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래의 응급 사태 [도서]

글 입력 2022.10.17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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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미래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일상의 변화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근에는 실내 마스크 의무 규제도 해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지만, 막상 밖을 보면 야외에서도 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바이러스 확산 이전에는 마스크를 쓴 사람을 이상하게 쳐다보았다면 이젠 마스크를 벗은 사람을 경계한다. 마스크 벗기란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는 행위처럼 느껴진다.

 

이 상황을 무려 약 20년 전에 예견한 소설이 있다. 국가에서 가스마스크를 나누어주고, 마스크를 무려 주인공처럼 전면으로 내세운 작품 말이다. 바로 니콜 크라우스의 단편소설 「미래의 응급 사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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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 발표된 「미래의 응급 사태」는 가스마스크가 필요하다는 아침 라디오 방송으로 시작한다. 원인은 알 수 없다. 대기 오염인지, 어느 공장에서 오염 물질이라도 나온 건지, 명확한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라디오는 가스마스크가 필요하다고만 말한다. 내용을 들어보면 외출 자체가 꺼려지는 찜찜한 공포가 느껴진다. 당분간은 공기를 마셔도 안전하다는 라디오 말을 믿을 수 없을 만큼 불안한데 소설 속 모두가 일상을 살아간다.

 

‘나’와 ‘빅토르’의 아침 역시 여전하다. ‘나’는 미술관 투어 해설자이며 ‘빅토르’는 중세를 연구하는 교수이다. ‘나’는 그의 가스마스크 몫까지 함께 배급받고 집으로 돌아온다. 둘은 퇴근하고 나서는 오히려 평소보다 미묘하게 들떠 보이며 오랜만에 ‘질서’를 무시한 관계를 맺는다. 그 일상과 비(非)일상이 섞여 이 소설만의 분위기를 만든다.

 

 

 

두 인물의 균열


 

이 소설에서는 두 인물이 나온다. ‘나’는 이전까지 비슷한 나이대 남성만 만난 인물로 자기주장이 불분명한,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인물로 ‘빅토르’를 “일종의 굴절된 형태로 반영”한다고 묘사되는 사람이다. 빅토르는 중세를 연구하는 교수로 불안한 상황을 ‘자연적이든 인위적이든 인구를 조절하기 위한 필연적 재난’이라고 말하는 인물이다.

 

빅토르와 ‘나’는 연인이기 전에 ‘교수-제자’라는 수직적 관계였다. ‘나’는 빅토르에게 안정을 느끼지만, 그의 모든 모습을 알지는 못한다. 소설에서는 '세 번째' 빅토르라고 불리는 프랑스인 빅토르를 ‘나’는 어쩌면 평생 모를 것이다. 이 때문에 두 인물 설정이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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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두 인물의 균열이 일어났다고 느낀 부분은 ‘나’가 빅토르가 마스크를 쓴 모습을 낯설게 느낀 서술이었다.

 

안정적인 관계에 만족하던 내가 그와의 이별을 고민한다. 사실 ‘나’는 그가 미워진 게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가 두려웠다. “우리가 이런 자기 보호 방법을 익혀야 하는 이유를 언제쯤 알 수 있을지 궁금했다.”라는 서술이 그 본심이 아니었을까.

 

사실 중세를 연구하여 상대적으로 상황을 더 잘 알 것 같았던 ‘빅토르’조차 원인을 모르는 응급 사태이다. 안정을 유지하던 관계가 흔들려버린 것이다. 가스마스크 때문에. 소설을 읽는 내내 둘의 관계를 흔들어버린 계기인 가스마스크는 마치 이들의 고난을 위한 또 다른 핵심 인물처럼 읽힌다.

 

두려웠던 상황은 사실 실험이었다. 허탈함도 잠시 뒤이어 ‘나’는 임신한다. 왜 그는 빅토르와의 이별을 생각했지만, 아이를 지우지 않고 낳기를 결심했을까. 그는 태어날 아이를 희망으로 보았다. “막강한 폐와 함께. 공기 중에 섞여 우리를 취하게 하고 해질녘 하늘을 물들였던 그것에 대한 면역력도 갖춘 종족.”이라는 희망. 이 아이는 자라서 미래를 상상하는 글을 쓸 것이다.



“이제는 마스크를 벗고 예전으로 돌아가기가 꺼려졌을지도 모른다. 

맨얼굴로 돌아다니며 모든 것에 노출되던 그 시절로는.”


 

‘나’는 가스마스크를 받으러 배급소인 학교에 갔다가, 칠판에 적힌 숙제 ‘내가 예측한 미래’를 보게 된다. 이를 읽으면서 ‘내가 예측한 미래’에 대해 생각해본다.

 

우리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고백하자면 나는 마스크를 쓰는 지금의 상황이 싫지만은 않았다. 마스크로 꾸밈노동과 감정노동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고, 위생에도 예민해져 거리두기가 이어지고 있다. 불필요한 사적 만남은 줄어들고 개인 시간이 늘어났다. 특히나 내향적인 내게 맨얼굴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현실은 마치 내가 아닌 새로운 '익명'의 존재로 방패가 된 기분이다.

 

앞으로는 마스크는 물론이고 산소통을 매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20년 전에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을 상상했던 이 소설처럼, 이에 따른 답은 각자 미래의 응급 사태가 될 것이다.

 

모두의 숙제 내용이 궁금해지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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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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