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식물을 옮기다가 생태계를 바꿔버린 식물 상자의 역사 - 세계사를 바꾼 위대한 식물 상자

"한 식물 애호가의 호기심이 어떻게 세계 역사를 바꾸었나?"
글 입력 2022.10.02 13:0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세계사를 바꾼 위대한 식물 상자』

_루크 키오

 

 

세계사를 바꾼 위대한 식물 상자_표1.jpg

 

 

[PRESS]

식물을 옮기다가 생태계를 바꿔버린 식물 상자의 역사

 

 

다소 갑작스럽지만 당신에게 단순한 일을 - 물론 상상 속에서 - 부탁하겠다. 이 빵나무 묘목들을 유럽까지 옮기는 것이다. 단, 지금은 19세기 유럽이다. 배를 통해 묘목을 옮겨야 하는데 항해는 대략 6개월이 걸릴 듯싶다. 무엇보다 바다 위를 건너는 동안 식물이 절대 죽어서는 안 된다. 이 식물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식물학자들에게 무사히 전달해야 한다.


이 묘목을 어떻게 운반해야 죽지 않게 무사히 옮길 수 있을까? 참고로 짠 바닷물은 식물에겐 독이다. 배가 휘청이며 튀어 오르는 바닷물을 피하면서 햇볕을 충분히 쬐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같이 올라탄 가축이 식물을 해하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쓰러지거나 떨어져서 다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무엇보다 물을 주어야 한다. 당신은 당신을 위해 챙긴 생수를 아끼고 또 아껴서 그 식물과 나눠마셔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식물은 운반은 단순히 식물을 관리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의 헌신이 필요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쯤 되면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식물을 옮겨야 하는가? 이번에 리뷰할 도서 『세계사를 바꾼 위대한 식물 상자』는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식물을 운반해야만 했던 19세기 제국주의 유럽의 식물 운반 역사를 다룬다. 그리고 이 역사의 주인공은 제목 그대로 이 역사를 이끈 식물 상자 ‘워디언 케이스’다.


식물 애호가의 우연한 발견으로 완성된 식물 상자 워디언 케이스가 세계와 환경을 흔들어 놓았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인간의 욕망과 식물 상자, 그리고 식물을 데려오기 위해 얽힌 수많은 사람들. 식물 운반이라는 독특한 관점으로 전개되는 역사.『세계사를 바꾼 위대한 식물 상자』 리뷰를 시작한다.



워디언 케이스는 기술 수단으로서 식물 운반의 가능성을 열었고, 밀폐 상자로서 식물과 식물 이외의 부산물을 운반했다. 다시 말해 워디언 케이스는 환경을 운반한 셈이다.(10쪽)



19세기 유럽, 의사 너새니얼 백쇼 워드는 자신의 본업보다 식물에 더 많은 마음을 둔 아마추어 식물학자였다. 그는 우연히 인간의 개입 없이도 밀폐된 유리 용기 안에 있는 식물이 죽지 않고 스스로 살아가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식물 스스로 호흡하고 광합성하며 밀폐된 환경에서 긴 기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워드는 이것이 오랜 시간의 이동을 요하는 식물 운반에 유용한 원리가 될 거라고 생각하게 되고, 곧이어 상자 하나를 제작한다.


한편 유럽인들은 17세기 계몽주의 시대부터 성공적인 식물 운반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식물학자들은 자국의 이득을 위해, 종묘상들은 식물 수집가들에게 외국의 새로운 식물을 소개하고 수익을 벌기 위해서 말이다. 자연철학과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사람들의 식물에 대한 관심도도 높았다. 여러모로 이득이 걸린 일인 만큼 성공보다 손실이 더 컸음에도 불구하고 식물 운반은 계속해서 시도되어 왔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도 식물 운반이 여전히 시도되는 가운데 워드가 그가 발견한 원리로 식물 상자를 만들어낸 것이다.

 

 

3.jpg

책에 수록된 그림.

"너새니얼 워드가 협회에서 설명한 운반용 워디언 케이스."

 

 

너새니얼 워드는 자신의 인맥과 기회를 총동원해 그가 만든 용기를 적극 홍보했다. 그 어느 때보다 식물 운반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던 시대에 그가 증명한 원리와 식물 상자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조금씩 식물 운반에 투입된 워드의 상자는 이전과는 남다른 성공 사례를 만들어내며 점차 세계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다. 어느새 ‘워디언 케이스’라 불리게 된 그의 상자는 ‘장식용 식물’을 위한 테라리움의 효시가 되고, ‘여행하는 식물’을 위한 중요한 운반 도구가 되어 세계의 생태계를 운반하기 시작했다.

 

 

식물을 운반하려는 욕망에는 항상 제국의 세계적 확장과 경제적 이득이라는 요소가 내재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68쪽)

 

 

식물 운반의 역사는 제국주의 시대에 워디언 케이스와 함께 전성기에 들어서기 시작한다. 제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자원과 건축할 식민지를 위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선 ‘유용한 식물’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빵나무도 그중 하나였다. 기후만 적절하면 사계절 내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빵나무는 식민지 노동자들에게 식량을 제공하기 위해 운반되었다. 식물로 이득을 취하던 인간들에게 워디언 케이스는 일종의 영웅이 되어 그들의 욕망을 따라 부지런히 식물을 담아 옮겼다.

 

 

1.jpg

책에 수록된 사진.

"식민지 시험용 식물원에서 학생들이 워디언 케이스 선적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 식물 운반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사람들의 협력이 필요했다. “식물 탐험가, 지역 채집가, 계약직 노동자, 토착민, 정원사, 큐레이터, 식물학자, 곤충학자, 원예가, 아마추어 애호가, 목수, 외교관, 남성, 여성, 아동 인부” 등등. 식물을 무사히 운반할 수 있도록 무수한 손길과 관심이 필요했다. 그래서 저자는 워디언 케이스가 식물을 둘러싼 사람들의 네트워크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어찌 보면 식물 운반은 세계적인 협동 작전이었던 셈이다. 인간의 입맛대로 똑 떼온 자연의 일부를 다른 환경에 적응 시키며 생태계를 뒤섞는 일에 모두가 협력한 셈. 그리고 점차 일어나기 시작한 세계 변화의 중심에는 워디언 케이스가 있었다.


 

살아 있는 식물을 운반하는 것은 생태계를 운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워디언 케이스 내부는 식물, 토양, 물, 외부에서 들어온 햇빛이 모인 미세 생태계였고, 여기에 증산 작용이 더해지면서 우리가 사는 거대한 외부 세계와 비슷하게 작용했다. 워디언 케이스의 사용이 가장 활발했을 당시 식물 질병과 침입종이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287쪽)

 


중요한 건 워디언 케이스가 옮긴 게 식물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식물이 뿌리내린 흙에서 살아가던 유기체, 공존하던 해충과 병충해까지 함께 운반됐다. 그로 인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다. 특히 제국의 플랜테이션은 단일 작물 재배를 한 탓에 해충이 농작물을 빠른 속도로 황폐화시켰다. 결국 유럽 제국들은 엄청난 손실을 떠안게 되었고, 이제 와서 자연 생태계에 일어난 문제를 통제하기엔 인간의 한계는 자명했다. 19세기를 지나 20세기 초, 식물 운반으로 야기된 침입종과 병원균 문제는 오늘날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인간의 손길로 식물을 운반해온 움직임들이 모여 이제는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결국 환경 관리가 20세기 초 당대 패러다임으로 떠오른다. 그 이전에는 인간의 입맛대로 자연을 길들이는 게 환경 관리였다면, 이제는 그 결과로 생태계에 일어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 그 요지였다. ‘환경’을 ‘관리한다’는 개념에 대한 이러한 의식의 변화는 그 자체로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와,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엿볼 수 있게 한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문제 해결을 위해 다시 워디언 케이스를 사용한다. 해충의 천적을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워디언 케이스는 그의 역사 끝에선 곤충을 운반하는 상자가 되었다. 또한 워디언 케이스로 일어난 문제들로 인해 식물 운반에 규제가 걸리기 시작했다. 혹여 침입종이나 병원균이 옮겨지지 않도록 운반을 마친 워디언 케이스는 모두 소각되었다. 인간의 이득을 위해, 다시 그들이 초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 역할을 수행하던 워디언 케이스의 역사도 그렇게 그 끝을 맞이했다.



마지막 여정에서 워디언 케이스는 식물에 기생곤충을 잔뜩 방사하여 이들을 함께 운반하는 데 사용되었다. 워디언 케이스의 긴 역사에서 이러한 아이러니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단 한 세기 동안 상자를 이용하면서 사람들은 많은 식물을 운반하며 중요한 결실을 얻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생태계적으로 복잡한 문제가 속출했고 인간은 이를 통제할 수단이 거의 없었다. 워디언 케이스의 마지막 여정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상자에게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자연을 정복한답시고 인간은 세계 각지로 식물을 운반했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자연을 보며 인간의 정복은 언제나 조건부였음을 깨닫는다.(333~334쪽)

 


2.jpg

 

 

『세계사를 바꾼 위대한 식물 상자』는 워디언 케이스를 중심으로 19세기 제국주의 유럽에서 전개된 식물 운반의 역사를 깊고 자세하게 서술한다. 식물을 옮기려는 인간의 욕망과 시도, 식물 운반에 얽힌 사람들, 식물 운반의 그림자, 식물의 이동이 일으킨 환경과 생태계의 변화 등등. 짧지 않은 분량으로 역사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상세히 짚어간다. 원예사와 역사가 만나 전개되는 이 역사의 관점은 그 자체로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만큼 우리가 알던 유럽 역사의 또 다른 이면을 이해할 수 있는 독특한 실마리가 되어주는 책이다.


워디언 케이스의 여정으로 식물 운반의 역사를 기록한 유일무이한 책. 어쩌면 이러한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인간이 얼마나 식물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증명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그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생명 주기에 따라 존재하던 자연을 복잡다단한 현상과 역사로 만든 건 결국 인간이라는 사실도 마주하게 된다. 아마 식물이란 존재와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에 대해 사유를 이어갈 수 있는 책과의 만남이 될 것이다.


수 세기 동안 이어진 식물 운반의 결과는 우리 삶에 아주 가까이 맞닿아있다. 자연과 생태계라는 넓은 범위의 개념부터 우리가 살아가는 주변 환경에, 그리고 다채로운 식물과 식재료가 놓인 집 안까지에도 말이다. 식물 운반 역사에 이어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면, 식물이야말로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에 실질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좀 더 피부로 느끼게 된다.


먹는 문제에도, 살아가는 환경에도, 그리고 한 국가가 살기 위한 경제적 이득에도 말없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식물. 그 사실을 역사로 마주하니 결국에는 식물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식물과 인간의 관계가 이토록 긴밀하다는 것을 말이다. 어찌 보면 인간이 일방적으로 댄 손길과 통제가 일으킨 일이기에 조금은 묘한 관계가 아닌가 싶지만, 한편으론 인간의 숱한 시도들에도 완전히 통제되지 않은 자연을 보노라면 인간은 그저 자연에 속한 생명체 중 한 존재이지 않은가 싶다. 아마 식물 입장에선 아마도 매우 성가신 존재. 여러모로 저자의 평가대로 결국 “자연의 균형은 우리 인간의 바람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오예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