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혼자 영화를 봅니다 [사람]

글 입력 2022.10.15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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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영'을 즐기기 시작한 것은 성인 무렵이었다.


비디오 가게가 성황 하던 무렵, 하굣길에 친구들과 공포영화 한 편을 빌려 시청하는 것이 낙이었고 고등학생이 되자 영화관을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친구와 함께 보는 영화는 반드시 취향이 맞아야 했다.


영화를 즐기려면 반드시 함께 팝콘을 나눠 먹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2010년 영화 <인셉션>이 개봉하던 해에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교복을 입고 친구와 토론을 하며 본 이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처음 혼자 영화관을 갔다.


이때부터 좋아하는 영화는 N차 관람을 마다않는 성향이 발현했을지도 모르겠다. 열린 결말이라면 유난히 마음을 쏟는 이유 역시 여러 번의 관람 끝에 숨겨진 메시지를 찾는 즐거움을 알기 때문이었다.


요즘 가장 흥행 보증 수표로 불리는 영화는 소위 말하는 ‘마블 영화’다. 마블 코믹스의 만화를 원작으로 각색한 영화인데, 인기 캐릭터의 솔로 무비 혹은 히어로가 총집합하는 어벤저스 시리즈의 경우에는 개봉한즉슨 가볍게 천만을 돌파하곤 했다. 나 역시 마블의 열광적인 팬 중의 하나였다.


개인적으로 마블 스튜디오, 디즈니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각각의 솔로 무비들이 한 세계관에 존재하는 것 같은 감상을 받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용하여 영화마다 이스터에그를 심기도 하는데, 내가 N차 관람을 기다리는 이유였다.


혼자 무슨 재미로 영화를 보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재밌는 영화를 다 같이 보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취향이 맞지 않는 사람과 나란히 팝콘을 씹으며 감상에 젖을 새 없이 영화관 밖을 나서는 데이트는 감히 거절하고 싶다. 나의 경우에는 영화를 기다려온 작품의 팬과 함께 향유하고 싶었다.


관객 반응이 궁금해 홀로 영화관을 찾는 배우의 심정이 되는 것이다. 특정 배우의 팬이거나 오랜 시간 기다려온 시리즈물이라면 열 번이라도 보러 갔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두근거리며 기다리는 마음,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와 슬픈 장면에서 코를 훌쩍이는 작은 소음들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상업적인 영화 외에도 혼자 독립 영화관을 찾았다. 독립 영화의 경우에는 더욱이 제대로 영화를 감상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누적관객 순위에서 한참이나 뒤로 밀려난 영화의 상영관을 찾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니까. 너무 이른 아침 아니면 심야에 딱 한 번 상영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 힘든 발걸음을 한 이들이야말로 애정을 기반으로 비평을 빚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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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의 경쟁 부문에 올라 여우주연상 수상작이 된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많은 영화 애호가에게 기대를 한 몸에 받았고 나 역시 가장 기대했던 영화였다. 그러나 배려 없는 시간대로 인해 겨우 시간을 내어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추석을 맞이해 찾았던 영화관에서, 가족이 함께 즐길 영화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사누최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은 영화를 사랑하는 한 명의 팬으로서, 명절에 홀로 영화관을 들어선 나를 외롭지 않게 만들어주었다.


요즘은 ‘혼영’ ‘혼밥’ ‘혼술’ 등의 혼자 놀기 고수들을 위한 문화가 대중화되어 혼자 무얼 하든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밀려나 외로움에 사무치는 사람들로 비치는 것도 예전 일이다.


혼자 다 할 수 있다니, 대단한걸.


주위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좋아하는 취미를 즐기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나 역시 혼자 무언갈하는 사람에게 존경을 표하는 바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혼자 밥 먹기는 물론이고 혼자 여행을 떠나는 일은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이란 말인가. 약 5년 전, 2박 3일로 혼자 떠났던 도쿄 여행을 상기해 보면 의외로 모든 게 쉬웠고 한편으로는 외롭고 힘이 들었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홀로 보낸 단 3일의 시간은 외로움보다는 마음의 안정을 찾게 해준 것이 사실이다. 나 혼자 즐기는 여유가 필요했다.


영화 역시 그렇다. 누군가에게는 혼영이 누워서 떡 먹기가 되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죽기 보다 힘이 든 도전이었다.


나에게 혼영은 여행보다는 적은 돈으로 떠나는 힐링의 시간이다. 즐겁게 감상하기 위하여 어마어마한 인원을 수용하는 영화관을 찾기도 하고, 아무도 찾지 않는 심야에 텅 빈 영화관을 전세 내는 것을 사랑했다. 누군가와 함께 보는 영화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지만, 영화를 온전히 감상하기 위해서 혼영 해봄을 추천하고 싶다.


동행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즐기는 영화는 얼마나 재미있는지, 몸소 경험해 보았으면 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오가는 감상을 나눌 사람이 없다면 다소 외로울 수도 있겠으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감상들을 정리해 보는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소소한 일상의 도전이라고 생각한다면 한 번쯤은 해볼 법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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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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