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나를 거절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그때의 거절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어
글 입력 2022.08.3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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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거절했던 모든 이들에게


 

아직도 그때의 거절의 기억들이 생생하네요. 이런 이야기를 여기서 꺼내기 조금 부끄럽지만, 이제 해야 될 때가 온 것 같아요. 당신과 나 사이에 있던 일을, 이제 솔직하게 풀어 놓으려고 해요. 어쩌면 저에게만 남았을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제 기억 속 여러분들을 모두 놓아주고, 전하지 못했던 말을 몇 자 적어봅니다.

 

 


안녕하세요 과학선생님


 

제 인생에 첫 좌절을 알려주신 선생님. 과학실 청소가 있던 날, 저는 슬쩍 선생님의 자리로 가서 저의 꿈을 얘기하고 이런 과학 동아리를 만들어 운영해 보고 싶다고 상담을 했었죠. 선생님은 저의 수학 등급을 물으시고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저의 꿈을 다시 생각해 보라 말씀하셨어요. 소심 그 자체였던 18살짜리 학생은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꾹 참으며 그 과학실을 후다닥 빠져나왔죠.

 

그날은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었어요. 축축해진 베개와 함께 울다 지쳐 잠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푹 잘 잤던 탓일까요. 다음날 아침은 상쾌했고 어제 일을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진정이 됐어요. 선생님 말처럼 내가 꾸었던 꿈과 현실의 간극은 분명히 있었어요. 또 진지한 고민이 없는 꿈이었죠.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이 맞을까, 어떤 일을 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미디어에 비친 이미지와 허상을 쫓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숫자와 증명, 물리와 연구에 평생 함께 해야 하는 직업이었는데, 사실 저는 그런 삶엔 관심이 없었거든요. 지루할 것 같은 거예요. 단순히 '멋있어 보여서', 꿈만 꾸고 있었던 거죠. 실제로는 좋아하지도 않고 흥미도 없으면서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그런 꿈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요. 하루빨리 진정한 제 모습을 보게 되었으니까요. 허상 가득한 꿈만 꾸고 있던 저는 선생님과의 이야기로 좋아 보이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어요. 과정이 평화롭진 않았지만 오히려 그 과정 덕분에 강해졌습니다. 저를 지킬 마음의 근육을 기르는 계기가 되었거든요. 성장을 하고 올바른 길을 찾는 시작점이 되었으니, 감사했다는 말씀드립니다.

 

선생님 잘 지내시나요? 아무쪼록 안녕하시고, 학생들이 상처받지 않게 좋은 선생님이 되셨길 바랍니다.




안녕, 학원 친구들


 

우린 입시 학원에서 밤늦게까지 같이 공부했었지. 학원 저녁시간엔 맛있는 밥을 먹으러 함께 찾아다녔던 게 기억나네. 그런데 어느 날, 너희가 나를 따로 불러내서 이제 저녁은 따로 먹자고 이야기했었지. 나는 조금 놀랬어. 어느 정도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막상 현실에서 여러 명에게 둘러싸여 그 말을 들으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더라. 그래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쿨하게 그러자고 대답하고 뒤돌아섰어. 괜찮은 척하며 강의실로 돌아가는 동안 내 스스로가 어치나 비참해 보이던지.


학원의 목적은 네트워킹이 아니라 학습이라고 생각했었어. 물론 관계도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주요한 요소긴 하지. 그렇지만 부모님의 등골을 휘게 하는 학원비와, 몇 달 안 남은 입시에 절박하기도 한 상황이어서 관계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어. 학원에 왔을 당시 쉬는 시간에 모두 중앙 홀에 모여 이야기하고 왁자지껄 놀았던 게 기억이 나. 초반엔 분위기에 맞춰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점점 그 시간이 아까워지기 시작하더라고.

 

이곳에서 친구를 사귀고 우정을 나누는 게 공부보다 중요한 건가 생각이 들었어. 매시간마다 모든 친구들이 그렇게 움직이니, 이 사교의 장에 참석하는 게 강제성이 생기는 것 같아서 반발심도 스멀스멀 올라왔던 거 같아. 그래서 계속 자리에 앉아서 공부를 이어나가곤 했어. 점차 각자의 무리가 생기고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오가더라고. 그렇게 조금씩 소외됐지. 그래도 난 억지로 무리에 들어가는, 나답지 않은 모습으로 살긴 싫었어. 그러다 보니 그런 배척의 얘기가 오갔던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던 것 같아.


그 얘기를 듣고는 나를 보는 내 시선이 바뀌어버렸어. 심리학자 아들러가 그랬잖아.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라고. 나의 고민은 조금 삐뚤어져서 나에게서 부족한 모습을 계속 찾아냈고 나를 갉아먹었어. 이런 내 모습도 하나의 가치관으로 괜찮은 건데, 내가 이상한 사람이고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보게 된 거지. 공부에 지장이 들 정도로 마음이 힘들어지자 그 환경에서 도망쳤어.

 

그 일이 있고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집단을 경험하면서 깨닫게 됐어. 모든 이들의 가치관은 다 옳구나. 배척할만하거나 월등한 가치관은 없었어. 그리고 당시엔 도망쳤던 내가 한심해 보였었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더라고. 나랑 맞지 않는 옷을 입을 바엔 차라리 혼자 있는 게 더 행복했거든. 세상을 살면서 모두와 친구가 될 필요는 없더라. 그러니 가면을 써가며 애써서 그 이너서클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아. 이 말을 그때의 나와 너희들 모두가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동안 나는 내 서클을 만들었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있어. 그 서클 안에서는 편안한 나의 모습을 맘껏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아. 누구라도 나의 서클에 들어오고 싶다면 들어올 수 있어.


너희들 모두 잘 지내지? 잘 됐으면 좋겠다. 덕분에 관계의 두려움도 극복하고 한층 성숙해졌어. 너희들도 너희만의 서클이 생겼으면 좋겠다. 고마웠어.

 

 

 

사실은 거절 받았던 그때의 나에게 쓰는 편지


 

참 많은 용기를 낸 것 같아. 나의 존재를 처음으로 인정받았던 게 글이었기에, 글을 쓰며 나는 항상 괜찮은 사람이라고 포장하느라 바빴거든. 이렇게 결점이 있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적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어. 그런데 이렇게 솔직히 풀어놓으니 어딘가 묶여있던 매듭이 풀린 느낌이야. 오히려 후련해. 나를 인정하니 그때의 내가 객관적으로 보이고 어느새 그때의 일을 극복한 내가 보이는 거야. 나를 사랑하려면 나의 가장 추한 모습을 볼 줄 알아야 하더라고.

 

그때 거절의 경험을 한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 거절 없이 순탄히 잘 풀렸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야.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도 찾지 못하고, 관계에 의연해지지도 못했을 테니까. 살면서 필요 없는 경험은 없더라고. 거절의 순간을 거쳐와 지금의 내가 되어서 다행이야. 살면서 누구나 거절을 경험해. 다만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다르지.

 

부끄럽고 숨기고 싶고 없애버리고 싶던 기억이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걸 알게 됐어. 나를 알게 되고, 스스로에게 당당해지니까 과거의 상처도 다 성장의 디딤돌이었다는 생각도 들어. 숨겨놓고 회피하기보다는 꺼내서 직면하는 게 훨씬 더 '괜찮은 나'로 만들어줬잖아.

 

그때에 갇혀있는, 멈춰있는 나를 이제 놓아줄 수 있게 돼서 다행이야. 앞으로 만날 수많은 거절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의연히 마주 보길 바랄게. 안녕!


 

 

[아트인사이트] 이소희 컬쳐리스트.jpg

 

 

[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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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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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 멋지고 성숙한 글이네요. 앞으로도 작가님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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