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7.07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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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앙, 그 이면에 인문학


 

우리의 삶에 과학 기술은 빠질 수 없다. '핸드폰'이나 '노트북', 집안일을 돕는 '세탁기, 식기 세척기' 등 우리의 일상을 함께 하는 물건들에는 하나같이 과학 기술들이 사용된다.

 

기계로 인한 편리함을 알아버린 순간 인간은 더 많은 기계를 소유하려 한다. 더 나아가 사소한 불편함마저 편리하게 바꾸는 기계를 발명하려고 노력한다. 점차 사람들은 혁신적인 과학 기술을 추앙하기 시작했다.

 

'추앙'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경멸'일까. 추앙받는 것이 있다면 자연스레 잊히는 것이 있다. 추앙의 진짜 반대말은 '소외'다. 과학 기술의 인기가 높아지는 만큼 저 반대편에 있는 무엇인가는 잊히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인문학의 미래는


 

인문학은 인간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이유는 인간이 삶의 주체이며 타인과 사회에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보다 중요한 이유는 인간은 때로 비합리적이며 비이성적인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존재가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세상은 위험해질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간이란 존재 자체를 연구해서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이다.

 

인문학은 인간의 불완전함을 천천히 극복하려 한다면 과학 기술은 인간의 불완전함을 빠르게 없애려고 한다. 벌써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AI와 로봇들이 인간을 대체하고 있으니 말이다. 현재의 기술력으로도 가능한데 미래의 과학 기술은 인간의 불완전함을 완전히 없애지 않을까.

 

그러면 미래에 인문학은 수억 년 전 멸종한 공룡처럼 역사 속에만 기억되는 것이 아닐까. 불안했다. 그러던 중 최근에 읽은 공상 과학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통해 미래 사회 속 인문학의 희망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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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여행하다


 

김초엽 작가가 그려낸 미래는 생각했던 그대로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급격하게 변화한 모습이었다. 인간은 지구를 넘어 우주를 자유롭게 여행하고, 외계 생물체와 친구가 되며, 사이보그가 되기도, 죽은 사람과 만나기도 했다. 이러한 모티프는 다른 공상 과학 작품에서도 종종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김초엽 작가의 작품이 특별히 좋았다.

 

그 이유는 '공상'과 '과학'이 적절한 비중으로 조화롭고 섞여 있고, 서로에게 스며 하나로 녹아있기 때문이다. 몇몇 공상 과학 작품들은 '공상'과 '과학'의 균형을 잡지 못해서 지나치게 어렵거나, 지나치게 판타지적이며 신파적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과학 기술 용어를 잘 모르는 독자까지도 미래 사회를 쉽게 상상할 수 있게 하며, 억지스러운 감동이 아닌 주인공들의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고민을 담담하게 그려내 자연스러운 공감을 이끌어냈다.

 

이로 인해 작품을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인의 생활을 엿보고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덕분에 미래 사회 내 인문학의 생존 가능성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불완전함


 

엿보고 온 미래는 현재의 풍경과는 많이 달라 있지만, 인간의 불완전함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사고, 감정 모든 것이 규격화되고 통제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자유롭게 사고하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고뇌하기도 방황하기도 했다.

 

불완전함은 때로 부정적인 결과를 불러왔지만, 시행착오 속에서 인간은 점점 성장했고 자신만의 삶의 가치를 찾았다.

  

 

*

아래는 책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메마른 평화보단 갈등 속 사랑을


 

우리는 편견과 차별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 인간이 태생적으로 다름을 느끼지 못하도록 유전자를 조작하면 그것은 가능한 일이었다. 미래에는 그런 행성이 있다. 타인과 자신의 다름을 느끼지 못해 편견과 차별이 없는 평화로운 세계가 말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사람들은 자신이 살던 행성을 떠나 편견과 차별이 가득한 지구로 여행을 온다. 그리고 자신의 행성으로는 돌아가지 않는다.

 

지구에는 다름으로 인한 편견과 차별이 있었지만,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호기심과 이끌림이 있었다. 다름은 편견과 차별의 가능성을 포함하지만 동시에 사랑의 가능성을 가졌다. 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메마른 평화보다 치열한 대립 속에 피어나는 사랑을 선택했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우며 살아간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과학자도 해결하지 못한 그리움


 

성공한 과학자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극복하기 위해 비과학적인 수단을 사용한다면 믿겠는가. 인간 냉동 기술 발명에 성공해 세간에 관심과 사회적 성공을 얻는 한 과학자가 있다. 하지만 그 일은 과학자에게 비극을 가져온다. 연구 결과 발표로 인해 가족이 사는 다른 행성으로 갈 수 있는 하나뿐인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과학자는 가족들이 있는 행성으로 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노인이 될 때까지 기회는 없었다. 그런 노인을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결국 노인이 직접 행성을 가기로 결심한다. 광활한 우주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은 자신의 셔틀을 이용해서 말이다.

 

작은 셔틀로 다른 행성을 간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 앞에서는 과학적 확률이니 원리니 모두 의미가 없었다. 멀어지는 노인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해와 용서의 순간은


 

상대방을 향한 이해와 용서는 과학 기술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 미래에는 죽은 사람을 살아 있는 사람처럼 구현해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주인공 지민은 엄마에게 원망을 가지고 산다. 산후 우울증을 앓았던 엄마가 어린 지민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민은 엄마가 죽은 후에도 별다른 슬픔을 느끼지 못했고, 엄마를 만나볼 수 있는 공간에 찾아가지도 않았다. 그런 지민이 임신하고 나서는 엄마가 이따금 생각나고 그리워지는 것이다. 임신을 하면서 엄마가 겪었을 감정의 변화를 하나씩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는 지워지고 대신 엄마로서 느끼는 부담감과 책임감, 서글픔을 말이다. 그제야 지민은 엄마를 찾아가 한마디를 한다. '이제 엄마를 이해해요'라고. 타인을 향한 이해와 용서는 타인과 동일한 상황에 놓여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찰나의 순간에 비로소 가능했다. (관내분실)

 

 

 

사라지지 않는 자유 의지


 

사이보그가 된 인간은 어디까지 기계이고, 어디까지가 인간일까. 성공적인 우주 탐사를 위해 우주인들은 사이보그가 된다. 사이보그가 되면 월등한 활동 능력을 갖춰 우주에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는 여성 최초 우주인 후보 재경이 있다.

 

사이보그가 된 재경은 우주 탐사를 떠나기 하루 전날 그곳을 도망친다. 그리고 언제나 꿈꿨던 자유를 찾아 우주 공간과 비슷해 가장 편안한 공간이 바다로 뛰어든다. 우주인이라는 책임감과 의무를 벗어던지며. 인간의 몸은 사이보그가 되었지만 기계가 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인간의 자유 의지. 자유의 가치를 알고, 그것을 주체적으로 실현한 재경은 사이보그일까 인간일까. 아마 인간에 더 가깝지 않을까.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불완전함, 그것에서 희망을



모든 것이 과학 기술로 가능해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미래 사회에서도 인간은 사랑과 자유, 공감과 이해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인간의 노력은 과학 기술보다 비효율적이고, 덜 세련되었지만 훨씬 효과적이었다.

 

더불어 그것을 얻는 과정이 고독하고 고통스럽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아마 불완전함은 인간을 정의하는 요소 중 하나이면서 인간을 사랑하게 되는 이유인 듯하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불완전함이다.

 

그것이 있는 한 인문학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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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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