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음악이 소설이 될 때 : 알렉산더 말로페예프 피아노 리사이틀

건반 위의 예술가, 알렉산더 말로페예프
글 입력 2022.09.0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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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Beethoven - Piano Sonata No.17 Op.31 No.2 'The Tempest'

베토벤 -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

 

‘근대 회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폴 세잔의 그림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세잔의 작품을 입체적으로 느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책에서 마주하는 이미지를 노력으로 느끼기엔 분명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미술관에서 그의 그림을 마주쳤을 때 나는 폴 세잔이 왜 폴 세잔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실제같이 세밀한 묘사는 없어도, 두꺼운 물감으로 쌓아 올린 농도의 맛이 각 사과의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나게 했고,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이미지와 그림은 비슷한 면이 있지만, 화가의 손길과 감성에 의해서 그림은 완전히 다르다.

 

그날 세잔의 색채감을 기억하려고 카메라보다 눈에 담으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말로페예프_리사이틀_포스터 최종.jpg

 

 

그리고 사람의 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저 음원으로 듣는 것과 연주자가 실물로 연주하는 장소에서 듣는 경험은 비교할 수가 없었다. 건반을 향한 ‘알렉산더 말로페예프’의 재빠른 손놀림과 혼신의 힘이 담긴 음들은 공연장 내로 퍼져 관객의 마음 구석구석 닿았다.

 

‘1시간 넘는 피아노 연주만 듣고 있기엔 다소 지루하지 않을까..’라는 나의 어리석었던 생각이 바로 무색하게 사라질 정도로 말이다. 분수대처럼 솟아오르는 건반 사이로 부자연스러운 끊김이 없이 연주하는 그의 모습은 무대 위 댄서 같았다가, 화가 같기도 했다. 그의 연주가 계속될 때마다 나는 마치 소설을 읽듯이 여러 차례 이미지들을 떠올렸다.


첫 곡,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를 듣자마자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가 떠올랐다. 그림 속 푸른 안개는 새벽 공기의 향처럼 느껴지고, 파도는 남자의 발밑까지 올라와 있다.

 

남자는 겁먹지 않은 뒷모습으로 넘실거리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다.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한 그의 모습에서 미술사에서 이야기하는 ‘숭고’의 감정이 저절로 떠올라졌다. 순식간에 나는 중세 시대로 넘어와, 낡고 거대한 저택에 머물며, 파도 따위는 무섭지 않은, 이 그림 속 남자의 눈으로 세상을 엿본다.

 


131.jpg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캔버스에 유채, 94.8 x 74.8 cm

1818, 독일 함부르크 미술관 소장

 

 

사실 이 곡은 악화된 건강 상황과 겹쳐 연인과의 사랑이 실패했을 때 쓰였다고 한다. 한편 곡에 붙여진 ‘템페스트’는 그 뜻 자체로 ‘폭풍’이자, 셰익스피어의 소설 중 하나이다. 태풍, 조난 사건과 관련이 있는 이러한 소설까지 함께 보면, 곡의 분위기는 총체적으로 깊이 있게 형성된다. 이제 그림 속 뒷모습의 남자는 템페스트에 등장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곡을 썼던 베토벤으로, 지금 내가 듣고 있는 곡의 연주자로 겹쳐 보인다.


“비극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우리 모두가 주인공인 비극 말이다. 한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에 맞춰, 비극을 상연하는 무대의 커튼은 스르르 위로 말려 올라간다. 죽음만이 그 커튼을 다시 내릴 수 있는 지겨운 공연. 앙코르도 받을 수 없는 단 한번의 공연.” - 강민주의 노트에서*

 

위는 양귀자 작가의 소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의 소설 중 한 구절이다. 특히 이 책의 주인공, ‘강민주’의 노트에 적힌 구절이다. 위처럼 죽음만이 끝인, 한 번의 공연과 같은 우리의 삶. 그 삶을 생각할 때, 다비드의 그림 속 남자가 비극을 마주하는 태도는 현실에서도 배울만하다.

 

아무래도 파도 위 무서워서 움츠러들어 있는 모습보다 소설의 강민주처럼 다비드의 그림 속 남자처럼, 언제든 달려오려는 비극을 향해 굳건히 마주할 용기가 있는 모습이 낫지 않겠는가. 알렉산더가 연주한 베토벤의 이 음악은 밝게 응원하지는 않더라도, 각자의 삶 속 배경음악으로써 내면의 강인함을 선사하고 있다.



알렉산더 말로페예프 프로필 7.jpg

 

 

그의 연주는 동공과 귀를 넘어 나의 마음까지 확장하게 해주었다. 사실 이번 공연에 앞서, 그는 스무 번 넘게 공연이 취소되는 ‘비극’을 받아들여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고도로 집중된 그의 손끝엔 영혼이 실려 대체 불가할 수 없는 그만의 연주가 되었고, 음악을 잘 모르는 나도 단번에 클래식에 흠뻑 빠지게 만들었다. 진실한 그의 연주에 내가 보낼 수 있는 최대의 박수를 아낌없이 보내며 글을 마친다.

 

 

* 인용 출처

양귀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쓰다, 2019, p.211

 


심은혜.jpg

 

 

[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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