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름의 문을 여는 시와 음악, 음악과 시 - 다시, 파랑새로 [공연]

글 입력 2022.07.04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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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파랑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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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다가 좋아하는 서점에서 갓 올린 글을 하나 보았다.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에서 ‘노래하는 시, 시가 되는 노래’를 주제로 한 라이브 공연 예매가 시작된다는 글이었다.
 
공연의 제목은 ‘다시, 파랑새로’, 장소는 마로니에 공원 옆 파랑새 극장. 세 명의 음악가와 세 명의 시인이 한 쌍씩 무대에 오른다고 했다. 생각의 여름과 민구, 시와와 백은선, 윤덕원과 오은. 글을 따라 읽어 내려가면서 빠르게 예매 창 링크를 찾았다. 운이 아주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쁜 하루하루, 밀려오는 일들에 몰두하다 보니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주말 일정을 묻는 주변 사람들에게 혜화에 공연을 보러 간다고 답했다. 어떤 공연인지 되돌아오는 질문에 시인과 음악가가 함께 하는 공연이라 답하면서, 공연에 가는 나도 ‘다시, 파랑새로’가 과연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더욱 기대감이 하루하루 커져만 갔다.
 
그렇게 토요일이 찾아왔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서 이 무대를 기획하고 소개한 서점에도 들리기로 했다. 분주히 찾아갔지만 시간이 많이 남진 않았다. 조급한 마음이었지만 땀을 식히며 서점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동양서림을 먼저 구경하면서 여름을 담은 책들을 둘러보았다. 계단을 올라 위트 앤 시니컬의 시집들을 읽어 보았다. 요즈음 시의 맛, 시를 읽는 그 맛을 알게 되면서 오랜만에 서점을 둘러보고 시와 함께하는 공연을 볼 수 있다는 데 마음이 설렜다.
 
 
 
생각의 여름과 민구, 여름을 떠올리는 일


공연장으로 들어와 자리를 찾았다. 처음 와보는 극장을 둘러보았다. 조그만 의자들 앞 밝은 조명을 받는 무대, 그 곁에 동그란 모양으로 난 통로, 문 대신 달린 커튼이 흔들리고 누군가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처음 등장한 얼굴은 생각의 여름이었다. 여러 번 들어본 그 이름을 직접 본 건 처음이었고, 조용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목소리가 이름과 잘 어울렸다. 그는 ‘다시, 파랑새로’ 공연이 어떻게 막을 올리게 되었는지 들려주었다. 예전에 혜화는, 예전에 파랑새 극장은 문인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낭독을 하고, 노래를 하고, 술을 나누며 문화가 꽃 피는 곳이었다. 그때를 기억하며 다시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찾아온 공연이었다.

이어지는 그의 노래를 따라 민구 시인이 등장했다. 두 사람은 서로 많이 다르고 어색해 보이면서도 미묘한 친근함이 감싸고 있는 듯했다. 생각의 여름은 민구의 시로 노래를 지어 불렀고, 그에 대한 답으로 민구는 공연 전날 따끈따끈하게 구워온 시를 읊었다. 발표되지 않은 그 시가 가장 좋았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민구의 시에서 생각의 여름의 노래가 된 ‘이어달리기’
 
 
이다음에는
너의 개가 될게

다음 생이 있다면,
죽지 않는 나라에서
계속 살아야 할 운명이라면

이다음에는
너의 개가 될게

더 벌어지지 않는다면,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네가 나를 따라잡는다면

우리는 서로의 거리를 잊고
각자 어울리는 이름을 새로 지어주자

불 꺼진 조그만 방에서
누가 개인지 사람인지 모르고
쿨쿨 기대 잠든 환한 등짝처럼
사람의 나이로 깨지 않는 꿈을 꾸자

- 민구, 이어달리기 中
 

그들은 사실 이름처럼 여름을 가장 좋아하진 않는다고 했다. 여름의 대명사가 되어버렸지만 더운 여름이 그렇게 손꼽아 기다리진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여름이 점점 좋아졌다는 이야기 속에서, 그들의 음악과 시 속에서 여름의 풀빛이 보였다. 깨끗하게 씻어 물방울이 툭툭 떨어지는 청사과를 베어 무는 모습이 그려졌다. 초여름이 올 때면 그들을 바라본 오늘이 떠오를 것 같았다.

 
 
시와와 백은선, 물가의 서늘함을 느껴


다음 순서로 싱어송라이터 ‘시와’와 시인 백은선이 무대에 올랐다. 그들은 곧바로 시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매우 길고 긴 시를, 마디마디 나누어 주고받으면서 읽어 나갔다.
 
시와는 노래를 하듯, 연기를 하듯, 풍부한 감정으로 시를 읊었다. 백은선은 새벽 호수 앞에 홀로 앉아있는 어린아이처럼 조용히, 조심스럽게, 천천히, 하지만 눈을 뗄 수 없는 강한 힘을 지니고, 시를 읊었다.
 
 
그렇게 하나씩 나는 포기했어 수영을, 식사를, 오후의 낮잠을, 산책을, 자전거를, 빛이 드는 방을, 슬픔을, 그렇게 비우고 비우면 마지막엔 뭐가 남을까 궁금했다 그때도 나는 나일까 묻지 않았다 기쁨에 가까운 얼굴로 네 텅 빈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끝이 있다는 건 멋지지 않니 

기뻐

네가 여기 있어서 기뻐 

그런 말을 하면서
 
- 백은선, 실비아에게서 온 편지 中
 
 
무대 위 작은 화면에 시의 구절들이 따라 부르는 노랫말처럼 떠있었다. 천천히 눈으로 귀로 시를 읽으며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 있는 것처럼 두렵기도 하고, 차가운 손을 맞잡은 것처럼 시리지만 애틋하기도 했다. 백은선의 시에는 죽음과 부재,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소재와 문장이 많았다. 그 시들을 시인의 목소리로 처음 만날 수 있어 마음 한켠이 떨렸다. 새로운 장르를 만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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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와 백은선은 노래도 함께 불렀다. 따뜻하고 포근한 시와의 목소리와 투명하게 맑은 백은선의 목소리가 아름답게 섞여 들었다. 수줍은 백은선을 놀리면서도 귀여워하고 사랑으로 감싸주는 시와, 사이좋은 자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이었다.
 
 

윤덕원과 오은, 여름은 낮에 겨울은 밤에 찾아온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아쉽지만 마지막 순서가 찾아왔다. 브로콜리너마저의 윤덕원과 시인 오은이 그 주인공이었다. 아주 익숙한 이름들이었고, 시작부터 열기가 뜨거웠다.
 
오랜 시간 무대에서 사람들을 만나온 윤덕원이 먼저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말을 걸기 시작했고, 이윽고 오은이 등장하자마자 웃음이 터졌다. 붉게 물들인 머리에 브로콜리너마저 굿즈 티셔츠를 입은 모습에 유머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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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으로 몇 번 본 적이 있던 윤덕원과 팟캐스트와 방송으로만 보던 오은, 둘의 조합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재밌었다. 말 그대로 신나게 웃고 함께 노래하는 시간이었다. 시를 읽고 이야기하다 문득, 윤덕원이 오은의 시를 노래로 만들고 싶다고 연락을 해온 적이 있다고 했다.

순간 떠올랐다. 작년 가을 오랜만에 들어간 SNS, 맨 위 피드엔 시인이 이 노래의 발매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그래서 반갑고 신기한 마음으로 노래를 듣고 일기를 썼던 기억이 오랜만에 떠오른 것이다.
 
 
여름은 낮에 겨울은 밤에 찾아온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단잠과 꿀잠은 간절하게
바랄 때에야 겨우 찾아온다
날씨가 좋아도 기분은 좋지 않을 수 있다
건조한 날씨에 축축한 기분으로 걷기도 한다
긴팔을 걷어도 반팔이 될 수는 없지만
반팔에 가까워질 수는 있다
낮이 짧아지면 밤이 길어지듯
여름이 가면 겨울이 올 것이다
그 사이에 환절기가 있어서
웅크리고 잠을 잤다
저녁이 되면 다음 계절을 끌고
네가 올 것이다 

- 윤덕원, 오은, 여름이 다 갔네 中
 

윤덕원의 노래에 이어 오은의 낭독이 이어졌다. 여름밤을 떠오르게 하는 음악에 시인의 목소리가 겹칠 때 비로소 여름이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푹푹 찌는 낮을 지나 찾아온 한밤의 바람, 그 기분 좋은 바람에 함께 걷고 싶은 얼굴이 떠올랐다.

둘은 서로를 안지 어느덧 오랜 시간이 흘렀고, 그 시간을 하나하나 들려주지 않아도 처음 보는 나에게도 느껴지는 편안함과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끊임없이 서로를 놀리고 장난을 치는 중간중간 그 시간들이 느껴졌다. 마음이 가득 충전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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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을 나서 기분 좋은 걸음으로 마로니에 공원으로 향했다. 친구를 기다리며 오래된 나무들이 가득 뻗은 푸른 잎들을 보다가 벤치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 생각하면서 여름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작년 이맘때 한적했던 공연과 문화의 땅인 이곳이 다시 붐비기 시작한 것도, 시와 음악, 음악과 시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도. 이날로 나는 이번 여름의 문을 열고 들어서기로 했다.
 

 

 

컬쳐리스트 명함.jpg

 

 

[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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