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상자 속 인생을 가득 채워 다닌 사람 - 비비안 마이어 [도서]

상자 속에 사진을 가득 채워 세상을 바라본 비비안 마이어의 이야기
글 입력 2022.08.15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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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와의 첫 만남



나는 OTT 플랫폼 속 그의 강렬한 흑백 사진 포스터에서 비비안 마이어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다. 그 영화는 내 예상 별점이 높은 작품이라며 추천 작품에 떠 있었는데, 다큐멘터리에는 큰 관심이 없어서 처음엔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그럼에도 OTT 플랫폼 속 재밌는 콘텐츠를 찾아 유영하고 있을 때 종종 그 포스터를 마주했고, 결국 흑백 사진 속 인물이 익숙해진 어느 날 영화를 재생했던 기억. 이것이 나와 비비안 마이어의 첫 만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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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포스터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와의 만남은 꽤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삶을 따라가는 일이 재미있다는 걸 오랜만에 느끼게 해준 영화였기 때문이다(덕분에 이후로 다큐멘터리를 챙겨보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비비안 마이어라는 사람 자체에 호기심이 생기고, 그의 삶이 궁금해졌다.

 

비비안 마이어는 사진계를 넘어 독특한 삶의 이력과 그가 남긴 방대한 사진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지금은 이토록 유명한 사람이 생전에는 그 누구도 그가 사진작가였다는 것을 몰랐다는 점은 흥미롭다. 심지어 비비안 마이어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를 자신들이 고용하고 길러준 ‘보모’로 기억한다. 그들의 ‘보모’가 언제나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별의별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은 기억하지만, 누구도 그 카메라 안에 지금 현대 사람들이 감탄하며 열광할 만한 사진들이 담겨 있는지는 몰랐다.

 

비비안 마이어를 다룬 영화와 아래 소개할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지만, 아무도 몰랐던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이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간략하게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시카고의 한 경매장에서 오래된 사진이 가득 든 박스를 산 청년은 박스 속 사진들이 범상치 않음을 알게 된다. 사진에 흥미를 느끼고 작가에 대해 알아보면서 이 정체 모를 사진작가가 세상에 남긴 사진과 수집품의 양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청년인 존 말루프는 모은 사진들을 블로그에 올렸고, 그렇게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들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그의 삶을 다룬 영화와 책 그리고 전시는 지금도 꾸준하게 나오고 있다.


비비안 마이어는 왜 자신이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는 걸 밝히지 않고, 많은 사진과 필름을 남겨둔 것일까? 만약 존 말루프가 사진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들은 여전히 미국 어딘가의 창고에 있게 되었을까? 이런 궁금증은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계속된다. 1시간 반 정도 러닝타임의 영화로는 비비안 마이어가 살아낸 삶의 수많은 순간 중 일부만을, 조각이 몇 개 없는 퍼즐을 보는 기분이었다.

   

책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는 영화가 미처 담아내지 못한 비비안 마이어라는 사람을 온전히 조명한다. 영화 속 등장하는 도저히 셀 수 없을 듯한 수많은 필름과 사진, 수집품들. 비비안 마이어를 둘러싼 상반된 지인들의 회상 속에서 비비안 마이어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진작가였는가? 라는 수많은 의문에 차분하게 그의 일생을 따라가며 답한다. 그리고 미출간된 사진을 포함하여 400여 점의 작품을 비비안 마이어 삶의 시기와 맞추어 보여준다. 마치 작은 전시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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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마주한다면 책의 두께가 상당해서(이 책은 몇 480쪽이다) 접근이 두렵기도 하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면 세상이 생전의 비비안 마이어를 바라보던 모습과 그가 가진 내면과의 간극을 포착할 수 있다. 조금 이상한 보모였던 비비안 마이어가 아닌 그 누구보다 자기 삶을 개척해나가는 용기가 넘쳤던 사진작가로서의 비비안 마이어의 이야기와 그걸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사진들을 구경하다 보면 책은 술술 넘어간다.

   

 
“내 인생은 상자들 안에 들어 있어요.”
 

 

비비안 마이어가 말했듯이 이 책이 담고 있는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 속에는 그의 인생이 담겨 있다. 책의 저자인 앤 마크스는 자신이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 자녀들이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교도 졸업했다고 말한다. 그만큼 한 사람의 삶을 따라가는 일은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일임이 분명하다. 또 세상과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일삼기도 했던 비비안 마이어라면 더욱이 큰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알면 알수록 범상치 않은 이 인물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생전에 알려지지 않은, ‘보모’ 사진작가였던 비비안 마이어를 수식하는 말들에 한 번이라도 흥미를 느꼈을 독자라면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비비안 마이어가 카메라로 찍고 상자 속에 담아 남긴 그의 인생은 어땠을까. 그의 삶 속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을 살짝 공유하고자 한다.

 

 

 

세상과 사람을 보는 남다른 시선


 

 

“도시를 가로지르는 동안 다리를 받치고 있는 외팔보, 고가 철도를 지탱하는 교각, 고층 빌딩을 뒤덮은 똑같이 생긴 창문 같은 구조물이 계속해서 비비안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순수한 것, 뒤틀린 것 모두에서 아름다움을 찾았고, 사람들 대부분이 신경 쓰지 않는 것들에 주의를 기울였다.”

 

- 103쪽

 


사진에는 사진을 찍은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고스란히 담긴다. 비비안 마이어는 인용한 문장처럼 대다수가 주목하는 것보다는 그렇지 않은 것에 시선을 두었다. 유명인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그의 사진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는 모습을 담았다. 그리고 거기서 아름다움을 발견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사진 속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피사체를 정하는데 그 누구보다 편견 없이 사람들을 바라보았을 시선이 느껴진다. 특히, 사진을 보다 보면 여성과 아이 그리고 약자들에게 카메라가 더 친절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비비안 마이어는 시카고 인종 시위를 촬영하거나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산아제한과 낙태할 권리를 옹호하는 페미니스트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가 사진에 관해 남긴 말은 많지는 않지만 사진을 찍는 방식, 세상에 대해 남긴 몇 마디의 말들로 그의 사진과 삶의 철학을 조금은 엿볼 수 있다.

 

 

“인생이 비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죠. 하지만 아니예요. 인생은 희극이에요. 그냥 웃기만 하면 돼요.”

 

- 비비안이 고용주에게 한 말

 

 

비비안 마이어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는 않았다. 가족과의 유대를 상실했고, 어린 시절의 영향으로 성인이 된 이후에 강박적으로 사진, 신문을 모으는 저장 장애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한 곳에 오랫동안 정착해서 안정적으로 살지 못했고, 그런 그를 보모로 고용한 고용주들은 비비안 마이어를 각자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 단 하나, 그에 대해 공통된 기억은 '사진’이었다.

 

누군가는 비비안 마이어의 삶이 행복보다는 불행에 가까웠으리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실 그런 비비안 마이어의 이력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다. 하지만 사진으로 보이는 비비안 마이어라는 사람은 불행이 닥치더라도 거기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재치 있는 사람이었다고 느껴진다.

 

비비안 마이어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거리 위의 사람들을 거침없이 사진 속에 담아내었고 그중에서는 노숙자들의 모습도 많았다. 그리고 자신이 보모로 있는 집의 아이들을 모델로 삼아 그들의 생생한 어린 시절을 사진 속에 담아두었다. 특히, 비비안 마이어에게는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모습만 박제하듯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모습 그 자체를 찍어내는 기술이 있었다.

 

비비안 마이어는 남달리 재빠른 시선으로 누구보다 생동감 넘치는 인물을 사진 속에 담아냈다. 비비안 마이어에게 피사체는 어떤 의미였을까. 피사체, 특히 사람에 대한 예의 바른 존중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비비안의 사진 촬영을 지켜본 사람 중 한 명은 사진 찍는 순간을 포착하는 비비안의 속도는 엄청나게 빨랐으며 그 과정에서 찍히는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거나 화를 내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런데도 비비안 마이어는 계속해서 거리 위 사람들을 찍었다. 부정적인 반응을 감내하면서까지 그가 사람들을 카메라 안에 담으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건 분명 사람 자체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작업이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비비안의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그녀가 사진에 분명히 담은 인간애 사이의 극단적인 차이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비비안에게 사진은 믿음과 감정,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이해를 표출하는 배출구로 기능했고, 그 결과 보편적인 진리와 폭넓은 정서를 반영하는 작품 세계를 낳을 수 있었다.”

 

- 275쪽

 

   

이러한 책 속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비비안 마이어가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던 이유, 그의 삶 속에서 사진의 역할을 이해하게 된다.


다시 비비안 마이어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마주했던 의문을 마주한다.

 

대체 왜 그는 누구보다 강렬한 사진에 가진 애정을 세상 밖으로 꺼내 보이지 않았을까? 남들에게 그저 ‘보모’로 남았을까, 사진작가로 성공하고자 했던 열망은 없었던 것일까? 라는 질문들. 이 질문에 그에게 사진은 단순히 ‘애정’을 뛰어넘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수단이라는 답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함부로 추측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 그에게 사진은 본인의 자아실현 혹은 성공의 수단보다는 유년 시절부터 느꼈던 결핍을 채우고 그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에 가까웠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비비안 마이어가 내게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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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의 삶을 따라가는 일은 한 사람이 사진이라는 수단으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사랑의 방식을 엿보는 일이었다. 그래서 비비안 마이어의 인물 사진을 좋아하고 가만히 들여다보게 된다. 책 속에 실린 사진도 좋지만, 전시회에 걸린 그의 사진을 보는 일도 좋을 것이다. 8월 초부터 11월까지 그라운드시소에서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이 열린다. 조만간 시간을 내어 그의 사진을 조금 더 크게, 가만히 바라보기 위해 가지 않을까 싶다.

 

사진에 관해서는 완벽을 추구하고 다양한 시도를 멈추지 않았던, 비비안 마이어가 사진을 대하는 태도도 곱씹어본다. 비비안 마이어가 사진 현상소에 요구한 지시 사항들은 단순히 그를 까다로운 사람이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거기서 사진에 가진 열정과 애정이 읽히기도 한다. 누구보다 ‘진심’인 사람의 태도를 보는 일은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울렁임을 준다. 비비안 마이어의 삶을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고 다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느낀다.

 

수많은 것이 스쳐 지나가는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눈으로 작은 특별함을 알아보고 포착해서 남긴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들여다보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그런 사진을 남긴 비비안 마이어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일은 그의 반짝이는 시선을 잠시나마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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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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