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사랑니를 뽑아보자

wisdom tooth?
글 입력 2022.08.14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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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보자’

 

 

어느 날 아침 눈을 뜬 나는 거울 앞에 앉아 입을 위아래로 쫙 벌리고 그 안을 살폈다.

 

오묘한 이물감, 왼쪽 위 어금니 쪽에서 느껴지는 불편한 감각이 나를 기어코 거울 앞에까지 이끌었다. 온몸을 비틀어가며 고개를 이쪽 저쪽 꺾어 보았지만 입속 가장 깊은 곳, 그것도 아래도 아닌 위쪽 저 끝 구석까지 육안으로 살펴보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눈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던 생각은 아쉽지만 옆으로 접어 두고 나는 쩍 벌린 입속으로 왼손 검지를 집어넣었다. 더듬더듬 치아를 훑어가자 마지막 어금니와 상악 사이에 위치한 말랑한 잇몸 위로 무언가 뾰족하게 튀어나온 것이 느껴졌다.

 

‘하…또 사랑니냐.’

 

*

 

찾아오라는 사랑(♥)은 보이지도 않고 어째 반갑지도 않은 사랑니만 다시 만나게 되다니 이건 정말 아침부터 찾아온 절망이나 다름없었다. 이걸 도대체 언제 뽑아야 되나 간만 보며 캘린더를 이리저리 살피다 결국은 이전에 사랑니를 뽑았던 치과에 전화를 걸었다.

 

주말엔 일을 가야 하니 적어도 금요일에는 뽑아야 하고, 월, 화, 목에는 한의원에서 새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으니 남아있는 시간은 오직 수요일과 금요일뿐이었다. 자, 마음을 가다듬고 금요일에 빼는 걸로 하자. 그렇게 나와의 계획을 세워놓고 치과 예약을 잡으려는 찰나!

 

‘찍었던 사진이 벌써 2년이 지나서 한 번 오셔서 진료를 보셔야 바로 뽑을지 다시 예약을 잡고 뽑을지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낭패다. 결국 어찌하지 못하고 무작정 수요일로 예약을 잡고 전화를 끊었다. 막상 예약을 잡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해지기는 했지만, 정작 수요일이 되어 치과 의자에 홀로 덩그러니 앉혀지자 오늘이 오기까지의 지난 모든 선택들이 후회스러웠다.

 

‘오늘 빼실 건가요? 아니면 나중에 빼실래요?’

 

*

 

사랑니를 빼야 하는 이유는 많았다.

 

 

1. 이미 아래 사랑니 두 개를 모두 발치한 상태여서 위에 있는 사랑니와 맞물리는 치아가 없기에 어차피 빼야 함.

 

2. 잇몸에 막혀 현재 사랑니가 더 나오지 못하고 있어 염증이 생겼을 가능성이 큼.

 

3. 그 때문에 옆에 있는 어금니들까지도 염증이 생겼음.

 

4. 사랑니를 빼면 볼살이 빠져서 얼굴이 작아짐

 

5. 대학병원 가면 6개월을 기다려서 빼야 됨.

 

 

등등의 아주 다양한 이유들을 내게 설명해 주시던 의사선생님의 언변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망설이던 이유는 오직 하나다. 무서워서! 사랑니 빼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 줄 아는가. 오만가지 부작용과 발치 후 잘못될 수 있는 무수한 경우의 수를 헤아리며 질문의 답을 찾던 그 순간, 문득 한의원 원장님과 면접을 보며 나눴던 대화가 불쑥 떠올랐다.

 

근무 일정을 조율하던 원장님께 사랑니를 빼야 하니 다음 주 중 하루는 빼야 할 것 같다 말씀드리자 원장님은 아무렇지 않게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맘먹은 김에 그냥 이번 주에 빼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핑계로 여차저차 미뤄왔던 나의 안일한 결정들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였다. 치과 의자에 앉아 모두가 나를 바라보던 그 상황에 원장님의 그 대사가 생각날 건 뭐람. 그리고 망설임도 없이 그냥 오늘 빼겠다 대답하던 나는 또 무슨 생각이었는지.

 

10분 만에 사랑니를 쑥 빼고 했던 생각은 <오늘 빼기 참 잘했다>였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다. 뭐든 하려고 생각했으면 망설이지 말고 곧장 행동하라는 비유적인 말이다. 맘먹은 김에 해야지, 어차피 뺄 거였으니까 치과 온 김에 빼야지. 모두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사랑니라는 게 미국과 중국에서는 ‘지혜의 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랑의 성숙함을 아는 시기에 자라는 치아라고 해서 사랑니라고 부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지혜를 갖게 되는 시기라 하여 ‘지혜의 이 wisdom tooth’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번 사랑니는 어쩌면 사랑의 성숙함보다는 어른의 지혜로움을 깨우치게 한 치아가 아니었을까 싶다. 원장님 말씀이 옳았다. 마음먹은 김에 빼야지 그렇지 않으면 시기를 놓치게 된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세 번째 사랑니가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다. 혀로 아직 덜 아문 잇몸을 건드리며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웃기기도 하지만 어찌 됐건 좋은 결과로 남았으니 다행이지 않나.


 

자 그럼 이제 마지막 남은 사랑니를 마저 뽑아보자 :)

 

 

 

강현지.jpg


 

[강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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