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진심(眞心): 거짓이 없는 참된 마음 – 알렉산더 말로페예프 피아노 리사이틀

글 입력 2022.09.09 20:5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어떤 영감을 받고 싶어서 떠났지만 때로는 펜을 내려놓고, 카메라를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다. 순간에 취해, 잠시 몸을 본능적으로 맡기고 싶을 때. 펜도, 이성도, 생각도, 도구도 내려놓는다.

 

내게 있어서 ‘음악’만큼은 설명이 잘 안된다. 음악은 어렵다. 그리고 놀랍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관조적인 태도로 무언가를 분석하려 들 때, 음악은 그 틈도 주지 않고 피부 깊숙이 바로 침투한다.

 

인생에서 음악을 가슴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즉흥적이지만 유머러스하고 자유로운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들이 남기는 잔향은 짙다. 음악이 나에게 다가오는 방식처럼, 예기치 못하게 그들은 훅 들어오기도 하고, 훅 나가기도 한다.

 

음악이고,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직관적이고 솔직하다. 이런 음악 앞에 물러서지 않고, 그 어떤 거리도 애매하게 남기지 않고 당당히 나의 얼굴을 내보였을 때, 그래서 나는 예상치 못한 전혀 다른 세계에 도착해버린다.

 

*

 

이번 아트인사이트 초대를 통해 관람한 <알렉산더 말로페예프 피아노 리사이틀>에서 그런 기분을 느꼈다.

 

 

말로페예프_리사이틀_포스터 최종.jpg

 

 

솔직히 피아노 리사이틀을 관람은 처음이었다.

 

오케스트라 공연이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솔리스트의 공연은 몇 번 경험했지만, 무대 위의 피아노 한 대로 압도당한 적은 처음이었다. 롯데콘서트홀에서 장장 2시간 반 동안 말로페예프를 중심으로 응집된 에너지는 꽉 차, 새로운 별이 탄생하기 전의 이상하고도 회오리 같은 강한 기운이 공간을 감싸고 있었다.

 

공연은 1, 2부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2부의 곡과 에너지가 좋았다. 1부 처음을 장식한 곡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였다. 다른 곡들에 비해 익숙하게 들어본 멜로디였지만 왠지 모르게 약간은 아쉬웠다.

 

하지만 ‘아쉬웠다’는 느낌이 어디서 연유하는지는 잘 파악하지는 못했다. 베토벤을 비교적 선호하지 않은 취향 탓인지. 혹은 어떤 기술에 있는지는 (필자의 배경지식이 부족해) 알 길은 없었다. 그저 2부의 곡들까지 다 감상한 바로는 2부가 더 좋아, 상대적으로 1부가 아쉬웠다고 느낄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웠을 때도 베토벤, 모차르트 보다는 쇼팽, 드뷔시 등 서정성이 짙은 곡을 좋아했다. 그래서 2부에 등장하는 러시아 작곡가 스크리아빈의 곡이 개인적으로 좋았나 싶지 않다. 격정적이면서도 서정적인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1부의 곡에 비해 쉬는 텀과 강약이 매우 섬세했다고 느껴졌다. 물론 1부에 비해 몸이 더 풀려서일 수도 있지만, 말로페예프의 연주와 몸짓은 마치 춤을 추는 듯했다.

 

그의 빨개진 귀와 함께 어깨를 한껏 올리고 손가락 끝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는 모습은 말로페예프의 열정을 강렬하게 형상화했고, 곡이 끝날 때마다 모든 것을 불태우고 장렬하게 전사한 듯한 몸이 축 늘어진 마지막 장면은 볼때마다 매번 짜릿했다.

 

 

알렉산더 말로페예프 프로필 7.jpg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관객은 말로페예프가 보여주는 진심에 그의 곁에서 함께 걷기 시작했다. 아무런 물리적 행위의 교환도, 시선도 나누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연결되어 있었다. 이 느낌은, 공연이 끝나고서 무려 6개의 앵콜곡이 연주될 때까지 더더욱 짙어졌다. 연주가 끝나고 인사하고 우리는 박수로 화답하고, 그는 무대를 잠시 나갔다가 환한 얼굴로 다시 돌아와 피아노 의자에 다시 앉고.

 

앵콜곡을 연주하기 전, 피아노 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통해 “인간” 말로페예프의 모습을 잠시 엿볼 수 있었다. 연주할 때는 피아노와 연주자와 구분되지 않는 하나의 뜨거운 형체였다면, 피아노를 치고 있지 않은 말로페예프의 모습에서 관객과 무대를 위한 순수한 마음이 오롯이 느껴졌다.


어떤 진심을 목격한 지, 순간 너무 오래되었다고 생각했다.

 

진심(眞心) : 거짓이 없는 참된 마음.

 

이다지도 오래되었구나. 무언가 바꾸어 보겠다는, 무언가 이루어 내겠다는 순수한 열정 혹은 타인을 향한 거짓 한 톨 없는 진심에 대해 나는 어느새 의심부터 하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이러한 진심을 정말 오랜만에 마주했다. 더욱이 클래식 음악과 나 사이에 최소한의 매개체일 수 있는 ‘언어’나 ‘전문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오롯이 그 ‘음’들로 이러한 교감이 가능하다니.

 

 

[회전][크기변환]KakaoTalk_20220909_211242435.jpg

 

 

정말 ‘몸’뚱아리 하나면, 우리는 ‘음악’이라는 것으로, ‘언어’가 없어도 ‘매개체’가 없어도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구나. 가장 직관적이고도 솔직한 대화. 살아만 있다면 느낄 수 있고, 우리는 기꺼이 대화할 수 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무서운지, 너무나 많은 것들로 가려져 우리는 진정한 대화, 혹은 진심을 마주하지 않고 지내왔다. 아마도 인생에서 ‘진심’이라는 것이 더 이상 우선순위가 아니게 되어버렸으니까.

 

진심이 뭐. 진심으로 뭐 어떻게 해줄건데.

 

분명 많은 것의 시작은 진심이었을텐데, 더 이상 진심을 믿지 않게 되었다는 것. 그것이 너무나도 슬픈 현실일 때, 알렉산더 말로페예프는 보여주었다. 모국이 일으킨 비극으로 자신의 공연이 많은 나라에서 환대받지 못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은 결국 ‘음악’이라며. 그들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그래서 ‘음악’을, 그래도 해야겠다는 말로페예프의 인터뷰를 보았을 때 이상하게 마음이 저릿했다.


비록 이번 글에서 곡의 구성, 연주 테크닉 등에 대해서는 적확한 언어로 적어 내리지는 못했지만, 가슴 깊이 울컥했던 감정을 “느꼈다” 정도로밖에 적어 내리지는 못했지만, 그의 연주로 인해 음악에 대한 나의 태도, 가치관 등에 대한 어떤 전환점을 맞았다는 건 분명하다. 때로는 그들이 가진 재능을, 혹은 인생을 다 바칠만한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부러워해 왔지만, 그런 진심을 내비치는 이들이 있기에 내가 이런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나 싶지 않다.


그래서 이 세상에 진심이 다가 아닐 수는 있지만, 진심이라는 것으로 꼭 한번만은. 단 한명에게라도 보이고 싶은 소망이 생겼다. 나도 나만의 진심을 목격해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민지연.jpg


 

[민지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