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의 불안과 완벽주의에 대하여 (2)

오은영의 금쪽상담소 - 신소율 편
글 입력 2022.08.21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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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불안과 완벽주의에 대하여 (1)'에서 이어집니다.

 

 

마치 내가 스튜디오에 앉아 오은영 박사님의 상담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크게 공감했던 금쪽상담소 신소율 편이다.

 

 

 

 

 

영상을 토대로 나의 성격을 몇 가지 주제로 나눠 설명해보려 한다.

 

 

 

옳음, 바름, 정직함


 

나의 완벽주의는 옳음, 바름, 정직함을 지나치게 추구하고자 하는 성격에서 비롯된 것 같다. 옳음에 대한 높은 기준은 융통성의 부재를 낳는다. 기준이 과도하게 높다 보니, 그 높은 기준에 도달하지 않는 것들은 가차없이 쳐낸다.

 

예를 들면 내가 사람을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예의'다. 사람에 대한 기본적 예의가 있어야 타인을 배려하고 사랑할 수도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본 어떤 사람이 대중교통에서 바로 앞에 힘겹게 서 계신 노인을 무시한다면, 그 사람과 영영 친해지지 못하는 것까지는 아니겠지만,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된다. 반대로 어떤 사람이 식당에서 종업원에게 예의 있게 행동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사람을 좋게 보기도 한다.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그 기준을 넘기만 한다면 무한한 정과 사랑을 준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내 경험을 토대로 해도 기준을 넘기가 힘들 뿐 누군가가 한 번 마음에 들어오면 오래 좋아했던 것 같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기준을 타인에게만 적용한다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기준을 똑같이 적용하기 때문에 완벽주의로까지 이어진 것이 아닐까 한다. 그 기준은 이상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내가 타인에게 바라는 동시에 내가 되고자 하는 이상적인 상.

 

 

 

타인의 자극


 

주로 '섬세'는 긍정적인 뜻, '예민'은 부정적인 뜻으로 통용된다. 그러나 섬세와 예민은 한 끗 차이다. 같은 사람을 봐도 누군가는 그를 섬세하다고 여기는 반면 다른 사람은 예민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타인의 자극에 취약한 편이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어찌 보면 섬세한 것일 수 있지만, 섬세가 과도해지면 예민한 것이 되어버린다. 외부의 것들을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타인의 칭찬에 성취감을 느낀 적이 많다. 그냥 칭찬은 칭찬으로 가볍게 받아들이면 될걸, 칭찬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한다. 반대로 부정적인 말을 들었을 때 마음에 두고두고 담아두며 힘들어한 적도 많다.

 

이런 성격을 가지게 된 데에는 과거의 경험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중학생 시절이 인생에서 몇 번 되지 않는 터닝포인트 중 하나인데, 중학생 때 친구들의 말에 상처를 크게 받은 적이 많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친구들이 나를 괴롭힌 것은 절대 아니었고 친하게 잘 지냈으나, 장난이랍시고 말을 막 하는 경향이 있는 친구들이었다. 그 친구들은 별 생각 없이 던지는 말이었겠지만 나는 그때 상처를 받고 성격이 바뀌기도 했다.

 

이 이후로 작은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됐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미리 피한 적도 있다. 내가 상처 받았기에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고, 내 언행도 조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남에게 절대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다. 물론 타인이 윤리적 잘못을 저질렀다면 옳게 그르치는 것이 맞겠지만, 그게 아닌 이상 절대 남이 들으면 기분 나쁠 만한 소리를 하지 않는다.

 

서로 편하게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여야 정말로 친한 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 말도, 상대 또한 그렇게 생각해야지만 성립한다. 상대는 생각없는 장난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기도 한다.

 

*


타인의 말 하나하나를 신경 쓰는 내 자신이 싫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싶은데, 타인의 말들에 의해 내 삶이 흘러가고 있는 건 아닐까 두렵기도 했다. 내가 몇 시간씩 고민하고 있는 누군가의 말이 사실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내뱉어진 말이었다면? 말한 사람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데 나 혼자만 끙끙거리고 있는 거라면?

 

내가 왜 그러는 걸까, 좀만 덜 예민하게 받아들이면 안되는 걸까,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다. 상처도 나만 훌훌 털어내면 되는 건데. 내가 내린 결론은 모든 것에 '진심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대할 때도, 무언가를 좋아할 때도, 무언갈 하며 시간을 보낼 때도 진심이기 위해 노력한다. 인간관계가 한 사람을 형성할 때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생각하기에, 나도 타인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고 싶고 타인도 나에게 그러한 존재가 되어주었으면 한다. 그래서 최대한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나로 인해 상처를 받지 않도록 조심한다.

 

아마 그 진심을 표현하는 방법이 어긋났기에 사람들이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의 방법이 똑같을 순 없기에 연습이 필요하다. 단단해지는 연습. 상처받아도 털어내고 나아가는 연습.

 

아마 지금 나는 끝없는 연습의 길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일지 모른다.

 

 

[최지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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