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문화예술 ‘향유자’에서 ‘2차 창작자’로 - 콘텐츠 만드는 마음

뉴스레터도 창작물이 될 수 있을까?
글 입력 2022.08.05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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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창작물을 만드는 어떤 예술학부를 졸업했는데, 이 전공을 말하면 백이면 백 “그럼 나중에 화가/작가/감독/가수/무용수/연주자(등등 중 하나) 되시는 거예요~?”라는 기대 섞인 호응을 듣곤 한다. 곤란한 건 나에게 단 한 번도 ‘창작의 욕구’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크리에이터 타입이 아니다”라는 걸 역설적으로 4년의 대학 생활동안 ‘그것을 전공하며’ 깊숙이 깨달았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창의성이 뛰어난 편이 아니었고, 무언가를 매개로 세상에 내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는 포부도 없었다. 그럼 학우들이 전부 자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땀 흘릴 때 나는 뭘 했느냐. 그냥 놀았다. 거장의 작업물과 학우들의 열정을 ‘감상’했다. 가끔은 (과제용으로) 그에 대한 글을 썼다. 제가 보기엔 이게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좋고~ 여기는 이런 게 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라고 두서없이 적어냈다.


어쨌든 늘 ‘감상자’의 위치에 머물렀다는 얘기다. 나는 이게 아주 애매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을 탐미하는데 많은 시간과 재화를 투자할 정도로 그것을 애정하지만 정작 그걸로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예술을 사랑하기 때문에 관련된 무언가(특히 직업적인 일)를 하고 싶은데 그것을 직접 ‘하는’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그리 쉽지 않다. 늘 예술가라는 ‘행위자’의 위용 있는 뒷모습만 훔쳐보는 기분이다. 감상자라는 수동적 존재는 어떻게 해야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예술을 애정할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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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contentslog)

 

 

이를 극복한 좋은 예시로 서해인 ‘뉴스레터 발행인’을 꼽을 수 있겠다. ‘향유자’가 ‘2차 창작자’가 된 멋진 사례다. 인상 깊게 본 문화예술을 취합해 자신 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창출했다. 영화, 드라마, 음악, 책, 영상, 팟캐스트 등 그 장르는 폭이 넓고 다채롭다.


문화예술을 ‘보는’ 사람에서 ‘만드는’ 사람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한권의 책으로 묶었다. 『콘텐츠 만드는 마음』은 <콘텐츠 로그>라는 장수 뉴스레터가 어떤 취향과 신념으로 만들어졌는지(굴러가고 있는지)에 대해 적혀 있다. 평소 뉴스레터를 즐겨 읽거나 신생 뉴스레터를 준비하고 있는 이에게도 큰 공감을 자아낼 ‘뉴스레터 제작 비하인드’라고도 할 수 있겠다.

 

 

 

콘텐츠 열혈 시청자


 

[1부 보는 사람]은 서해인의 사적인 취향과 단상이다. (영화와 드라마를 포함한 모든)영상물, 음악, 글, 팟캐스트, 아무튼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사랑하는 듯한 그녀의 바쁜 일상이 담겨 있다. 지극히 ‘감상자’, 혹은 소비자와 팬으로서 쓴 1부 마지막에 그녀는 “콘텐츠의 단점을 말하고 싶을 때의 체크리스트”를 공유한다.

 

 

첫째, 콘텐츠의 맥락(또는 세계관)을 익히는 데 충분히 시간을 썼는지 돌이켜보기. 끝까지 보지 않았다면 말을 아끼기. 약간의 시간을 들였을 뿐인데 그런 시간마저 아까웠다고 투덜거리지 않기.


둘째, ‘고객이 왕’이라는 마음으로 콘텐츠를 보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기. 창작자의 앞날을 좌지우지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 여기지 않기.


셋째, ‘비판’이 해야 하는 일인지 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니면 그냥 하고 싶은 일인지 가려보기.

 

 

<콘텐츠 로그>는 예술가의 1차 창작물에 발행인의 주관을 넣어 2차 창작하는 작업물이다(자신 만의 결과물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제작’이 아닌 ‘창작’이라 말하고 싶다). 타인의 작품을 소재로 하는 만큼 자칫 범할 수 있는 오류와 오만의 문제점을 저자는 잘 알고 있다. 때문에 ‘내 것’만큼이나 ‘상대의 것’이 소중하다는 상호존중의 신념을 되새기며 1부를 마무리한다.




뉴스레터 발행인


 

[2부 만드는 사람]은 뉴스레터를 발행하며 겪었던 시행착오와 팁을 담아냈다. ‘훅’하는 제목과 신박한 배웅 인사를 쓰기 위해 머리 싸매는 글쟁이의 괴로움이 적혀있기도 하다.


뉴스레터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2020년보다 일 년 먼저 시작해 굳건한 매니아층을 형성한 ‘장수’ 뉴스레터 <콘텐츠 로그>. 그 시작은 사소했다. ‘요즘 무슨 영화가 재밌어?’라는 지인들의 질문에 매번 똑같은 대답을 해주기가 귀찮아 ‘영화 한줄평&별점 카드뉴스’를 만들었고, 그것이 지금의 원형이 된 것.


즉흥적이고 충동적이었던 시작에 비해 이 뉴스레터는 체계적인 구조를 보여 준다. 고정 코너 4개는 유기적으로 맞물리면서도 독립적인 가치와 재미를 갖고 있다.

 

 

고정 코너 1. 지난 10일 동안의 콘텐츠 로그 - 끝까지 읽거나/보거나/들은 책, 잡지, 앨범, 영화, 드라마, 영상, 팟캐스트의 목록을 나열하는 콘텐츠 소비 궤적.


고정 코너 2. 지난 10일 동안 가장 좋았던 것들 - 1의 목록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정된 두 가지 콘텐츠를 소개.


고정 코너 3. 지난 10일 동안의 알라딘 보관함 로그 - 관심 가는 신간 도서들에 왜 흥미가 생겼는지,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 소개.


고정 코너 4. 다음 10일 동안 기다려지는 것들 - 다음 뉴스레터를 보내기 직전까지 발행인이 보고 싶은 콘텐츠들을 요악.

 

 

저자는 자신의 뉴스레터를 구독자 입장에서 접할 때 ‘적극적으로 읽기’와 ‘보통의 읽기’라는 관점이 작용할 것이라 예상한다. 적극적으로 읽기는 수십 개의 콘텐츠 목록들 사이의 흐름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를 테면 어떤 영화를 본 뒤에 그 영화의 OST를 찾아 들었고, 그 영화를 리뷰한 팟캐스트와 감독의 인터뷰까지 찾아보았구나 하는 궤적을 돌아본다.


보통의 읽기는 <콘텐츠 로고>의 콘텐츠 목록을 비교적 가벼운 모니터링 용도로 쓰는 것이다. 발행인을 ‘요즘 애들’로 여기는 사람이라면 “요즘 애들은 이런 걸 보는 구나” 할 수도 있고, 바쁜 일상을 보내는 사람이라면 “시간 날 때 이 중에 하나 골라서 봐볼까”하는 간단한 계획을 세울 수도 있다.


서해인은 <콘텐츠 로그>라는 뉴스레터가 누군가에겐 얼굴 모르는 타인과 취향을 공유하는 일, 누군가에겐 콘텐츠 전문가로부터 ‘정말 재밌는 것’을 추천 받는 일, 다른 누군가에겐 유튜브의 ‘브이로그(vlog)’만큼이나 어떤 이의 ‘콘텐츠log’를 지켜보는 게 은근한 재미가 될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때문에 콘텐츠를 선택할 때 홍보나 광고 목적이 아닌 개인의 가치관을 많이 반영한다. 구독자들이 원하는 건 굳이 <콘텐츠 로그>가 아니고서도 알 수 있는 최신 유행과 흥행작이 아니라 서해인이라는 사람 고유의 시선이 담긴 ‘취향 집합소’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매력과 강점을 알고 니즈를 분석했던 게 바로 <콘텐츠 로그>의 장수 비결일 것이다. ‘개성을 지키는 것’, 혹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 그녀를 ‘창작자’로 바라보는 이유 중 하나다.



 

프리랜서


 

[3부 일하는 사람]에선 어느새 ‘뉴스레터 발행인’이라는 직업이 본업이 된 ‘프리랜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도의 자제력으로 혼자 시간을 운용해야 하는 프로정신, 일상과 일의 경계가 모호해진 워라밸 없는 삶의 고충, 그럼에도 본인과 같이 ‘자유’롭게 일하고 있는 동료 프리랜서들에게 건네는 위로와 동감의 메시지가 적혀 있다.


 

<스티비 2021 이메일 마케팅 리포트>에 따르면 뉴스레터 발행인들은 콘텐츠 기획 및 원고 작성에 4시간 15분, 디자인 편집에 3시간 17분, 발송 후 데이터 분석에 2시간 29분, 다음 발송을 위한 개선에 2시간 55분 등 이메일 한 통을 제작하고 발송하는 데 평균 총 12시간 56분을 쓴다고 했다.

 


버튼 하나로 전송이 완료되는 뉴스레터는 ‘간단해’ 보이지만 매우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기획, 집필, 디자인, 분석을 소수가 몰아서 하다 보니 업무량이 과중하다. 특히 <콘텐츠 로그> 같은 1인 뉴스레터는 더욱 그러하다.


약 3년 째 ‘1인 기업’을 운영 중인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나의 인사 담당자”라고 생각하라고. 흔히 프리랜서란 “내가 한 일을 내가 알리지 않으면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초조함” 때문에 셀프 “홍보실장 마인드”를 가지게 되는 직종이다.

 

하지만 프리랜서는 “‘이용가능한 자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충전, 재충전, 삼충전이 필요한 사람’이기도 하다.” 자꾸 초과근무를 권유하는 ‘나’라는 기업의 복지 처우를 적극적으로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프리랜서에 대한 색다른 관점을 제시하며, 그리고 모두의 “건강한 노동 생활”을 응원하며 책은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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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책은 ‘보는’ 사람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까지의 서해인을 보여준다. 이는 정성을 담아 즐기던 ‘취미’가 ‘일’로 변모했다는 걸 뜻하기도 한다. 취미에 전문성을 부여하고 그것으로 돈을 벌고 있으며, 이전에 없던 새로운 분야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그녀의 성취는 매우 신선하고 뜻깊다. 특히 여전히 취미 단계에 머물러만 있는 사람 입장에선 말이다.


나는 그녀의 뉴스레터 <콘텐츠 로그>가 하나의 창작물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더’ 좋아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한 하나의 작품이다. ‘관객’을 의식하고 다양한 최신 재료(뉴스레터 발행 사이트)를 시도해 봤다는 것도 근거 중 하나다.

 

문화예술은 늘 무언가와 결합되고 진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진실된 ‘창작성’을 부여한다는 것을 깊이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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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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