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커피 마시러 가자고! [사람]

커피의 매력에 대하여
글 입력 2022.08.22 14:38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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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감긴 눈으로 현관을 나선다. 셔츠 단추는 두 개쯤 풀려 있다. 당신은 단추를 다 잠글 것인지, 하나를 풀고 다닐 것인지도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한번씩 비틀거리는 걸음에 잠이 조금 섞여 있다. 그럼에도 당신은 카페에 간다. 비몽사몽한 채로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킨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없으면 하루를 못 버티겠다는 사람이 날로 많아진다. 그것은 빌딩숲의 생존키트이면서 도시인의 피다. 아침 9시에 강남역 혹은 여의도역에서 내리는 사람들에게 주사를 꽂아보면 아메리카노가 뽑혀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들은 습관처럼 커피를 마신다. 카페인이 다량 함유된 콩물은 잠을 쫓는 데에 탁월한 효과가 있어서, 올빼미로 진화하려는 현대인들에게는 아주 탁월하고 필수적인 음료다. 그러나 커피는 잠을 쫓는다는 특징 말고도 탁월한 점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대화를 이끌어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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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겨울, 나는 이제 막 자대 배치를 받은 이병이었다.

 

훈련소에서 군기가 바짝 들어, 자대에 간 이병은 부대의 모든 것이 생소해서 걱정이 많았다. 제일 걱정인 것은 역시 선임이었다. 선임이 무서운 분들이거나 이상한 분들이면 어떡하지, 나 말로만 듣던 병사 간 폭력의 피해자가 될지도, 하는 온갖 쓸 데 없는 생각을 하면서 자대에 전입을 가게 되었다.

 

첫 날, 나는 선임으로만 가득 찬 방에 던져졌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가만히 있었다. 15명 정도 되는 선임들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행히 선임분들은 고항이 어디냐, 좋아하는 아이돌이 있냐, 질문을 해주시면서 분위기를 편하게 이끌어 주셨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라고도 해주셨다. 그렇지만 할 수 없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너무 무섭잖아요. 선임들이 편하게 하라고 해도 갓 전입 온 이병은 걱정과 공포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여전히 굳어있던 그때, 한 선임분께서 다가와 내게 물었다.

 

“커피 좋아하니?”

 

나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병은 안좋아한다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좋아한다고 답했다. 선임분은 책상 한쪽에 올려진 박스에서 핸드드립 도구들을 꺼내더니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근사한 핸드드립 커피 몇 잔이 완성되었고, 선임은 내 손에 커피를 들려주시더니 나에 대한 몇 가지 질문들을 하기 시작하셨다.

 

이상했다.

 

분명 이전에도 선임들께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나는 무서워서 대답을 잘 못하거나, 짧게만 대답했다. 그런데 커피가 생기자마자 그렇게 무서워 보이던 선임분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커피의 따뜻함 때문인지, 나에게 커피를 내려준 선임분의 따뜻함 때문인지, 둘 다 인지는 모르겠다.

 

그날의 커피는 계급을 막론하고 사람 대 사람으로 소통을 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녀석이었다. 말 잘하게 만드는 약이었는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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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해보면 우리는 대화를 하고 싶을 때 “커피 마실래?”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곤 한다. 뭐, 대화를 하기에 카페만 한 장소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이렇게 주장하고 싶다.

 

커피는 사람들을 말하게 한다!!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나누는 연인의 앞에도, 큰 돈이 오고 가는 미팅 자리에도, 오랜만에 만나 점심을 같이 먹은 친구의 손에도 커피가 있다. 무엇이든 말하고 싶을 때 우리는 일단 커피를 시킨다. 커피를 시키면 말이 같이 나오기 때문에. 사실은 커피가 마음과 입을 움직이는 연료이기 때문에. 우리는 커피를 마신다.

 

생각해보면 아침에 잠을 쫓기 위해 도핑용으로 먹는 커피와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위해 먹는 커피는 조금 다르다. 소통을 할 때 먹는 커피가 훨씬 포만감이 든다. 왜 그런가 하면, 커피를 마실 때 같이 마시는 상대방의 말을 꼭꼭 씹어 삼켜야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커피에 어울리는 최고의 디저트는 케이크나 마카롱이 아니라 좋은 사람과의 좋은 대화인 셈이다.

 

누구에게나, 이야기하지 못하면 속병을 앓을 것만 같은 주제가 있기 마련이다. 걱정하지 마시라. 당신이 말할 때 눈을 봐 줄 좋은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한 마디만 하면 된다.

 

커피 마시러 가자고!

 

그것은 대화를 위한 마법의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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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명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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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파랑파랑
    • 커피가 사람들을 말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재밌는 글이네요! 확실히 대화 이외의 행위가 추가된 자리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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