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청소를 하며 생각한 것

글 입력 2022.07.15 14:54
댓글 1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요즘 사람답지 않게 청소일을 꽤 하셨네요?"

 

이번 알바 면접을 볼 때 사장님께 들었던 말이다. 나는 지금 게스트하우스에서 객실 청소 알바를 하고 있고, 청소일, 조금 더 정제된 언어로는 미화직은 이걸로 세 번째다.

 

내 나이(20대 초중반)에 청소일을 하는 건 확실히 흔하진 않다. 그러나 나는 청소일을 제일 선호한다.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을 대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서비스직이 잘 맞지 않는 부류다. 지금껏 홀서빙, 편의점, 빵집 등 사람을 대하는 일도 여러번 해보았지만, 청소일이 가장 스트레스를 적게 받으며 일할 수 있는 직종이었다.

 

손님들이 드나들 때마다 큰소리로 인사를 하는 것도, 진상 손님에게 애써 죄송합니다라고 하는 것도,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짖궂은 농담을 던지는 손님들을 대하는 것도 물론 힘들지만 나는 애초에 상냥한 성격이 되지 못하기에, 사람을 대하는 일은 늘 긴장되고 내향인으로서 에너지 소모가 큰 일이었다. 몸이 좀 힘들지라도 마음은 편한 청소일이 내게 잘 맞았던 이유다.

 

그리고 청소는, 정직한 일이다. 내가 몸을 움직이면 그곳에 있던 흔적들이 사라지고, 깨끗해진다. 청소는 노력하는 만큼 그 결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세상에 내 마음대로 안되는 일이 얼마나 많나.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내 과제는 교수님 눈에는 부족했는지 낮은 학점을 받게 된다거나,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였는데 진심을 오해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평생을 성실하게 일해도 재벌가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것 만큼 돈을 버는 건 불가능하다.

 

이런 세상에서 청소는 내가 노력한만큼 결과를 낼 수 있는 정직한 일이라고, 매번 나는 그렇게 느꼈고 그 보람은 생각보다 컸다.

 

 

"별다른 능력이 없는 보통 사람들에게 허락된 단 하나의 재능, 그것은 바로 성실함이다.


일상의 루틴은 바로 이 성실함을 계발하고 극대화할 수 있는 삶의 태도다. 루틴을 충실히 따르다 보면 성실함은 자연히 따라온다."


- 김교석, <아무튼, 계속> 중

 

 

<아무튼, 계속>을 읽으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구절이다. 저자는 같은 이유로 정리정돈과 청소도 중요시하는데, 이 태도가 인상깊어서 그 때부터 집 청소도 열심히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청소는 일상에서 성실함을 기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기회다.

 

 

"매일매일 그때그때 정해진 정리정돈 루틴을 따르다 보면 성실함을 무너뜨리려는 게으름을 원천 차단할 수 있고 마음의 장력이 느슨해 질 틈이 생기지 않는다."

 

- <아무튼, 계속> 중

 


일전에 지인을 집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그녀의 집은 굉장히 깔끔하고 예쁘게 꾸며져있었는데, 그때부터 그녀를 더 멋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건 내겐 없는 집을 깔끔하게 정돈하고 꾸밀만큼의 여유, 그러니까 자신의 공간을 위해, 자신을 위해 그만큼 투자를 한다는 것에 대한 감명이었던 것 같다.

 

몸이 힘들 때 뿐만 아니라, 마음이 힘들 때면 사실 가장 먼저 포기하게 되는 것이 청소이다. 그리고 그것을 포기하는 순간, 모든 것이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것은 더욱 더 쉬워진다. 그래서 집이 더러워지는 것을 경계하게 됐다. 마음이 힘들 때면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켜 내가 사는 곳을 청소했다.

 

그러면 몸을 움직이는 동안 잡생각은 잠시 사라지고, 깨끗해진 집은 내게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어준다. 깨끗한 공간에 깨끗한 정신이 깃든다.

 

 

 

 

<저, 청소일 하는데요?>의 저자는 퇴사를 하고 일러스트레이터와 청소일을 병행하며 살아간다. 청소를 하며 느꼈던 감정, 생각들이 나와도 많이 비슷한 것 같다.


 

"원하는 직업을 가지는 것도 멋진 일이지만 생계를 담당한다든지 안정을 담당하고 있는 직업이라도 가치있는 노동이란 건 변함없다."

 

- 김예지, <저, 청소일 하는데요?> 중

 

 

인터뷰 속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청소일은 아직까지 "하라는 공부를 안하면" 하게 되는 일로, 은근히 낮게 취급되는 일이다. 그러나 직접 해보면서, 나는 청소 노동, 몸으로 하는 노동의 가치를 깊이 느끼게 되었고 그렇게 얻은 배움이 값지다고 생각한다.

 

무작정 청소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일상적이거나 혹은 그저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인 청소는 내게 이렇게 많은 의미를 갖고, 지금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만나게 해준 일이기도 하다.

 

 

[김민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댓글1
  •  
    • 저도 깨끗하게 정리정돈된 집에 가면 그 집과 주인에게 좀더 깍듯하게 대하는 것 같아요나를 깍듯하게 대하기 위해서라도 내 주변을 청소해야겠네요~~
    • 0 0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