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의 불안과 완벽주의에 대하여 (1)

나의 심리상담 이야기
글 입력 2022.08.0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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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을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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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학교의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학교 동기와 선배에게 추천을 받은 것은 올해 초쯤이었는데, 올해의 반이 지나고 나서야 신청하게 되었다. 처음 추천받았을 때는 특별히 와닿지 않았는데, 지금에서야 신청하게 된 것을 보면 힘들었긴 한가 보다.

 

원래 심리상담은 심각한 정도의 우울을 느끼거나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이 받는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상담을 받으면서 나도 몰랐던 나의 감정을 상담사분께서 정확히 짚어주셔서 울었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나도 상담을 꼭 받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종강하고 난 후 일종의 번아웃을 겪었다. 며칠씩 밤을 새가며 기말고사를 준비했고, 과제 기한이 늦어 동기들이 놀 때 집에서 마지막까지 과제를 붙들고 있다가 종강을 맞이했다. 이번 방학 때 유독 해야할 일들이 많아서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매우 빡빡한 계획들을 세워놨었다. (사실 시험 기간에는 공부 빼고 다 재미있기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계획을 세웠던 것일지도...)

 

며칠 간 머리 꽁꽁 싸맨 과제를 제출한 후, 꽤 오랜만에 무력감을 느꼈다. 뭐랄까, 어느 것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느낌이었다. 나는 흔히들 말하는 '의미론자'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고 의미를 찾음으로써 삶의 의미를 느끼는 내가 어떤 것에서도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슬펐다. 찾지 않고 있는 게 아니라 못 찾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해야할 것들이 많다 보니 내 두 달 간의 방학이 어떻게 흘러갈지 뻔히 보여서 아무 기대도 되지 않았다.

 

하루는 무언가를 할 힘이 나지 않아서 집에 누워있었는데,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싫었다. 악순환인 것이다. 내가 직접 변화를 찾아 나선다면 그곳에서 무엇이든 얻겠지, 라는 생각에서 심리상담을 신청하게 되었다.

 

 

 

사전면담 - 완벽주의와 불안감


 

간단한 상담신청서를 작성하고 세 개의 심리검사를 실시한 후 사전면담에 갔다. 어떤 계기로 상담을 신청하게 되었냐고 물어보셔서 내가 어느샌가부터 항상 느끼던 감정에 대해 말씀드렸다. 꽤 자주 불안감을 느끼고 완벽주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잘 해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앞서 새로운 것을 도전하기를 어려워했다. 잘 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 불안해하는 감정은 모든 것을 잘 해내고 싶은 완벽주의로부터 기인한다.

 

완벽주의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내가 세상의 이치를 매우 잘 알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지금 내가 보내고 있는 이 시간은 다시는 겪을 수 없는 순간들이고, 그렇기에 매우 소중하다는 것. 그래서 무얼 하든지 잘 해내고 싶고 내게 큰 의미와 성장의 기회들로 다가오기를 바랐다.

 

어른들은 학생들을 보며 "저때가 가장 좋을 때지"라고 말하곤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며 나이가 들고 나서야 비로소 어른들이 했던 말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학생 때부터 지금이 절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가장 찬란한 순간 중 하나일 것이라는 굳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과의 추억을 사진과 영상으로 자주 남기려 노력했고, 공부 때문에 힘든 순간이 와도 "다른 걱정 없이 오로지 나의 미래에 대한 걱정만 할 수 있는 시기는 지금뿐이다"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곤 했다. 심지어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노래를 틀어주시고 친구들과 따라 부르던 순간이 나중에 생각하면 사무치게 돌아오고 싶은 소중한 순간일 것 같아 친구와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실제로 학창시절이 얼마나 소중했던 시기인지 느꼈기 때문에 지금 대학생 시기도 잘 보내고 싶은 욕심이 컸다. 사람들은 모두 이때가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라고 말한다.

 

근데 욕심이 너무 컸나 보다. 적당한 욕심과 성취욕은 성장을 돕지만, 과도하면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만족와 뿌듯함을 느낄 여유 없이 끊임 없는 성장을 추구하게 만든다는 이면이 존재한다. 과연 사람들이 말하는 '할 수 있는 만큼 해보고 도전하라'는 대체 어디까지인 건지. (내가 감히 판단할 수는 없지만) 내 눈에 나보다 덜 열심히 사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을 볼 때면 '나 정도면 열심히 사는 거지' 생각하면서도 나보다 훨씬 열심히 사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끝없이 작아졌다. 잠깐 쉴 때면 그냥 안주하고만 있는 것 같아 내가 싫어졌다.

 

완벽주의가 심한 탓인지, 나의 나에 대한 기준과 기대가 높은 만큼 타인이 나에게 내리는 판단에도 취약했다. 부정적인 피드백을 듣기 힘들어했다. 물론 피드백을 듣고 문제를 고치려고 노력하지만, 필요없는 감정 소모가 심했다. 타인이 아무 생각 없이 던졌을 수도 있는 말을 며칠 동안 붙잡고 있으며 스트레스를 받은 적도 많다.

 

사전 면담은 주로 내가 대답하는 시간이었기에 상담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앞으로의 상담을 통해 내가 불안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고 건강한 삶을 살게 되는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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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쪽상담소 신소율 편


 

대기가 있어 심리 상담사가 매칭되고 본격적인 상담을 시작하려면 세 달 정도 걸린다고 했다. 바로 상담이 가능할 거라 생각했어서 아쉬웠지만 어쩌겠어. 나라도 이 무력감을 탈출할 방법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핸드폰 시간을 줄이기도 해보고, 인스타를 지우기도 해보고, 매일매일 사람들을 만나기도 해보고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기도 했다. 그래도 일단 무언가를 하니 누워있을 때보다 기분이 나아졌던 것 같다.

 

사전면담에서 받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곰곰이 생각해보면서 일종의 '나를 위한 나의 심리상담'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평소 쉬이 받을 수 없던 질문들을 받고 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알고리즘에 뜬 <오은영의 금쪽상담소 신소율 편>을 보게 되었다. 신소율 님이 이야기하시는 고민과 생각들이 나와 소름돋을 정도로 비슷했다. 마치 내가 스튜디오에 앉아 상담을 받는 기분이었다. 댓글을 보니 나와 같은 반응이 많아서,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라는 동질감과 안도감을 느꼈다.

 

금쪽상담소를 보며 공감을 느꼈던 부분들을 적어보고자 한다.

 

 

... '나의 완벽주의와 불안에 대하여 (2)'에서 계속됩니다.

 

 

[최지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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