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느 산책가들의 발견 - 산책가의 노래

당신의 산책, 당신의 발견이 궁금하다
글 입력 2022.07.02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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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가’라는 말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고 순간 동화되기까지 했다. 나 역시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유일한 의식이자 취미가 산책인 또 다른 산책가이기에 그렇다.

 

다른 이야기지만 개인적으로 ‘-가’, ‘-자’라는 말을 좋아한다. 특히 평소에 어울리지 않는 말과 합쳐진 것들을. 산책가, 독립자 등, ‘가’와 ‘자’가 옆에 자리함으로써 행위의 의미를 한층 끌어내 보이는 것이 좋다.


아무튼 <산책가의 노래>는 자신을 산책가라 칭한 이가 길을 거닐며 발견한 것들을 노래하고 그린 책이다. 이 노래는 보통 시의 형태를 띠고 있어, 마치 그 자체가 산책처럼 마음이 이끌릴 때 이따금 살펴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으며 의식의 흐름에 빠져 생각을 뻗어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산책을 하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나에겐 이 사소한 의식의 포착이 중요하게 다가온다. 그 사소함이 본질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 본질을 바라보는 것으로 흔들리는 삶에 균형을 바로 잡을 수 있다. 더불어 황홀한 자연, 그 앞에 연일 감탄하는 자신, 순간 차오르는 충만한 느낌, 그로 인한 차분한 용기를 만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이 내 산책의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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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유이든 산책가가 되면 매번 같으면서도 조금씩 다른 것들을 마주하고 발견하게 된다. 작가는 산책하다 마주친 아주 사소한 것들을 생생하고 아름다운 시각으로 기억한다. 숲, 거미, 뱀, 연못, 호수, 개구리, 꽃. 단순히 물질적인 것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엄마, 모든 이별, 인간과 자연의 관계, 마음속 감추어진 사랑, 열정, 욕망.


이토록 놀라운 발견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산책은 별것 아닌 것이 별것처럼 다가오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혼자 산책을 할 때 많이 경험하게 되는 것인데, 묵묵히 길을 걷다 보면 이내 잡념이 사라지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고를 하게 된다. 그때 평소라면 쉽사리 눈길을 주지 않았을 개미, 나무의 모양새, 구름의 속도, 풀의 이름, 나의 생각, 내면, 감정의 결들을 자연스레 관찰하게 된다. 산책은 이런 사소함을 환대하고 허락하는 시간이다.


내가 산책하다 마주한 것은 무엇일까. 수많은 것을 발견했는데, 그 중엔 미처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대화들이 있다. 나는 대화하는 순간엔 당황하고 자신이 없어 버벅거리고 눈치를 보느라 속 시원한 말을 하지 못한다.

 

산책은 그 당시에 미처 답하지 못한 대화를 어느샌가 끌고 온다. 그리고 며칠, 몇 달이 지나 나의 속마음을 오롯하게 대변할 대답을 말할 자리를 마련해준다. 나 같은 사람에게 그 순간은 밀려오는 창피함, 후회와 동시에 어떠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그 해방으로 인해 비로소 나는 적어도 스스로에게만큼은 당당한 존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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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적인 것 중 마주했을 때 기분 좋은 것은 새와 나무다. 새는 참 활동적이라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산속의 새소리는 멀리서도 찌르는듯하게 들려오지만 절대 귀를 자극하지 않는다. 그 편안한 소리에 가만히 집중하다 보면 자연의 데시벨, 자연의 파동이 주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아침 일찍 창문을 열면 멀리 있는 산에서 새소리만이 고요하게 들리는데, 창문을 활짝 열고 햇빛을 받으며 이 소리를 듣는 게 애호하는 잠 깨기 루틴이다. 너무 많은 소리와 잡음을 들어야 하는 시기에 그 고요한 외침이 주는 힘은 꽤 강력하다. 혹여 산책을 즐기려 한다면 가끔은 핸드폰 속 노래 대신 자연의 소리를 청취하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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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하다보면 자주 느끼는 것이 내가, 한 인간이 풍경 속 한 요소로 그려진다. 수많은 점 중 하나로서 나무와 풀과 산과 꽃과 건물과 생명들을 바라본다. 이 개개의 조각들은 분명 옆에 함께 있지만 서로에게 조금은 무심한 관심을 보인다. 그리고 이내 그 무심함 속에서 편안히 내가 존재한다는 걸 느낀다.


무심한 관심과 함께라면 내 나름대로 변화를 천천히 이끌어 갈 수 있다고 믿게 된다. 각자의 발걸음을 옮기다 당신이 내가 달라진 모습을 알아차릴까 기대하기도 하면서. 가끔은 직접 말도 건네면서. 무심하게, 그러나 옆에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은 확실히 존재하는 그 거리가 참 좋으면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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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자연의 한 아우름 안에 존재하는 이들이지만, 인간이라는 점이 그 긴밀하고도 적절한 선을 침해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 시끄러운 소리, 풀의 파편, 풀의 피 냄새. 나무들의 비명소리. 인간은 이제 자연을 해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듯하다.

 

생존과 유흥이 자연의 소모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나조차도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 파렴치하게 부끄럽다. 어느 하나의 비명이 사라져야 끝날 수 있을 이 소멸의 관계에서 결국 인간의 비명은 작아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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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자연과 화해하려는 나만의 노력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을 아름답도록 느낄 수 있는 산책도 그러하다. 작가가 꾸준히 노래했듯, 산책엔 사소하고도 특별한 힘이 존재한다. 그 힘을 토대로 나는 살아갈 수 있다. 작가 역시 아름다운 노래와 그림으로 그러한 힘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동료 산책가를 얻은 기분이다.


앞으로 많은 취미가 생기고 사라지겠지만, 산책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산책을 통해 더 많은 것을 포착하고 싶다. 더 많은 것들과 동료가 되고 싶다. 그러한 바람이 조금은 더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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