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알려지지 않은 미술가들의 삶을 조명하다 - 도서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

그리고 그들이 내 곁으로 돌아왔다
글 입력 2022.08.19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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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려진 이들에게서 진실을 볼 때가 많다. 우리가 모른 체 지나친 사람들만이 품고 있는 진실이 있다. 이를테면 오랜 시간 무명이었던 시인 친구에게서 세상을 달래는 유연한 마음을 읽었고, 오랜 시간 일거리가 없던 일러스트레이터 친구에게서 살아 있는 동안 본 적 없는 독창성을 보았다.”

 

- <서랍에서 꺼낸 도서관> p.185 중에서


 

도서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을 한 단어로 표현해볼까. ‘조명하다’라는 동사다. 비칠 조(照), 밝을 명(明). 문장으로도 표현해본다. "알려지지 않은 미술가들의 삶을 조명한다."


얼마전 아트인사이트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물성’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명확한 스토리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추상성이 아니라 물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 미술 작품이 선사하는 물성을 피부로 실감하게 된 건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 덕분이었다. 인간의 추상성, 즉 모호한 감정, 삶과 죽음, 이별, 사랑, 두려움 등을 고유한 작품의 ‘물성’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1부에서부터 4부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초연하고 담담하게 사라진 화가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소멸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미술에세이스트이자 이소영 작가가, 역사 너머 사라진 화가들에게 마음을 쏟는 여정은 그야말로 ‘따뜻함’의 온도를 품는다. 그들의 삶이 사라질지언정 그림과 예술을 통해 남겨진 역사와 가치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이 책이 산 증인이다.


 

 

1부 : 내 삶을 바꾼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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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dl Dicker-Brandeis 'Lady in a Car' Jewish Museum (Praha), 1940.

 

 

프리들 디커브랜다이스는 늘 “예술은 어린이들의 가장 위대한 자유”라고 강조했다. 그녀가 만난 어린이들의 그림에는 자유가 있었고, 나치의 억압 속에서도 어린이들의 그림에는 꽃병, 들판, 지나가는 기차, 바닷속 생물들이 자리했다.

 

디커브랜다이스는 테레진 수용소에서 매일 두려움에 떠는 유대인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쳤다. 훗날 생존한 제자들은 디커브랜다이스의 미술시간이 자신들에게 희망과 자유를 상상하는 법을 알려줬다고 전했다. 그녀를 단지 미술가라고 칭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절망의 수용소에서도 어린이의 꿈과 희망을 노래한 진정한 스승이 아닐까.

 

그녀는 좋은 사람이자 좋은 어른이었다. 아이들에게 삶의 비극 속에서도 아름다운 세상을 알려줬다.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Nevertheless)'라는 부사의 대명사다.

 

 

 

2부 : 독특한, 괴이한, 불가해한, 그래서 매력적인



공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상상말고 공상. 상상은 그저 경험하지 않은 걸 마음 속으로 그려보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지금 당장 아이스크림을 먹는 '상상'을 해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상상은 당장 10분 뒤에라도 실현 가능하다. 하지만 공상은 다르다. 현실적이지 못한 것을 막연히 그려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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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rdinand Cheval 'Palais Ideal du Facteur'

 

 

여기, 세월의 무게에도 굴하지 않고 공상을 상상으로, 상상을 현실로 전환시킨 사람이 있다. 바로 페르디낭 슈발(Ferdinand Cheval)이다. 오트리브라는 마을에서 꼬박 33년을 우체부로서 일한 그는 끊임없이 걸으며 공상을 즐겼다. 슈발은 자신만의 '궁전'을 꿈꿨다. 우편물을 배달하기 바빴지만 언젠가 가닿을 수도 있는 '꿈의 궁전(Le Palais Idea)'를 건설했다. 그리고 슈발은 탑과 옥상, 정원과 온갖 종류의 새가 있는 그 궁전을 드로잉으로 옮겼다. 그 꿈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정교히 구체화시켰다.

 

어느날 그는 신기하게 생긴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고, 그 돌을 보며 '자연의 재료를 선물이라 여기고 이 재료로 궁전을 짓자'고 다짐한다. 그 이후로 16년간 건축에 매달린 슈발. 1912년 마침내 그가 직접 만든 '돌로 지어진 궁전'이 완성됐다. 도저히 혼자만의 힘으로 건설했다고 믿기 힘든, 높이 10미터 규모의 돌 궁전. 그는 그 건물을 만들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누군가는 '이룰 수 없는 꿈'이라 외면하고 조롱했더라도 결국 슈발은 해냈다.

 

2022년의 삶으로 돌아온다. 이룰 수 없는 꿈, 이룰 수 없는 목표라 여겼던 것들이 물과 공기처럼 일상이 된 세상. 페르디낭 슈발의 꿈이 현실의 '궁전'으로 완벽히 재현된 일화를 통해 다시금 확언한다. 이룰 수 없는 꿈이라 생각하면 이룰 수 없고,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룬다. 설령 최초의 계획에서 어긋난다 하더라도 자신의 꿈의 색깔과 모양에 결국 가닿을 것이다. 선명하게 꿈꾼다면.


 

 

3부 : 새로운 ‘눈’과 ‘손’이 이끄는 길


 

한동안 이 그림에 시선을 고정하며, 왠지 모를 애틋함이 느껴졌다. 사람의 형태와는 다소 이질적인 모습을 띠는 로봇이지만 그 안에 담긴 노곤함과 피로감의 표정은 영락없는 우리네 일상이었다.

 

요세프 차페크의 그림에는 사람인지 로봇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인물들이 꾸준히 등장한다. 무기력한 군중의 표정 속에 로봇의 모습이 있으며, 로봇의 집단행동 속에는 인간의 면모가 보인다. 마치 하루일과를 마치고 지하철에 앉아 푹푹 졸아가며 집으로 돌아가는 누군가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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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f Capek 'Harmonista', Shopistica Gallery(Praha), 1919.

 

 

100년 전에 그려진, 사람의 얼굴을 한 로봇그림에서 나의 모습을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긍정적인 에너지와 희망만을 외치며 살아간다 해도,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지고픈 순간은 바람처럼 찾아온다. 한 줄 희망의 글씨없이도, 그저 이 로봇의 애처로운 얼굴을 보고있자면 저절로 위로가 된다. 그래, 지쳤지. 지칠 수 있지. 지쳐도 돼. 이런 말들을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나에게 건네고 싶다.


 

 

4부 : 그리고 그들이 내 곁으로 돌아왔다


 

파리 골목골목을 다니며 소중한 사연과 풍경을 그리는 우체부의 사연도 인상깊다. 낮에는 우체부 일을, 밤에는 그림을 그렸다. 평생을 우체부로 살다가 화가가 된 루이 비뱅이다. 파리 곳곳을 넘나드며 있는 그대로의 삶의 현장을 수많은 그림으로 담았다. 도시의 관찰자로, 마을 사람의 전달자로서 그가 그려낸 수많은 작품들은 대체 불가능한 고유함과 경험의 깊이를 드러낸다. 이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발견한다.


 

“당신의 삶과 작품이 나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행위 그 행위 자체를 더 좋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사는 도시를 아름답게 기억하는 방법을 창작에 담는 것입니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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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uis Vivin, Scene De Port, 미상.

 

 

루이 비뱅이 우체부로서의 일을 지속하면서도 끊임없이 그림 그리기를 놓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좋아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림은 단지 그가 사랑하고 염원하는 그 무엇이었기에, 그저 묵묵하게 그리는 세계의 루이 비뱅은 언제나 빛나고 있었다.

 

그의 자세를 통해 ‘좋아하는 행위’를 생각한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그림일 수도, 음악일 수도, 운동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글’과 ‘춤’ 그렇다. 글을 적어내려갈 때는 재즈음악을 연주하는 것처럼 의식과 무의식이 춤을 춘다. 춤을 출 때는 몸과 마음이 온전히 연결되는 평온함을 느낀다. 글과 춤이 없는 나를 상상해본 적이 없는 것처럼, 루이 비뱅의 삶 또한 그림없는 인생을 떠올려본 적도 없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 좋아하는 행위 자체를 더욱 아끼는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기. 이보다 더 풍요로운 것이 있을까.

 

조금은 더우면서도 습한 기운이 감도는 22년 8월이다.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이 집으로 도착하고, 책을 한 장 두 장 읽어가며 어느새 나의 공간은 사라진 미술가들과 대화를 하는 장이 되었다. 인종과 나이, 성별과 장애에 관계없이 모든 이들이 그저 ‘느끼고’, ‘표현하고’, ‘기록한’ 역사를 스스럼없이 꺼내는 그런 열린 공간말이다. 그 옛날 미술가들의 살결이 베인 땀방울을 감각하는 여행을 떠났다. 단지 이들이 지나온 인생 여정을 읽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 어깨에 들어간 굳센 힘은 서서히 풀리고, 꽉 움켜쥐었던 손가락은 자연스레 벌어졌다. ‘힘을 빼고 가장 위대한 자유를 누려보자.’


용기가 필요한 시대다. 타인의 인생이 아닌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아낼 용기. 어른도 어린이도 지금 당장, 좋아하는 것을 좋아해야 한다. 화제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명대사 “어린이는 지금 당장 놀아야한다”처럼 말이다. 언젠가 사라질지더라도 자신보다 오래 살아남을 무수한 작품을 그려낸 아웃사이더 예술가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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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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