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구름처럼 함께 흘러가고 싶은 사람

마음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글 입력 2022.10.23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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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필름 사진 동아리에서 처음 만나 혜원.

 

'마음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그에게 창작에 대해 물었다.

 

 

 

창작, 그럼에도 계속 해나가는 것


 

안녕하세요. 혜원 님.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글 쓰는 것을 업으로 삼아 살고 싶은 안혜원이라고 합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4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인터뷰어님이 저와 제 글쓰기 생활을 좋게 봐주신 덕분에 인터뷰를 제안받아 뜻깊은 시간을 가지게 됐네요. 평소에 시와 소설을 쓰고요, 2020년과 2022년에 각각 시집 『투명한 사람』과 『디지털 커튼콜』을 개인적으로 출판한 적이 있어요. 특히 『디지털 커튼콜』은 2022년에 텀블벅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혜원 님은 처음 시를 썼던 때를 기억하세요?

 

인생에서 처음 썼다고 느껴지는 시는 <유성의 소원>이라는 시예요. 유성을 화자로 삼아서 짝사랑하거나 혹은 뭔가를 혼자서만 바라보는 사람에 관해 쓴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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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이 (기억하는) 난생처음 쓴 시.

그는 이 시가 귀엽다고 덧붙였다.

 

 

시를 누군가에게 처음 선보였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부모님께서는 좋아하셨어요. 주변 분들께서는 '혜원이 네가 문학적 소양이 있는 줄 몰랐다'라는 반응도 있었고요.

 

 

'시인'으로서 자아가 확립된 시기는 스스로 언제부터라고 생각하나요?

 

사실 제가 시인이라는 생각은 아예 안 하고 있어요. 시집이라는 책을 내면서 자연스럽게 시인으로 부르게 된 것이지, 전 아직 시인이 되기에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제게 혜원 님은 시인입니다. (웃음) 혜원 님의 시를 짓는 방법이나 과정이 궁금한데요.

 

되도록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줄 수 있도록 시를 쓰려 해요. 문학은 읽고 쓰는 것 외에도 '인문학' 공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미리 정해 놓은 소재 중에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겠다 싶은 것, 그리고 제가 진짜 쓰고 싶었던 것을 골라서 시를 지어요. 초고를 완성하고 나면 엉망인 부분을 계속 보면서 고쳐 나가고요.

 

 

그렇다면 혜원 님의 『투명한 사람』과 『디지털 커튼콜』은 각각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나요?

 

우선 두 권 모두 '함께하는 마음의 소중함'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첫 번째 시집 『투명한 사람』은 '관계'에 초점을 맞췄어요. 이때 당시 서로에 대한 마음을 소중히 한다면 투명해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솔직해지는 것을 투명하다고 표현한 거고요. 두 번째 시집 『디지털 커튼콜』은 디지털 세상 속에서 모두가 힘듦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쓰게 되었어요. sns시대에서 피상적인 관계라든지 아니면 자아가 겪을 수 있는 혼란 같은 거요. 첫 번째 시집은 굉장히 쉬운 언어로 썼다면 두 번째 시집은 낯선 단어를 많이 활용해 봤어요. 또 여러 형식을 사용해 봤고요.

 

 

시를 창작하면 할수록 어떤가요?

 

굉장히 고통스럽습니다. 시나 소설은 새로운 인물이나 상황을 창조해서 써내야 해요. 저의 경험을 활용하면서도 온전히 절 녹여낼 수 없기 때문에 절 지워내야 하는 일이기도 하죠. 또, 역시나 탈고가 힘들어요. 특히나 시는 표현 하나를 바꾸면 새로운 의미가 돼요. 단어랄지 축약어랄지 리듬이나 운율까지 생각해야 하고요. *고쳐도 고쳐도 더 어려운 느낌이에요. 잘 쓰고 싶은 마음이라서 써도 써도 마음에 안 드는 상태인 거 같기도 해요.

 

*혜원은 창작이란 할수록 더 어렵다고 느끼지만, '잘 해가고 있는 것도 아니면 이런 고민도 안 하겠죠'라고 말했다.

 

 

창작활동은 혜원 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창작활동이 제 삶에 있어서 인생의 허무함을 조금 허무는 것 같아요. 인생이 허무하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 '계속'이 창작에서 중요해요. 창작은 제 안에 억눌러왔던 상처들에 관해 계속 되짚어볼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인데요. 저뿐만 아니라 글을 쓰시는 모든 분들의 시작은 결국 자기에 대한 글쓰기일 거예요. 그러다 보니 글쓰기라는 것 자체가 본인을 마주하면서 성찰하고 계속 살아가도록 돕는 것 같아요. 또, 창작이란 사회에서 문제시되고 있고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을 다시 조명하는 일인데, 그런 작업을 해야겠다고 꿈꿀 때 혹은 할 수 있게 될 때 전 좀 희망을 얻어요. 희망적이면서도 계속 해나가는 창작이 그런 점에서 인생의 허무함을 허물어요.

 

*이 말은 '백수린 작가님의 말씀과 작품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백수린 작가님을 좋아하는데, 인터뷰를 하러 오는 길에도 백수린 작가님의 『아주 환한 날들』을 읽으며 왔다고 했다.

 

 

 

구름처럼 흘러가며 바뀌어가는 글


 

'글과 구름'이라고 출판사 이름을 짓게 된 이유가 있나요?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아름다움을 글로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글과 구름'이라고 지었어요. 구름은 흘러가면서도 한번 봤을 때 그전에 본 모양이 절대 아니에요. 그래서 계속 바뀌는 구름이 변해가는 일상과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구름처럼 흘러가면서 변해가는 삶의 순간들에 관해 글로 녹여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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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꼭 등장하는 혜원의 책.

두 번째 시집 『디지털 커튼콜』의 표지는 그가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다.

 

 

앞서 말씀대로 '삶이 허무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해나간다'라는 혜원 님 가치관이 드러난 출판사 이름이었네요. 그렇다면 앞으로 출간하고 싶은 책이 또 있나요?

 

지금까지 혼자 책을 냈다면 이제 협업을 하고 싶습니다. 사진과 글을 같이 넣는 책 작업이라든지 아니면 전시를 통해서도 글을 보이고 싶어요. 융합적으로 해볼 수 있는 작업을 많이 해보고 싶어요. 안 그래도 지금 다른 친구들과 협업해서 책을 한 권 만들고 있는 중이에요. 주제는 '공존'이고, 제목은 '다카포 그린'이에요. '초록은 계속될 거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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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이 교내 문학회에 기고한 시,  Re, cycle의 한 구절

(출처 : 이화 문학회 인스타그램 게시물)

 

 

'공존'하니까 혜원 님이 문학회에서 기고한 Re, cycle이라는 시가 떠오르는데요.


Re, cycle은 환경에 대해 쓴 시에요. 제가 실제로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졌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건데, 넘어졌을 때 생각해 보니 인간용 자전거 도로는 있는데 나비나 참새를 위한 길은 없는 거예요.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썼죠. 이때 당시 인간이라서 그냥 맨날 미안했어요.

 

 

문제의식을 담은 또 다른 글이 있나요?

 

문학회에서 기고한 *<주방>이라는 시인데요. 공장식 닭들에 관한 이야기예요. '푸드덕 거리다'라는 키워드를 보시면 알 수 있어요. 암탉들이 비좁은 곳에서 알을 낳고 있는 사진을 보았는데,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가라고 문제의식을 느꼈어요. 자연 속에서 뛰놀 수도 있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알을 낳아야 하는 그들만의 주방에서도 문제의식을 느꼈지만, 또 그 문제의식을 지운 채 주방에서 알을 먹는 우리 인간도 문제라고 느꼈습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혜원 님이 글을 쓸 때, 사회에서 불합리한 것들을 조명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욱 느껴져요. 이런 문제의식을 담아두기만 하면 아무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가려진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 글쓰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맞아요. 그래서 불합리한 것들에 관해 언어화하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전 문학이 세계에서 가려버리는 진실을 볼 수 있는 매개체라고 봐서, 약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럴 때 문학이 문학다워진다고 생각하고요. 예를 들어 돈이 많은 사람들, 기득권층, 정치인들에 관한 글을 쓰면 그것 자체로도 그 삶에 관한 간접 체험은 되겠지만, 그만큼 의미가 있을 것 같지 않아요. 그래서 앞서 말한 창작 활동이 저한테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을 복귀하는 일이기도 해요.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전 이런 글을 계속해서 쓸 것 같아요. 저뿐만 아니라 글을 쓰고자 하는 다른 분들도 그러실 거라고 믿습니다.

 


혜원 님이 한국 현대 소설을 특히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비슷한 이유인가요?

 

네, 한국 현대 소설이 한국 문화나 관습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들을 짚어주니까 좋았어요. 소설이 현실을 모방하는 세계이지만 완전히 다를 수 없잖아요. 현실의 결함을 있는 그대로 풀어냈다기보다 어떻게 이것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는지를 서술해 놓은 걸 보니까 정말 큰 위안을 받았어요. 무엇보다도 한국 현대 소설계에서 많은 여성 작가들이 주목받고 있는데요. 그들이 느끼는 문제점을 현대 소설에서도 볼 수 있고, 다양한 여성 인물들이 주체적으로 나오는 모습을 만나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안온을 찾아가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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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사진전 '낯섦'에서 전시한 혜원의 작품 <이동하는 세계>

 

  

필름 사진 전시 작품 <이동하는 세계>, sns 시대에 대한 글 <디지털 커튼콜>, 그리고 이번 동아리 카페도 개설해서 소통하는 장치를 만들었잖아요. '관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고 느껴졌어요. 평소 '관계'에 대한 혜원 님의 가치관이 궁금합니다.

 

관계는 '지속적'으로 '서로'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초년생일 때 제가 생각한 관계는 약간 허상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요. '우리는 모두 행복하려고 태어난 거니까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우리가 서로 만난 건 진짜 기적이고 행복한 일이다'라는 마음으로 관계를 대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대하면 제가 원하지 않은 관계라도 떠나보내기 힘들어지더라고요. 또 조금 잘 해줄 것처럼 하다가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관계에 소홀히 하는 사람들도 봤어요. 그러다가 다시 친해지기도 했지만 그 안에서 전 너무 저만 노력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이제 헌신적인 애정만으로 관계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걸 알았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오히려 조금씩 거리를 두려는 것 같아요. 거리는 있으되, 무조건적인 사랑은 유지하는 거죠.

 

 

관계가 애초에 한 사람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니까요. 지속적으로 서로 노력해야 하는 것에 적극 동의합니다.

 

그래서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줄 수 있어야 해요. 전 '공감'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필요한 자질 중 중요한 하나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본인이 다른 사람의 상황을 언젠가 겪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공감 못하고 상대방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다가 혐오와 차별이 생겨나는 것 같아요. 또 본인들의 경험에 비추어서 절 판단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요. 그러면서 전 그 사람들한테 왜곡되어가고.. 정말 황당한 거예요. 이유를 들어보니 그럴 싸한 이유도 아니었어요. 최소한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줄 수 있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출간한 두 시집 모두 함께하는 마음의 소중함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했어요. '곁이 가진 따뜻함과 소중함을 함께하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라고 했는데 어떤 노력인가요?

 

전 앞으로 글쓰기를 업으로 삼을 건데요. 앞서 말씀드린 빛을 보지 못한 존재를 바라보면서 함께하고, 그런 함께하는 소중함을 담아내는 글쓰기 작업을 계속 노력하겠다는 의미였어요. *또 다른 노력이라고 한다면 구름 흘러가는 걸 계속 바라보고 그려내듯이 흘러가는 것에 관해서 계속 인지를 하고 인식을 하고 사유하고 성찰하고 배움을 얻어내는 거예요. 요즘 제가 생각하는 인생은 흘러가는 것들에 관해서 잘 흘려보낼 수 있도록 성찰하는 것이거든요.

 

*전시 마지막 날, 모든 동아리 부원들의 작품을 유심히 지켜보던 혜원을 보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는 모든 작품을 3번씩 감상했다고 했다. 이 부분에서도 혜원은 소중했던 동아리 활동 시간을 잘 흘려보낼 수 있도록 계속 사유하고 성찰하고 있었다고 인터뷰 답변을 정리하며 느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이번에 제가 속해 있는 필름 사진 동아리에서 포토북을 만드는데요. 그 포토북에서 하고자 하는 저의 주제와 맞닿아 있어요. 어떻게 하면 '안온'에 이를 수 있는지요. 어떤 식으로 살든 제가 저만의 안온을 잘 찾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그것은 이제 사회적 인정이랑 별개인 것이고요. 그러면서도 여전히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혜원 님 안온 사진.jpeg

8월 가족여행 중 찍은 혜원의 필름 사진,

초록과 자연을 좋아하는 혜원은 꽃과 이파리를 통해서도 자신만의 안온함을 찾으려 노력했다.

요새는 직접 음식을 해먹는 것으로 안온을 찾고 있다고도 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마치신 소감 부탁드려요.

 

여러 가지 저에 관한 많은 사전 조사와 질문을 준비해 주셔서 인터뷰를 수월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인터뷰를 통해서 앞으로도 문학에 더 정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요. 감사합니다.

 

 

 

강민영.jpg

 

 

[강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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