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남산골에 사는 아무개 여성 이야기 [공연]

글 입력 2022.08.0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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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시작하여 올해로 5회를 맞이한 페미니즘 연극제가 7월에 개막했다. 페미니즘 포럼과 총 6개의 작품이 서울 대학로 나온씨어터, 선돌극장 두 곳에서 7월 7일부터 8월 7일까지 진행한다. 이번 연극제는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이야기함으로써,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참가작은 극악무도, 청소년극, 창작 판소리, 음악극 등 다양한 장르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서 창작 판소리극에 해당하는 <허생처전>을 관람했다. 연악 박지원의 <허생전>을 허생처의 관점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해당 작품은 7월 21일부터 24일 일요일 총 3일간 진행되었고 현재는 종연했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창작판소리 <허생처전>


 

창작 판소리는 근대 시기에 새롭게 등장한 판소리를 칭하는 용어다. 사설, 혹은 소리 측면에서 전례 없던 내용을 재구성한 판소리를 의미한다. 창작 판소리는 과거에 그치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적합한 소리를 창조해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판소리를 현대 시대의 감각에 맞게 재창조하는 창작 판소리는 판소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허생처전>은 교과서에서 텍스트나 고전 영상으로 접해왔던 전통 판소리와는 확연히 다르다. 고전 작품 <허생전>을 각색한 작품이지만, 현대인들이 익숙하게 접할만한 소품이나 장치, 유행어들을 활용하여 현대인을 매료시킨다.

 

소리꾼은 대사를 읊으면서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했던 씨엠송이나 유행어를 활용한다. 허생처가 글 공부를 다짐하는 장면에서는 '야, 너두 할 수 있어'라든지 '올여름 여기 어때'와 같은 친근한 가사와 멜로디가 들린다. 글을 읽는 것에 흥미를 느낀 허생처는 작품을 읽으면서 "찢었다"고 말한다.

 

남용하면 사람을 가볍게 만들기도 하는 재치 넘치는 현대 사회 유행의 산물들은 판소리에 대한 긴장감을 이완시킨다. 과거에 배웠던 납작한 판소리는 익살스런 매력이 통통 튀는 낭독극으로 변모한다. 창작 판소리에 매료된 관객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얼씨구, 지화자" 등의 추임새를 넣으면서 작품에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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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처전>은 다양한 소품 활용법으로 공간이 갖는 한계를 극복한다. 1부, 2부로 나뉘는 <허생처전>이 진행되는 공간은 나온씨어터다. 들어서자마자 무대에 보이는 물건은 고수의 것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풍물 악기들, 그리고 우유 상자와 짚으로 된 멍석이다. 하지만 작품이 시작하면 어딘가에서 시시콜콜한 소품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길거리에서 아이쇼핑을 하다 발견하면 한 번쯤은 실소를 터뜨려봤을만한 것들이다.

 

소주 모양의 키링과 우유 상자는 허생의 음주를 즐기는 공간을 재현한다. 음악방송에 등장하는 화려한 블루투스 마이크는 국가를 새로 건설한 허생이 연설하는 현장으로 안내한다. 수저 위에 흰 테이프로 사람의 표정이 그려진 숟가락은 허생의 처가 위기의 순간마다 가상의 허생과 대화를 나눌 때 사용된다. 멍석을 갑작스럽게 나룻배로 변신시키는 기발함에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던 순간이 떠오른다.

 

 

 

남산골에 사는 아무개 여성에 대한 이야기


 

<허생전>은 연암 박지원의 실학사상이 드러나는 조선 후기의 풍자 소설로,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수록되어 있다. <허생전>은 철저하게 허생원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작품으로, 허생원의 시점에서 당대 조선 시대가 갖고 있던 사회 문제를 다룬다.

 

누구의 관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느냐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문제의식이 다르게 출발하지만, <허생전>을 읽으면서 허생 처의 입장에서 조선을 바라볼 겨를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허생 처는 글공부에 매진하고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지아비를 향해 도둑질을 해서라도 굶주림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외치는 장면이나, 오랫동안 가출한 허생의 장례를 치른다는 이야기로만 등장하는 것이 전부기 때문이다. <허생전>은 스치듯 지나치는 허생 처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여유는 주지 않는다.

 

그로 인해 <허생전>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허생원을 자신과 동일시하게 되고, 보편적인 기준으로 삼는다. 반면, 잠깐 등장하는 허생의 처는 타자가 되어 허생전을 둘러싼 담론 속에서 철저히 제외된다.

 

정상성과 비정상성, 동일자와 타자를 규정짓는 경계를 연구하던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는 두 개체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 번째는 기존에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되던 동일자의 일관되지 못하고 불안정한 모습을 고발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동일자에 의해 배제되어 온, 침묵을 강요당한 타자의 목소리를 꺼내는 방법이다. <허생처전>은 1부, 2부를 각기 다른 시각으로 보여줌으로써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조선시대 성별의 비대칭적 경계를 허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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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원의 관점으로 전개되는 <허생처전> 1부에서는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이 간단하게 재현된다. 국가나 계급 사회에서 다방면으로 파급력을 미치는 허생원의 비범한 모습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글공부나 세상이 돌아가는 체계에는 박식하지만, 가사노동에서는 형편이 없는 모습을 보인다. 물욕은 존재하지 않아도 음주 가무를 비롯해 향락을 누리는 것에는 한없이 취약한 허생원의 모습을 포착할 수 있다. 매사에 예측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태도로 시종일관 느긋함을 보여주면서, 관객과 허생처로 하여금 답답하게 만드는 배우의 연기는 허생의 우스꽝스러운 면모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희화화된 허생원의 모습은 허생원의 이면을 보여주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속도감 있게 <허생전>의 줄거리를 보여주어 전반적인 배경을 설명한다. 또한 재치 넘치는 대사와 소품, 연출로 하여금 창작 판소리극이 낯선 이들의 긴장감을 이완시키는 역할을 한다. 청중들이 창작 판소리극의 매력에 빠져 몰입이 고조된 상태에서 허생 처의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게끔 유도한다.

 

허생처의 관점으로 전개되는 <허생처전> 2부는 타자로 침묵을 강요당해온 허생 처의 존재를 양지로 끌어올리는 시간이다. 2부는 허생이 집을 나온 뒤로 허생의 처가 겪은 일을 다룬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허생처는 옷감을 짜기 시작한다. 옷감틀의 시세를 제대로 알지 못하여 원가보다 두 배나 높은 가격으로 구매한다. 성실하게 땀 흘려 노동하지만 당장 세금을 내기도 어렵다.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가출한 허생이 죽었다고 둘러대지만, 허생을 위해 치러야 하는 3년의 제사비용은 세금보다 막막하다. 매점매석으로 물가를 폭등시킨 허생으로 인해 허생 처는 모은 돈을 탕진하고, 고리대금업의 농간에 휘말린다. 소 한 마리와 여자 한 명을 데려와 새 국가를 건설하라는 허생의 조언을 들은 도둑들은 팔려나가기 직전인 조선 여성들의 빚을 탕감한다는 조건으로 새 국가에서 조선 여성의 노동력을 착취한다.

 

허생의 매점매석으로 인하여 제사상에 올라가는 물품들의 가격이 폭등되는 현상을 허생의 관점에서 보면, 기득권 세력의 허례허식을 비판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허생 처의 입장에서 본다면, 해결되지 않고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기득권의 잔재는 결국 서민들에게 뼈와 살을 깎는 고통으로 돌아갈 뿐이다. 허생의 입장에서 새로운 국가는 불합리한 제도 속에서 서민들의 애한을 풀어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허생 처의 입장에서 본다면, 같은 서민이라는 계급 아래에도 권력이 나뉘는 불합리한 구조가 반복되는 것이다. 이처럼 <허생처전>은 <허생전>과 다른 문제 의식을 갖는 것으로 출발하여, 세상을 비판하는 시선 속에 숨은 또다른 모순을 발견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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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자에 의해 다름을 인정받지 못하는 타자는 비정상적이고 비이성적인 것으로 규정되어, 광기 어린 것으로 낙인찍히곤 한다. 남산골에 돌아와서도 변함없는 모습을 보이는 허생원을 보고 분노에 휩싸인 허생 처가 마지막에 보여준 행동은 비이성적인 타자의 광기와 겹쳐 보인다. 하지만 허생 처가 살아온 행적을 단순한 광기로 규정짓기는 어딘가 부당하다. 그보다 오랜 시간 존재를 부정당해온 타자의 아우성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한국에는 여성이 한이 맺히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이 있다. 여성이 앙심을 품으면 그만큼 매섭고 독하다는 뜻을 가진 속담이다. 나는 이 속담이 단순히 여성이라는 생물학 존재가 갖고 있는 태생적 성질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본다. 허생의 아내가 아닌 남산골에 사는 아무개 여성의 이야기에서 주체가 될 권리를 외면 당해온, 타자의 삶을 살아 온 여성들의 한을 단순한 광기로 치부하는 것과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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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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