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작된 이미지로 바로 읽는 현대 사회의 진짜 얼굴 [미술/전시]

현대 사진의 거장 안드레아스 거스키
글 입력 2022.08.16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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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와 구별되는 사진의 가장 주요한 특징은 “재현성”에 있다. 아무리 실제와 유사하게 그린 그림이라도 사진만큼 피사체를 똑같이 재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진 역시 완벽하게 객관적이라 할 수 없다. 셔터를 누르는 것은 결국 사람이고 그의 의도는 명백히 사진에 담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어떠한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실제 사실과 다르게 왜곡하여 연출한 사진들이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대체로 보도 사진들이 그 대상이다.


한편, 때로는 현상을 그대로 복제하고 재현하는 것보다 허구의 이미지나 이야기가 현실을 더욱 명확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한국 자본주의 사회 속 빈부격차를 상승과 하강이라는 수직적 구조를 통해 시각적으로 와닿게 한 영화 <기생충>과 같은 작품들이 그 예시일 것이다.

 

 

 

안드레아스 거스키 展을 다녀오다


 

현대 사진의 거장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작품들은 조작된 사진 이미지로 인류와 문명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을 드러내며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진짜 현대 사회의 얼굴을 마주 보게 한다.

 

안드레아스 거스키는 여러 개의 이미지를 이어 붙이거나, 의도적으로 입체감을 제거해 평면적 구성을 만들고, 대상을 강조하기 위해 색상을 조정하는 등 다양한 이미지 편집 및 조작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는 새로운 감각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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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현대미술 기획전 <안드레아스 거스키> 展에서는 거스키의 1980년대 중반 초기작부터 2022년 신작까지, 그의 예술 세계 전반을 아우르는 사진 40여 점을 소개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거스키의 개인전으로 그가 사진 예술에 몰두하며 시도한 다양한 실험과 그를 통한 사진의 예술적 영역의 확장을 접할 수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라는 거대함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거스키 사진들은 그 사이즈에 일차적으로 압도된다. 대체로 거스키가 포착하는 이미지들은 현대문명의 발전을 나타내는 공장 또는 아파트 등이다. 이는 보는 이들이 하여금 마치 거대한 자연의 힘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두려움과 유사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서양 철학에서 말하는 '숭고'를 우리는 거스키의 작품을 통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에서 느끼는 것이다.

 

<파리 몽파르나스>는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대표작 중 하나로, 파리 최대 규모의 아파트 건물을 피사체로 한다. 건물 건너편의 두 군데 시점에서 촬영한 이미지들을 조합해 위와 같은 작품이 탄생했는데 이 과정에서 거스키는 소실점을 제거하고 모든 창문의 크기를 일정하게 보이도록 연출했다. 반복적이고 균일한 격자 구조 속에는 창마다 내부의 디테일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관객은 아파트에 실제로 거주하고 있을 개인들의 삶을 떠올릴 수 있다.


또 다른 그의 대표작 <시카고 선물거래소 III>는 마치 콜로세움 내부 전경을 떠올리게 하는 것으로 선물 거래소 신장부에서 정신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정지된 이미지임에도 분주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느껴진다. 거대한 자본주의 사회 속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는 개인의 삶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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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몽파르나스>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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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선물거래소 III> (2009)

 

 

이처럼 거스키는 현대식 공장과 아파트, 증권 거래소, 고층 건물 등의 무한히 반복되는 구조적 특성을 거대한 규모로 인화해 시각적으로 강조한다. 대체로 이미지를 조작해 탄생시킨 작품들은 실제 그 일원으로 사는 현대인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회의 단면을 더욱 생생하게 체험하도록 한다.

 

한편, 거시적인 사회 속 미시적 삶을 이어 나가는 개인 역시 세세하게 표현함으로써 그 관계를 숙고하게끔 한다. 거스키의 작품이 대체로 규모가 큰 이유가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추상적 이미지와 실재 사이의 내러티브


 

한편, 거스키의 작품은 얼핏 한 폭의 추상화를 보는 듯하다. 실제 피사체가 무엇인지 단번에 파악되지 않고 작품을 구성하는 기하학적 요소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단색화를 연상케 하는 <무제 XIX>는 거스키가 헬리콥터를 타고 먼 거리에서 튤립밭을 촬영한 뒤 이를 완벽한 수평적 구성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다. 작품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이미지를 구성하는 수백만 송이의 튤립 하나하나를 관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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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XIX> (2015)

 

 

2007년 북한에서 가장 규모가 큰 행사인 아리랑 축제의 매스 게임을 찍은 <평양 VI>은 마치 아름다운 꽃 모양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10만여 명의 공연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만들어낸 장관임을 알 수 있다. 거스키는 이를 촬영할 때 선전 구호와 같은 공산주의 체제를 드러내는 상징은 최대한 배제하고 북한의 집단성과 특수성에 집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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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VI> (2017)


 

사진 매체를 이용해 추상적 이미지를 구현하는 실험적 시도를 선보인 거스키의 작품은 역설적으로 추상적일 수 없다. 추상 회화에서의 '추상'이란 대상과의 거리두기를 의미하지만, 사진은 매체의 특성상 대상과 완전히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거스키의 작품은 멀리서 볼 때는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이미지로 다가오지만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관찰하면 피사체의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다.


유형학적 사진의 창시자인 베허부부에게 사진을 배운 거스키는 객관적 시각으로 대상을 표현하면서도 사진 매체가 도달할 수 있는 예술적 영역을 확장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때 거스키는 원거리에서 대상을 촬영하고 이를 추상적으로 표현하면서 최대한 인물이나 서사를 부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세한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이미지 속에 담아내 보는 이로 하여금 오히려 사진이 품고 있는 내러티브를 상상하게끔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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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강 Ⅲ> (2018)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가 2018년 작품 <라인강 Ⅲ>이다. 거스키의 유명한 1999년작 <라인강 Ⅱ>의 연장선상으로 두 사진 모두 여름이라는 동일한 계절에 촬영했으며 배경과 구성 역시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앞선 작품과 달리 <라인강 Ⅲ>에서는 잿빛의 황량한 라인강의 모습이 펼쳐져 있다. 이는 2018년 가뭄의 영향으로 강 수위가 최저 수준으로 내려갔고, 동식물이 살기에 가혹한 환경이 된 사실을 반영한 이미지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 및 다양한 논의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다.

 

 

 

현실을 바로 읽게 하는 거스키의 작품들


 

멀찍이 떨어져서 한 번, 가까이 다가가 고개를 젖혀 위에서 아래로 한 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걸으며 한 번. 거스키의 작품은 워낙 물리적 크기가 크다 보니 한 장의 사진도 오래도록 바라보게 한다. 또한 그 안의 세심한 디테일들로 인해 사진을 '본다'라기 보다는 '읽는다'라는 것이 더욱 맞는 표현으로 느껴진다.


한 장의 사진이 펜보다 강할 때가 있고, 허구가 실제보다 현실을 잘 드러낼 때가 있다. 거스키의 사진이야말로 이에 걸맞은 작품들이다. 현대의 아파트와 공장, 증권 거래소, 고층 건물 등 문명의 발달과 자본주의 사회의 단면을 정확하게 포착한 그의 앵글은 디지털 작업을 통해 조작한 이미지로 완성되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실제보다 더욱 강렬하게 느끼게끔 한다.


사회 속 부속품처럼 매일의 역할을 수행해내느라 인지하지 못했던 감각을 거스키의 사진을 읽음으로써 새롭게 일깨워 보는 건 어떨까? 아마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진 출처: Andreas Gursky

 

 

[이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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