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기록하면, 특별해진다

기록 맥시멀리스트가 되고픈 자의 기록
글 입력 2022.08.18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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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면, 특별해진다.



글을 쓰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것을 글로 쓰는 게 아니라, 쓰다 보면 특별해지는 게 아닐까 하는. 돌이켜보면 그랬다. 의미 있는 어떤 것을 글감으로 가져올 때도 많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쓰다 보면 특별해졌다.


연초에 쓴 일기와 그동안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했던 글을 주욱 훑어보니 그 생각에 더욱 힘이 실렸다. 그 속에 들어있는 내 이야기들이 모두 처음부터 대단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으니까. 쓰는 과정에서 애정인지, 애증인지,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소리없이 묻어나고 짙어지면서 완성된 이야기였고, 그것들이 소중해지고 특별해지는 건 예정된 수순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니까 내 주관적인 경험으로 말미암아 주관적인 결론을 내리자면 이렇다. 기록하면, 특별해진다. 마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아무것도 아닌 보통 날에 특별한 날이라며 이름을 붙여주는 순간, 기념일이 되는 것처럼.


평범한 일이나 별다르지 않은 것을 글이나 사진으로 남겨 놓게 되면, 그 순간부터 조금씩 달라진다. 의미있어진다. 어떤 식으로든.

 

 

 

해왔던 기록



사진을 찍는 것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카메라 속 피사체가 무엇이든 그랬다. 그냥 귀찮기도 했고, 여행이 아니라면 굳이? 싶었던 것도 있다. 그랬던 과거가 무색하게도 지금은 길을 걷다 갑자기 하늘이 너무 예쁘다며 걸음을 멈추고 핸드폰을 주섬주섬 꺼내 들기도 하고, 맛집에 가서 음식이 나오면 수저를 들기보다 사진부터 찍곤 한다.


특별한 것만 사진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기는 순간 특별해지는 줄도 모르고. 일상을 여행처럼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은 사진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통과하는 햇빛이 눈부시게 반짝여서. 지나가다 마주친 고양이가 나른하게 누워있는 모습이 귀여워서. 오랜만에 시도한 요리가 생각보다 먹음직스럽게 만들어져서. 주문한 커피가 나왔는데 컵에 둘러진 컵홀더가 퍽 깜찍해서. 그러니까 내 핸드폰 갤러리는 이런 이유로, 저런 이유로 찍은 별것 아닌 일상 사진들로 가득 차있다. 시간이 흐르고 난 후 그 사진들을 감상하듯 바라본다. 나만의 갤러리에 전시된 내 이야기들은 나를 추억하게 하고, 웃음짓게 한다.

 


KakaoTalk_20220818_163211728.jpg
하늘을 유영하는 고래를 만났다며 신나서 찍은 사진

 


일기는 사진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단 한 줄이라도, 키워드 몇 개라도 적어 놓으면 희미해서 없어질지도 모를 과거의 기억에 색을 덧칠하는 기분이 든다. 물론 모든 날 모든 순간을 기록하고 기억할 필요는 없지만, 성정이 꽤 단순하고 기억력이 그리 좋지 않은 내겐 어느 정도 필요한 일이다.


사실, 기록하면 특별해진다는 말은 일기와 제일 잘 어울린다. 수기로 일기를 작성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특별하게 다가온다. 직접 손으로 글을 쓰는 것은 핸드폰 액정이나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보다 더 많은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핸드폰이나 컴퓨터에 지정된 폰트가 아니라 내 손에서 나오는 나만의 필체로 쓴 글에는 깊은 진심이 녹아들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일기에 쓸만한 일'같은 건 없을 지도 모른다. '기록할 만한 일이 없는데..'하며 고민할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른다. 새하얀 종이 위에 펜을 쥔 손으로 사각사각 써내려 가는 과정이 이야기에 숨을 불어넣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특히 라디오 DJ처럼 오늘의 음악을 선곡해 적어 놓는 건 내 오랜 즐거움 중 하나이다. 오늘 많이 들은 노래, 요즘 특히 빠져 있는 노래, 오늘 기분이나 날씨랑 잘 어울리는 노래를 다이어리 한 켠에 적어 놓는다. 손글씨로 박제된 음악은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더 의미 있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어딘가에서 우연히 그 노래가 흘러나올 때 적어 놓은 다이어리가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다. 그때 이 노래를 즐겨 들었지, 당시에 이런 일이 있어서 일기에 끄적였었지,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 회상하곤 한다.

 

그렇게 켜켜이 쌓인 기록들을 돌아보니 어쩐지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든다.

 

 

 

아트인사이트 기록



아트인사이트 기록은 특별하다. 어떤 의미에서 그렇냐면, 평범한 것을 비범한 것으로 바꾸어 준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아트인사이트에 글로 남기면 풀어낸 이야기가, 이야기의 대상이, 그 자체가 소중해진다.

 

[인생에 '빨리 감기'와 '되감기'가 있다면 : 클릭]은 아트인사이트에 남긴 내 첫 발자취이다. 두서는 없고 비문은 많아서 내놓기에는 조금 부끄럽고 민망하지만, 그럼에도 유독 눈길이 가고 마음이 가는 글이다. 물론 '처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각별함 때문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어쩐지 애틋하고 소중한 느낌이다.


밴드 이매진 드래곤스, 드라마 피노키오, 소설 피프티 피플, TV 프로그램 방구석1열, 영화 이프온리, 동감 등 여러 주제로 쓴 다른 글들도 마찬가지이다. 그것들은 나를 기민하게 만들고, 우쭐하게 만든다. 어디선가 그들의 이야기가 들려오면, 반사적으로 귀를 쫑긋하고 집중한다. 그리고 좋은 반응이 들려오면 만족스러워한다. 우쭐해한다. 마치 그것들을 만들어 낸 창작자가 된 것처럼 말이다.

 

올 2월에는 [나의 어린 글로부터]라는 글을 통해 대학교 수업에서 작성했던 에세이를 소환시켰다. 사실 그 에세이는 내게 큰 의미가 없었다. 그냥, '과제'였다. 학부 시절 했던 과제 중에 하나. 조금 달랐던 건 내가 직접 찍은 사진과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만든 글로 채워진 과제였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이 생각보다 재밌었다는 것.

 

그뿐이었는데, 아트인사이트에 그 에세이를 담아 액자식 구성으로 글을 남기고 나니, 조금 달라졌다. 아니, 조금씩 달라졌다. 언젠가부터 '여러 과제 중에 하나'였던 에세이가 아닌, '자연에서 되돌아보다'라는 제목을 가진 '나의 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남다른 애정이 생긴 거다. 글을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시나브로.


짧지 않은 시간을 글감에 풍덩 빠져서 헤어나오지 않고 골몰해서일까. 아니면 함께 그 시간을 지내고 그럴듯한 결과물을 완성하면서 형성된 동지애 때문일까. 아. 둘 다 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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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필요에 의해 시작했지만, 기존에 하던 기록 방식과는 다른 매력이 있어서 자주는 아니더라도 조금씩 천천히 쌓아가고 있다.


인스타그램은 꼭 퍼즐 같다. 작은 퍼즐 조각이 모여 하나의 큰 그림을 완성하는 것처럼, 계정의 피드를 다 모아 놓으면 그 계정을 운영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런가 하면 블로그는 하나의 그물망처럼 느껴진다. 카테고리 속 각각의 콘텐츠가 다 독립되어 있는 것 같아도 멀리서 보면 하나로 이어져 있는 거대한 그물망. 작은 퍼즐 조각과 그물망의 작은 선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오래 즐기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도 아트인사이트에 기록을 남기고 싶다. 가능하다면 오래. 가끔은 아찔할 만큼 글이 힘들어지고 글쓰기가 싫어지겠지만, 그래도. 쓰는 과정에서 피어나는 묘한 만족감이, 하나의 글을 완성했을 때의 쾌감이 그 싫증을 상쇄할 만큼 강력하니까.


그러니까 나만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데에는 오랫동안 맥시멀리스트로 남고 싶은 건 내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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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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