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펜서'로 감상하는 영화 속 자유 이야기

글 입력 2022.07.11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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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향해 용기 낸 그녀의 도망침에 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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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1991년, 왕실 가족이 샌드링엄 별장에 모여 크리스마스를 보낼 계획에 있다. <스펜서>는 연휴 3일 동안 다이애나 스펜서가 왕실에서 짊어진 삶의 어두운 비극을 향한 내면 이야기에 목소리를 담는다. 스펜서는 직접 운전을 하다가 뒤늦게 별장에 도착한다. 모두가 그의 지각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그 순간부터 통제는 시작된 후 점차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그녀의 자유는 사라질 위기에 놓인다. 다이애나는 3일 동안 의심과 결심 사이를 오가며 그토록 꿈꾸던 중대한 결정을 두 아들과 함께 동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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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주인공의 대화 장면



스펜서 : 왕실에선 뭐든 재미로 한다네요.

남자, 남편, 섹스. 내연녀, 기만. 계승 이런 게 일상이에요. 왕실의 일상이죠.

내가 좋아하는 건 단순하고 평범하면서 실재하는 것들이죠. 중산층 정도의 촌스러운 게 좋다고요, 왕실에 있는 한 내겐 희망이 없어요.

   

 


스펜서에 대한 에디터의 견해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어려운 일이야.

 

이 말의 속 뜻을 이해하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 흔히 한국인들이 친한 친구에게 대화의 시작을 “아니~”라는 추임새를 습관처럼 문장 앞에 넣듯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입버릇처럼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어려운 일이야”라는 말을 별뜻 없이 던지는 말로 착각했다.

 

세상 물정 하나 알지 못했던 나는 대학 졸업도 전에 저 말이 그저 어른들의 버릇된 추임새가 아니었구나를 깨달았다. 자유로운 삶은 인간의 특권으로 당연히 얻게 될 권리지만,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을 통해 직시할 수 있었다.

 

그럼 대체 평범한 삶은 누가 소유하고 있는 걸까.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한 인간에겐 저마다의 가족사와 개인사는 천차만별이며 이곳에 의중을 둔 뒤 저울질을 통해 어느 쪽이 더 위로 올라갔고, 내려갔는지 감히 확인할 수 없는 구조에 놓여있는 필드다. 설령 세상이 누군가에게 부과한 무게가 더 무거워 내려앉아있다고 해서 그 위 쪽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이 더 큰 자유를 선물 받았다고 할 수도 없다. 그만큼 인간 세상은 누구의 위로와 동정으로 대체할 수 없는 소설 같은 사연이 있길 마련이다.

 

전 세계 방방곡곡 쌍둥이는 있어도 눈코입이 절대적으로 똑같이 생길 수는 없다는 사실이 바뀌지 않는 것처럼 한 인간의 온 정신이, 온 마음이, 온 영혼이 투명한 사람은 없다는 사실 또한 암묵적으로 알 수 있다.

 

그럼 적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걱정 없는 재벌들은 위에서 말하는 범주에서 빠져야 하는 거 아니냐며 반박할 수 있다. 이어 경제적 자유가 인간 행복 조건에 대한 최대 자유가 아니냐며 따질 수도 있다. 여기서 화자가 말하는 자유는 ‘나’ 외에 타인에 의해 스트레스 안 받고 눈치 보지 않으며 자신의 사고에 존중을 받을 수 있는 삶을 사는 인간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재벌들은 남부럽지 않은 돈과 더불어 남들의 시선과 질타와 부담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유명한 어록이 있다. 세상은 은근 공평하게 제조되어서 보이지 않는 이면에 더 많은 진실이 숨어있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평범하게 배분되어야 할 자유는 삶에 대해 자신을 진두지휘할 수 있는 진취적인 인간만이 취득할 수 있는 어려운 자격증이다.

 

영국의 전 왕세자비, 다이애나 스펜서의 실제 삶은 찰스 왕세자로 인해 결혼 생활을 소화하지 못한 채 이혼했다. 그 이후 파파라치에게 쫓겨 교통사고로 세상과 안타깝게 작별한 인물이다. 세기의 결혼식으로 전 세계인들에게 환호를 받으며, 그녀는 영국인들에게 언론을 통해 사랑과 지지를 받았지만 남모를 고통스러운 생활을 꾸역꾸역 참고 있었다. 그녀의 참혹한 생애 주기에 단 3일의 왕실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감독 파블로 라라인에 의해 재조명되었는데 그녀가 얼마나 참담한 인생을 버티며 자유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는지 알 수 있었다.

 

다이애나는 살아생전 영국 왕실이 추구한 고리타분한 전통과 그녀의 가치관이 극심하게 대립하여 큰 외로움과 매 순간 싸워 이겨나가야 했던 인물이다. 어린애도 아니고 다 큰 성인임에도 다이애나에게 입을 옷을 다 지정해 주고, 왕실 행사에 입성하기 전 몸무게를 꼭 재야하는 이상한 관례에 대한 가스라이팅에 의문을 가지며 괴로워한다. 그저 왕실 안에서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왕세자비로서, 인간으로서, 여자로서 존중을 받지 못한 그녀는 남모를 스트레스로 인해 자신의 팔에 자해를 하며 삶이 파괴되기 시작한 원인을 보여준다.

 

내가 나를 파괴하는 것과 남에 의해 내가 파괴되는 결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된다. 원인과 결과에 순간적으로 스스로가 처한 가해는 시간이 흘러 감정이 추스러지면 반성을 통해 그 과정이 더딜지언정 성장이라는 관례를 거치게 된다. 그러나 누군가에 의해 비논리적인 억압적인 규칙이  가해지면 반감이 설켜 한 인간의 인생에 대한 회복 탄력성에 대한 감을 잃게 만들게 된다. 그래서 주체가 아닌 객체에 의해 영혼과 마음이 동시에 타락되면 그 자리를 도망가는 행위는 결코 회피라는 단어로 감히 치환될 수 없다.

 

도망감이 어째서 삶을 회피하는 단순한 공식으로 자리매김 되었을까 의문점이 든다. 이 모순되고 편향적인 사고로 자신이 타인에 의해 파괴되고 있는 경고 알람을 받지 못하면 그 이후가 더 위험해진다. 파괴되기 일보 직전인데 그 자리를 꾸역꾸역 지키겠다고 하는 발버둥이 오히려 둔한 사람이며 수동적인 인간상으로 평생을 끌려다녀야 한다.

 

몸에 할퀸 상처는 언제든지 회복할 수 있다. 피부라는 실체가 있어 어루만져주면 흉터는 남아도 따끔거리는 고통은 사라진다. 하지만 실체가 없는 마음과 영혼은 쓰다 듬을 수 있는 실체가 전혀 없기에 때문에 어영부영 시간을 끌면 치유 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이 끝나버린다. 마음과 영혼의 수명이 끝나기 전, 내가 살기 위해 ‘도망치는 것’과 ‘피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존중이며 예의다. 덜 상처받고 자유를 되찾기 위해 몸부림친 일에 그 누구도 그 고통을 그렇게 헤쳐나갔어야 했냐고, 타당하지 않다고 태클을 걸 사람은 없으며 감히 있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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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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