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랑의 물성에 관하여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8.0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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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물성에 관하여.

 

이 책을 모두 읽은 후, 감히 내가 ‘감상’을 적을 수 있을지 두려움부터 밀려왔다. 나에겐 너무 거대한 책이고, 묵직한 책이었으며, 어쩐지 여운이란 돌덩이가 내 마음을 짓누르기까지 했다. 사랑을 만질 수 있다면, 그 무게는 어떨까? 사랑에는 필연이 관여할까, 우연이 관여할까? ‘우리는 이렇게 되어야만 해.’와 ‘그때 그랬었더라면…’ 중 어느 것이 사랑에 더 가까운 말일까.

 

감히 최고의 글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의 물성에 관한 고민을 담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계속해서 머금고 싶은 단상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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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안다는 것에 대한 오만함


 

물리 실험 시간에 중학생은 과학적 과정의 정확성을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오직 한 번밖에 살지 못하므로 체험에 의해 가정을 확인해 볼 길이 없고, 따라서 그의 감정에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인간은 오직 한번 밖에 살 수 없다. 그러니 내 앞에 놓인 선택지 중 어떤 것이 맞을지 확인할 길이 없다. 가설은 의미가 없다. 나의 맥락에서 같은 선택지를 한 똑같은 이가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과학적으로 실험을 진행해볼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감정’에 관련된 선택은 더욱이 그러하다. 지금 내가 이끌리는 대로 선택하는 것이 옳은 길인지 예상할 길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 근거한 선택이 맞는다고 확신하기도 어렵다.

 

감정은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다. 누구든, 다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을 느끼고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갖는다. 그러니 어떤 것에도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다. 나는 그 감정을 ‘안다’고 확신하면 안 된다. 그것은 감정에 대한 오만이자, 외면이다.

 

인간은 계속해서 자신의 감정에 휘둘리지만, 동시에 화해하려 노력한다. 끊임없는 다툼과 화해의 과정을 반복한다. 밀란 쿤데라는 인간의 가장 나약하면서도 복잡한, 도저히 풀기 어려운 문제인 ‘감정’의 특성을 짚어낸다. 소설 속 인물들은 계속해서 사랑에 대한 본인의 신념과 진실한 감정 사이에서 갈등한다. 토마스는 사랑을 나누는 것과 섹스를 철저히 구분 짓고, 둘을 연결지어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그러나 테레사의 등장으로 그 가운데 벽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실금을 낸 것은 다름 아닌 ‘감정에 대한 오만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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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오만함이라는 무게는 허상일 뿐


 

우리 모두에게는 사랑이란 뭔가 가벼운 것,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 무엇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믿음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반드시 이런 것이어야만 한다고 상상한다. ... 토마스는 그의 친구 Z에 대해 테레사가 한 말을 떠올리고 그들의 사랑의 역사는 ‘그래야만 한다!’라기 보다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었는데...’에 근거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우연은 필연성과는 달리 이런 주술적 힘을 지닌다. 하나의 사랑이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는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모여 앉듯 여러 우연이 합해져야만 한다.

 

특히 사랑에 대한 쿤데라의 담론은 더욱 유의미하다. 어떤 사랑이든, 그에 대한 회고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었는데…’에서 출발한다. 그러니 사랑은 ‘그래야만 한다’는 무거움이나 필연성에 있지 않다. 우연이라는 엄청난 가능 세계 중 하나일 뿐이다. 한낱 가벼움에 지나지 않는다. 얼마든지 다른 상황을 마주할 수 있었고, 얼마든지 다른 상황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사랑은 덧없는 것일까. 여러 우연이 합해진다면 그것은 더 이상 가벼운 것이 아니라 필연성에 가깝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이 가진 가벼움이라는 물성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나는 가벼움이 어쩐지 아름답고 황홀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종종 삶은 무거움이 아니라 가벼움으로 인해 바뀌기도 한다. 가벼운 파도가 계속되면 바위는 모래가 되기도 한다. 쿤데라는 ‘여러 우연이 합해져’야만 잊히지 않는 사랑으로 남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가벼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였고, 사랑의 물성이 툭툭 건드리는, 그러나 그것이 지속되면 자신도 모르게 젖어 들다가 잠겨버리기까지 하는 것임을 포착한 것이다.

 

필연성으로만 나의 삶이 구성되지는 않는다. 가벼움이 가득한 사랑, 어쩐지 부정적인 뉘앙스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쿤데라의 책으로 인해 가벼움이 사랑스러운 속성임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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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반복의 욕구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없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 소설의 가장 울림 있는 메시지는, 테레사의 강아지 카레닌에게서 나온다. 책을 읽고 한 번도 운 적이 없던 내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카레닌은 매일같이 제시간이 되면 테레사와 토마스를 깨운다. 테레사와 산책을 한 후, 크루아상을 사 들고 집에 들어온다. 집에 들어온 후에는 토마스와 놀아야 한다. 카레닌은 자신의 일과를 반복하며 인간들에게도 같은 일을 반복해주길 기대한다. 매일 반복되는 개의 시간은 행복하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기에, 카레닌은 행복하다.

 

그러나 카레닌이 인간이었다면, 반복되는 일과에 금방 싫증을 느끼고 말 것이다. 크루아상이 아니라 바게트를 들고 오겠다고 애쓰겠지. 인간이 욕구에 취약하다는 통찰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인간의 시간은 원형이 아니라 직선이라, 계속해서 새로운 자극을 찾아 나서고 그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동시에 과거의 것에 머물며 맴돌기도 하지만, 결국 직선으로 흘러가는 시간 속 행복은 반복의 욕구임을 깨닫지 못하고 새로운 반복할 거리를 찾아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행복할 수 없다. 이 얼마나 비극적인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답다. 인간은 새로운 자극과 욕구와 환희를 찾아 나아간다. 더욱 새로운 것을 찾고 얻기 위해 애쓴다. 그렇기에 인간에게 예술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진 것이고, 철학을 할 수 있는 사유가 주어진 것이 아닐까. 비극과 아름다움은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속성이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는 사랑과 삶을 대하는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인물들이 나온다. 누군가는 철저하게 타인의 시선이라는 지옥에서 살아가고 있다. 개인적인 삶과 공적인 삶의 괴리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이도 존재한다. 계속해서 반복의 욕구를 취하는 이도 있다.

 

‘반복’은 이 소설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카레닌에게서 행복은 반복의 욕구라는 메시지를 던지기도 하면서, 동시에 소설 전반에서 쿤데라는 ‘반복’을 활용하여 서술하고 있다. 같은 시점의 이야기를 개성적인 인물의 관점에서 반복적으로 서술한다. 그리고 소설 전반에서 카레닌의 행동을 반복하여 서술한다. 그렇게 켜켜이 쌓아온 서사가 마지막, 카레닌의 이야기에서 황홀한 대폭발을 일궈낸다.

 

그가 생각한 사랑의 물성, 더 나아가 인간 삶에 대한 사유를 온몸에 녹이고 싶다면 꼭 이번 여름이 지나가기 전, 읽어보길 추천한다. 읽은 시점의 계절을 온전히 느끼게 할 수 있는 소설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 다시 한번 카레닌에게 사랑을 남기며, 나의 사랑이 아름다운 가벼움으로 가득해지길 기대하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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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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