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중섭

여우와 함께 다녀온 국립현대미술관
글 입력 2022.10.03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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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여우가 있다.

 

마치 어린왕자에게 관계를 형성해나가는 즐거움을 알려주는 여우처럼, 나의 여우도 내게 기다림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단 한 마리의 특별한 여우다. 여우와 나는 이 행성에서 네 시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요즈음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며칠 동안 일요일 네 시를 기다렸다. 여우와 내가 미술관에 가기로 한 시간. 미술관에서는 자신의 어린왕자들을 기다리던 여우가 남긴 고독하고도 빛나는 발자취들이 남아있었다.

 

드뷔시의 '달빛'이 들려주는 선율과 함께, 그리고 나의 여우와 함께, 이중섭이라는 여우의 흔적을 쫓아가보았다.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 이중섭>


 

소와 알몸의 아이들을 주로 그린 것으로 유명한 이중섭. 대한민국의 현대 미술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초현실을 담아내면서도 토속적이고도 향토적인 색채를 활용한 그의 그림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여우와 함께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자 현대자동차가 후원하고 있는 작가의 전시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가득히 보였다. 인파에 작품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기 때문에 서둘러 그곳을 지나치고 이중섭의 그림이 있는 전시관으로 들어섰다.

 

이중섭이 무수히 많은 그의 작품에 담아낸 어린 아이들을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전시관이 꾸며져 있어서 그가 꿈꾸던 세계 속에 들어와있는 듯했다. 그의 설명이 적혀있는 곳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가자 그가 자그마한 종이에 그려낸 물감 작품들이 여우와 나를 맞이했다. 잡다한 스케치 없이 수채나 유채 물감만으로 그의 시선이 닿는 소재들을 그려낸 공간. 빛 바래 누래진 종이들이지만 그것을 적셔 남아들어간 색들은 더욱 수수하게 빛났다.

 

사람들을 피해 들어간 곳에는 이중섭의 조카 이영진이 이중섭의 방에 붙어 있던 시를 암송해 전한 것이 적혀있었다.

 

 

소의 말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고독했던 방이지만 그의 그림세계에는 이중섭의 어린왕자들이 잔뜩이었다. '야스타카군'인 그의 아들과, '아고리'인 아내와 주고 받은 편지가 전시되어 있었다.

 

'아주 잘 그렸어요! 또 잘 그려서 보내주세요. 아빠 ㅈㅜㅇㅅㅓㅂ'이 일본어로 적혀있는 편지를 보고 나는 인간 이중섭의 쓸쓸하고도 사랑이 담뿍 담긴 아빠로서의 모습이 어딘가 사무치게 아파왔다. 여우가 손수건을 건네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더는 전시에 집중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중섭의 생애를 훑는 곳을 지나 은지화의 공간으로 들어섰다. 이중섭은 물감을 살 돈도 없었지만 끊임없이 샘솟는 예술에 대한 사랑, 그리고 열정은 식지 않았다. 물론 가족을 생각하면서도 이중섭은 삶을 버텨왔겠지만 원론적인 그 열정을 결코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중섭은 그 열정을 담뱃값에 들어있는 은지에 송곳으로 그림을 새기며 표현해냈다. 그 얇은 종이에 송곳으로 아이들을 그려내고, 가족을 그려내고, 가족들과 함께 했던 소중한 순간들을 그려내며 가족을 기다렸다. 은지는 세월의 나이를 먹어 구겨지고 또 구겨졌지만 그 사랑은 송곳으로써 꿋꿋하게 남아서 전시되고 있었다.

 

이중섭이 주로 그려낸 소, 닭, 아이들에 대한 설명을 로봇이 눈을 빛내며 설명해주고 있었다. 조용히 관람하는 것을 즐기던 나는 여우와 함께 팜플렛 앞에 실려있는 작품인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돈이 없었던 서글픈 시절이었지만 이중섭은 가족들과 함께 바닷가에서 물고기와 게를 잡으며 사랑을 피워가던 시간들을 사랑했다. 그리워했다. 그래서 그는 일본으로 간 그의 가족들이 그리워서 그 시절을 그려냈다. 아이들을 그렸다. 자신의 아이들을 떠올리면서. 물고기를 그리고 게를 그렸다. 소중했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낚싯줄로 그 모든 것을 연결했다. 영원히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소망하면서. 아이들은 잔잔히 웃고있다. 이중섭 또한 살며시 웃음지었을 것이다.

 

여우는 이 작품을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의 건너편에는 '가족과 첫눈'이라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배경은 회색, 하얀 눈만 흩날리고 있었지만 형태를 잘 알아보기 힘든 추상적인 붓터치는 되려 붉고, 노랗고, 푸른 빛으로 차별화되어 있어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가족과 보내는 첫눈. 낭만적인 날이다. 기억하고 싶은 그 날을 그려내며 이중섭은 또한 가족을 그리워했을 것이고, 그 시간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그리움이 가득한 삶을 보낸 이중섭이었지만 누구보다도 따스한 사랑이 가득했을 그.

 

나는 이 작품을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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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전시를 다 보고 나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여우와 함께 창경궁을 걸으면서 이중섭의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곱씹어봤다. 누구보다도 가족을 그리워한 여우 이중섭은 무연고자로 세상을 떠났다. 그 아이러니에 나는 슬퍼진다.

 

어린왕자를 기다리던 여우는 그리움에 서러워지면서도 만나게 될 그 어느 날을 기다리며 행복해한다. 아마도 이중섭은 그토록 사그라치게 가족들을 그리워했기 때문에 더 더욱 그 시간들이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알 수 없을 그 고독함 속에서.

 

다시 찾아오는 듯 싶었던 여름이 비가 오면서 사그라들고 있다. 나는 여우와 또 '써머'를 기다릴 것이다. 겨울이 다가올수록 여름을 향한 그리움은 더욱 커질 것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행복할 것이다.

 

여우와의 행복한 시간을 기다리며, 이중섭이 그랬듯이, 그의 가족들을 담아냈듯이.

 

 

 

[아트인사이트] 명함_컬쳐리스트.jpg

 

 

[윤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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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박지훈
    • 너무 아름다운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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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ㅈㅈㅈ
    •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글 계속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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