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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