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뮤지컬로 보는 '번지점프를 하다' [공연]

다시 멀어지게 된대도 또 널 사랑할 거야
글 입력 2022.08.09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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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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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가 6월부터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예정된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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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은 초반부터 ‘인우’와 ‘태희’의 이야기가 비극일 것을 알린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이자 담임인 ‘인우’는 수업 시간 첫사랑 이야기를 해달라는 제자들의 말에 입을 연다.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만났다는 말과 그 후 흐려지는 목소리는 그의 사랑이 절대 순조롭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인우’의 회상과 함께 시작된 과거 이야기는 이들의 비극을 자세히 보여준다.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인우’는 비가 오던 날 그의 우산에 뛰어든 ‘태희’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러나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태희’를 다시 만날 수 없어 애가 탈 뿐이었다. 매일 '태희'와 처음 만난 장소에서 서성거리던 '인우'는 우연히 그와 다시 마주친다. 그들은 풋풋한 사랑을 키워가던 중 비극이 일어난다. ‘인우’가 입대를 하게 되고 ‘태희’가 사고로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사랑하던 사람을 잃은 ‘인우’는 그를 그리워하며 오랜 세월을 버틴다. 그러나 17년 후 ‘인우’에게 새로운 비극이 찾아온다. 그의 제자인 ‘현빈’이 ‘태희’와 자꾸 겹쳐 보인다. 스승과 제자이자, 성인과 미성년자, 심지어 동성인 ‘현빈’을 보며 ‘인우’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망가지는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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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우’는 ‘태희’와 교제하던 시절 자신의 목표를 정했다. 그는 학생의 편이 될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그는 담배를 훔쳤다고 의심받는 제자를 감싸고 그 대신 추궁하는 선생에게 맞서는 등 자기가 바라던 이상향이 되어가고 있었다. ‘현빈’을 ‘태희’로 의심하기 전까지는.

 

그는 ‘현빈’을 ‘태희’로 보면서 완벽하게 망가진다. 학생들에게 받던 존경은 의심으로 바뀐다. 학생을 다독이던 그는 ‘현빈’에게 체벌했고 늦은 시간 핑곗거리를 만들어 ‘현빈’에게 연락한다. 수업이 없을 때면 그 주위를 서성이며 ‘현빈’을 “태희야.”라고 부르기도 한다. 학생을 지키고 싶다던 선생님은 미성년자인 제자를 연인으로 오해하며 처절하게 붕괴한다. 결국 그는 학생에게 욕망하는 교사로 소문이 나고 결국 직장을 잃는다.

 

붕괴는 ‘인우’만이 감당하지 않는다. ‘현빈’은 그를 마치 다른 사람을 대하듯이 행동하는 ‘인우’가 이상하다. “정체가 뭐야.”라며 ‘인우’의 의심까지 받게 되면서 평화롭던 학교생활이 고난의 연속이다. 학교에서는 ‘인우’가 짝사랑하는 남학생이라고 소문이 퍼져 연인과 다투고 친구와 몸싸움을 벌이면서 교우관계도 망가진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으나 망가지는 일상을 10대 고등학생이 홀로 버티기란 쉽지 않다. 담임 선생님에게 의지해도 벅찰 상황에서 담임은 그를 연인을 대하듯이 바라본다. 꿈에서는 ‘태희’의 기억이 떠오르며 점차 ‘나는 누구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온다. ‘현빈’이 겪기엔 지나치게 가혹하다.

 

 

 

서인우와 배우 정택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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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내에서 ‘인우’의 대학 동기들 역시 과거와 현재에 함께 등장하지만, 그들은 일관된 캐릭터성을 지녔다.

 

그러나 ‘인우’는 상당히 복잡한 캐릭터이다. ‘인우’의 17년의 간극을 무대에서 여실히 보여주어야만 한다. 특히 20대의 풋풋함과 아직도 연인을 잊지 못한 30대의 차이는 상당하다. 이 때문에 ‘인우’는 이 작품에서 가장 입체적인 인물로 볼 수 있다.

 

극단적이기까지 한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몰입하게 한 건 배우 정택운(인우 役)의 연기력 덕분이다. 그는 사랑에 빠진 대학생과 선생님 사이를 재빠르게 연기한다. ‘태희’와의 사랑이 주된 과거에서는 풋풋하고 어리숙한 20대를, 현재 시점에서는 믿음직한 30대 교사를 보여준다.

 

눈에 띄는 의상 변화나 헤어스타일 변화가 없음에도 말투나 눈빛이 자유롭게 바뀌는 연기 덕분에 자칫 산만할 수 있는 장면 전환에서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특히나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교차하는 2막에서 ‘태희’와 ‘현빈’을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그의 연기는 감탄만 나올 정도였다.

 

 

 

영화와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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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영화를 봤다면 이 결말을 알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게 최선인가?”라는 말이 가장 먼저 나왔다. 17년 만에 겨우 만난 옛사랑의 환생을 자살로 마무리해야 했을까.

 

특히나 뮤지컬의 경우 ‘인우’와 ‘현빈’ 사이에서의 감정이 잘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더 뜬금없는 엔딩이라고 느껴졌다. 마치 ‘현빈’이 ‘태희’의 대역이자 ‘인우’의 고난을 위한 인물로만 보였기 때문이다.

 

작품 내 가장 큰 피해자는 ‘현빈’이다. ‘인우’로 인해 학교생활이 망가지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이리저리 휘둘려야만 했다. 그저 스승이 자신의 전생의 연인이었다는 사실만으로 ‘인우’와 함께 자살하기는 ‘현빈’에게 너무 가혹한 선택이 아닌가.

 

심지어 그는 미성년자이자 그의 제자이기도 하다. ‘인우’와 ‘현빈’ 관계를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것도 두 인물이 동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제관계였기 때문이다. 작품을 곱씹을수록,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죽음을 선택하고 다음 생을 기약하는 것이 ‘인우’에게는 최선의 엔딩일지 몰라도 ‘현빈’에게는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멀어지게 된대도 또 널 사랑할 거야”라는 대사처럼 분명 ‘인우’는 다시 ‘태희’를 찾아낼 것이다.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랑했던 두 사람의 이야기가 다음 생에는 비극이 아니기를 바란다.


 

[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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