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쁜 여자, 그 마력에 빠진 도련님 - tvN 드라마 '환혼' 리뷰 [드라마/예능]

글 입력 2022.08.04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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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하고 예민한 부잣집 도련님을 모시는 시녀가 아니라, 여자 '스승'이 있다?


‘까칠하고 예민한 부잣집 도련님’.  어디서 많이 본 설정이다.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 없이 자랐지만, 실은 내면의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남자. 게다가 잘생겨 세상 모든 여자가 흠모한다. 하지만 한 여자만 그를 냉대한다. 남자 주인공은 ‘너 같은 여자는 처음이야’라며 여자 주인공에게 호기심을 가진다.


배우 이재욱과 정소민이 부잣집 도련님과 무술 고수로 출연하는 tvN 드라마 <환혼>에서는 위와 같은 남녀 캐릭터 상이 전복된 듯 보인다. 무림의 절대 고수로 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면이 여린 “나쁜 여자”에게 한 남자가 빠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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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자매 작가의 마법이 또 한번 통할까? 술사들의 세계를 다룬 판타지 드라마 <환혼>



tvN 드라마 <환혼>은 <환상의 커플 (2006)>, <쾌도 홍길동 (2008)>, <최고의 사랑 (2011)>, <주군의 태양(2013)>부터 <호텔 델루나(2019)>를 집필한 홍자매 작가의 최근 방영작이다.

 

평소 잘하는 활극과 판타지를 가미한 장르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 드라마 초반에 여자 주인공 교체 등의 잡음이 있었지만, 특유의 빠른 전개와 재미로 현재 14화까지 방영한 <환혼>은 무사히 흥행궤도에 안착했다.


‘판타지’라는 장르는 호불호가 갈린다. 까다로운 시청자의 눈높이를 맞춰야 하는 것은 물론, 세계관에 걸맞은 훌륭한 CG 기술도 뒷받침해 줘야 한다. 초반에 세계관, 용어 및 인물 설정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지면 흥미가 급격히 떨어지는 장르지만, 그만큼 성공만 하면 몰입도가 높아 많은 팬을 양성한다.


<환혼>은 큰 호수를 둘러싼 ‘대호국’이라는 가상의 국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역사에도 지도에도 존재하지 않는 대호국에는 왕족 세력, 왕실 직속 기관인 천부관, 상단이나 의료기관 등을 관리하는 유명 술사 가문들이 존재한다.


술사들은 수기(물기)를 다스려 무술을 쓰는 자들인데, 술법 (일종의 마법 겸 무술)을 수련하면 네 단계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쓸 수 있는 수기를 모으는 단계인 집수, 물 안의 수기를 밖으로 흘려보내는 류수, 대기 중 수기를 다룰 수 있는 치수, 그리고 그다음 최고의 경지인 환수에 오르면 환혼(영혼을 바꾸는)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환혼술은 ‘사술’로 금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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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tvN 드라마 <환혼> 공식 홈페이지

 

 

남자 주인공 장욱을 포함한, 천하 사계라고 하는 주요 인물들이 유명 술사가문의 자제들이다. 여자 주인공은 이 술사 가문에 원한을 품고 있는 살수(살인자) 낙수로, 유명 술사들을 암살한다. 그러다 죽을 위기에 처하여, 환혼술을 사용해 어떤 눈먼 여자(무덕이)의 몸에 들어간다. 이를 알아챈 남자 주인공 장욱이, 낙수를 스승으로 삼는다.


장욱은 천부관 관주인 천재 장강의 아들이지만, 부인이 사통하여 낳은 아이라는 누명을 쓰고 있다. 게다가 아버지 장강이 아들 장욱의 기문(수기를 쓸 수 있는 일종의 기맥 같은 것)을 막아놓았기에, 장욱을 술법을 연마할 수 없다. 이에 장욱은 자신을 가르쳐 줄 스승으로, 무술 절대 고수 무덕이(정소민 분)를 택한 것이다. 물론 낙수를 숨겨준다는 거래 아래.  낙수 또한 기력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장욱이 필요했기에, 둘은 사제간이 된다.


그 이후는 많이들 예상하다시피, 서로는 서로를 구원하며 사랑을 싹틔워간다.

 

 

 

'악독한 스승' 무덕이와 그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한 사람, '장욱'



이처럼 사제지간인 남녀는 기존의 남성, 여성 역할을 전복시킨 것처럼 보이지만 낙수가 무덕이의 몸에 들어간 순간, 여자주인공은 혈혈단신의 신세가 된다. 무덕이의 몸은 기력을 쓸 수도, 술법도 하지 못하는 몸이기 때문이다.

 

반면, 장욱은 돈도 많고 조력자도 많다. 거부할 수 없는 어두운 운명을 타고난 것이 결핍이라면 결핍이다. 떳떳한 아버지의 아들로 세간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 앞서 말한 남성으로 다시 돌아온다.


한편, ‘나쁜 여자’, ‘악독한 스승’으로 불리워지는 무덕이는 자유분방한 장욱을 유일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여자’다. 이 점에서 장욱은 단 한명의 여자의 말만 듣는 츤데레 남성으로 돌아온다. 반면, 무덕이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장욱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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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tvN 드라마 <환혼> 공식 홈페이지

 


이상하다. 분명 무덕이는 ‘나쁘게’ ‘악독하게’ 장욱을 가르친다. 성장하지 않으면, 독약을 먹여서라도 죽음 직전까지 내몬다. 장욱이 자기를 좋아한다는 점을 약점으로 삼아, 새알 모양의 정표를 내놓으면서까지 무덕이는 장욱을 성장시킨다.


분명 시작은, 무덕이(낙수) 자신도 살아남기 위해서였는데. 어느새 무덕이가 기력을 회복하는 모습은 볼 수 없고, 어떻게든 장욱 옆에 붙어 있으려는 그 의지(투지)만이 남아 보인다. 낙수가 무덕이 몸에서 나와, 절대 고수로 돌아오는 <환혼> PART2 에서는 좀 다른 그림을 기대할 수 있으려나.

 

(현재 20부작으로 방영하고 있는 환혼 PART1 종영 이후, 방영되는 PART2 는 현재 제작 중이다.)

 

*

 

인물 서사나 갈등에 있어서 홍자매 작가의 기존 드라마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빠른 전개와 유쾌함으로 무더운 여름 시원함을 선사하고 있다. 홍자매 작가의 작품은 통통 튀는 캐릭터와 유행어까지 만들어내는 대사가 재미있는데, 그래서 특히 배우들의 합이 주요 매력 포인트다.


연기자로서는 뉴 페이스인 젊은 배우 간의 케미뿐 아니라, 그들을 든든히 뒷받침해주고 있는 중년 배우의 케미도 좋다. 배우 유준상, 오나라, 이선생을 연기하는 임철수 배우의 삼각관계와 틈틈이 감초 역할을 제대로 해주는 허염 선생의 이도경 배우까지.

 

비교적 명쾌한 선악구도, 직관적인 세계관과 클리셰를 적절히 버무린 판타지 드라마 <환혼>은 갈수록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고 있다. 무덕이가 내는 퀘스트를 깨는 장욱의 성장을 보고 있노라면 게임과 비슷해 보인다. 누구보다 빠르게 고수의 단계까지 성장하고 있는 남자 주인공 장욱은, 이제 여자 주인공 무덕이를 구원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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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tvN 드라마 <환혼> 공식 홈페이지

 

 

 

외피만 변주된, 여전히 답습되고 있는 전형적인 남녀 캐릭터 상



요즘 여성 서사(여성이 서사구조를 이끌어가는)가 늘고 있긴 하다. 하지만 단순 남성 서사였던 스토리에, 여자 남자 캐릭터를 뒤바꿔 꿰맞춘 것에 불과한 이야기가 많다.

 

물론 여성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는 점은 기뻐할 일이지만, 단순히 유행한다고 해서(돈이 된다고 해서) ‘여성’ 서사라고 이름 붙인다는 것이 썩 탐탁치는 않다. 문제의 본질은 다양한 이야기가 수용되지 못해, 전형적이고 천편일률적인 남녀 역할 상이 답습된다는 점에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나쁜 남자’상 또한 껍데기만 변했을 뿐, 본질은 바뀌지 않은 채 오히려 더욱 완벽한 ‘남성’에 가까워지고 있다. 기존의 ‘나쁜 남자’ 캐릭터가 갖추고 있는 면모 플러스 다정함까지 갖춘, 그러니까 재력, 능력, 미모, 다정함까지 두루 갖춘 완벽한 남자로 변주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예전만큼 대중매체의 힘이 크지는 않아서 TV의 백마탄 왕자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수 있어도, 많은 콘텐츠 속 캐릭터는 외면만 바뀌었을 뿐(콘텐츠 춘추전국시대라, 흥미를 끌기 위한 새로운 소재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기본 성질은 여전히 기존의 캐릭터 상을 답습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도 남자, 여자라는 고정관념으로 먼저 바라봐지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보이고 싶은 것처럼. 드라마에서도 여주, 남주가 아닌 한 ‘인물’로 그려지는 캐릭터 상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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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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