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믿음에 값을 매긴다면 - 돈이 복사되는 가상자산 수업

천생 문과생의 신문물 공부하기
글 입력 2022.06.2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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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이 시행된지 벌써 2년차가 되었으나 여전히 나는 '문과'라고 나 자신을 정의하는 편이다. 내가 꿋꿋이 '문과'라는 수식어를 선택하는 것은 단순한 구닥다리(?) 마인드일 수도 있고 자부심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변명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빠르게 변하는 과학 기술을 빠르게 흡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변명. 실제로 '문과는 그런 거 몰라도 돼'는 상당히 쓸만한 변명이었다. 예술계를 뒤흔든 기술, NFT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기술은 몰라도 시사 스터디에는 가끔씩 참여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NFT가 각종 시사 뉴스레터 지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과학 기술 개발 소식이었다면 무시했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NFT는 '예술 작품을 판매하는 방식' 중 하나로 소개되어 있었다. 그제야 이것이 남일이 아닌 줄을 깨달은 나는 스터디를 함께 하는 팀원들과 부랴부랴 머리를 맞대 보았지만, 그 누구도 짤막한 뉴스레터의 주석과 지식백과 몇 줄만으로는 이 희한한 단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결국 열이 받다 못해 아예 책 한 권을 찾아 읽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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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비트코인), NFT, 메타버스 열차에
타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
 

 

NFT는 아무래도 '신세대' 기술이니까, 이왕이면 신간 도서를 골라잡고 싶었다. 그러던 중 NFT뿐 아니라 암호화폐와 메타버스까지 다루는 반병현 작가의 <돈이 복사되는 가상자산 수업>을 발견했다. 내가 본래 궁금했던 것은 NFT였으나, 다른 기술까지 함께 알아도 나쁠 건 없지 싶었다. 그리고 띠지를 얼핏 보니 무슨 프로그램을 함께 증정한다는 것 같았다.

 

그렇게 책이 도착했고, 나는 생애 첫 기술 독서에 도전하게 되었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NFT에 관심이 있었다. 고로 다른 기술들은 참고만 하려고 했다. 그런데 책을 펼치자마자 작가는 'NFT를 알고 싶다면 비트코인과 메타버스를 알아야 한다'고 말하며 내게 대뜸 '비트코인'을 떠먹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문도 모른 채 비트코인을 입에 문 것도 잠시, 몇 장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블록체인'에 코를 박고 있었다. 문과생 입장에서는 배려 없이 어질어질한 순서였지만, 소화는 다 됐다. 왜냐하면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에서 다루는 세 가지 기술은 모두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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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세한 내용은 책의 설명을 따라잡을 수 없겠지만, 도대체 왜 NFT를 위해 비트코인을 알아야 하는지가 궁금해졌을 여러분을 위해 몇 가지 요약만 제공해보겠다.

 

첫째, 나도 알고 너도 알고 우리 모두 아는 '메타버스'는 가상 세계다. 이 가상 세계가 빠른 시일 내에 현실 세계만큼이나 중요한 위치로 올라서게 된다면, 가상 세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재산', 단적으로는 화폐가 필요해진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가상 세계의 화폐는 누가 발행하는가? 현재 가장 인기있는 메타버스 공급자 중 하나인 제페토를 예로 든다면, 제페토의 '운영사'가 발행할 것이다. 다시 말해 가상 세계의 화폐는 국가가 통제할 수 없다. 그야말로 개발자 마음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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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가상 세계의 재산들은 컴퓨터 코드 몇 개로 생성되니 재료비가 들지도 않는다. 따라서 운영사들은 자신들의 화폐를 무제한 복제할 수 있다. 현실 세계에서는 경제 상황이 쓰레기(?)가 되어 갈 즈음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통화량을 조정하고 정부가 경제 정책을 펼쳐 준다. 위조 지폐도 구별이 가능하다.

 

그럼 가상 세계에서는? 가상 세계에서는 통화량 조절이 불가능하다. 돈이든 집이든 옷이든 사용자가 원할 때마다 찍어낼 수 있으므로, 화폐는 무한정 증가하기만 할 것이다. 듣기만 해도 어지럽지 않은가? 그럼 가격은 어떻게 정하지? 현실의 경제 논리가 통하지 않는 무질서가 예상된다.

 

그렇다면 메타버스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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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다행히 국가의 통제 없이도 잘만 굴러가고 있는 화폐가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은 개발될 때부터 총 발행 규모에 한계가 걸려 있었던 가상 화폐이며, 특이하게도 은행 등의 중개자를 거치지 않고 개인의 이기심에 기대어 금융 거래가 보증되는 체제다. 비트코인 체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기술이 바로 '블록체인'이다.

 

개인 간의 화폐 이동(거래)을 은행 등의 중개자가 기억하고 보증해주는 현실 세계와 달리, 블록체인 기술에서는 또 다른 개인들을 끌어들여 거래를 보증한다. 요컨대 모든 거래가 직접 민주주의대표자가 아닌, 국민 모두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정치체제 형식이자 배심원판관이 아닌 일반인들이 판결하는 재판 체제로 진행된다고 보면 된다. (고대 아테네가 살아 돌아왔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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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지갑(계좌)을 가지고 있는 이용자라면 누구나 거래의 타당성을 증명해주는 배심원이 될 수 있다. 배심원으로 참여하게 된 이용자들은 올바른 판결을 내릴 시 수수료를 받으며, 배심원들의 판결은 다른 이용자들에게 검토된다.

 

이때 잘못된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팀플에서 무임 승차자를 패대기치고자 혈안이 되기 마련이며, 내가 얻지 못한 수수료를 생판 남이 놀고 먹으며 취하는 것에 열불 내기 때문이다.

 

첨언하자면 이 과정에서 정보들은 모두 암호화된 언어로 조직되어 있다. 그리고 비트코인 세상에 있어 모든 거래들은 이 암호를 해독함(=채굴)으로써 비로소 시작되고 진행되고 끝난다. 그래서 비트코인은 '암호 화폐'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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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메타버스 속 재산에 희소성을 불어넣기 위해 비트코인의 블록체인 기술을 응용한 것이 바로 'NFT'다. 앞서 언급했듯 메타버스 속 재산들은 죄다 데이터로 이루어져 무한 복제가 가능하고, 따라서 희소성이 없다. 이게 진품인지 가품인지도 알 수 없다. 이에 대하여서는 책에 등장한 예시 하나를 인용해보도록 하겠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 초고를 작성하고 hwp 파일을 저장했다. 그리고 이메일을 통해 출판사로 제출했다. 출판사 담당자는 내부 회의를 위해 직원 30명이 있는 단톡방에 파일을 공유했다. 이때 헤밍웨이의 노트북 속에 남아 있는 '원본' <노인과 바다> hwp 파일은 출판 과정에서 발생된 32개의 사본들과 비교했을 때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

 

 

차이는 거의 0에 가깝지 않겠는가? 원본 데이터와 사본 데이터는 구별하기 힘들고 사실 구별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헤밍웨이가 자신의 초고를 저장할 적에 NFT 기술을 활용했다면 달라질 수 있다. NFT는 데이터의 거래 내역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NFT에는 해당 데이터의 이름과 데이터에 대한 설명, 최초 창작자 이름과 그것의 현재 소유자 이름이 블록체인 방식으로 기록된다. 한마디로 0과 1로 구성된 데이터에 '이름표'를 붙이는 것이다.

 

 


믿음의 가격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딱 한 문장이었다.

 

 
"뭐야, 별 거 아니잖아!"
 

 

오해할까봐 밝히지만 이것은 NFT의 정의가 이해하기 쉽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기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NFT는 예술 작품의 복제를 막아주지 못하는, 그야말로 꼬리표만 달아주는 기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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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NFT 기술이 명품 시장의 원리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개별 물품 자체의 가치로 봤을 때, 명품 회사들은 다 망해야 정상이다. 500만원 짜리 구찌 목걸이와 5만원 짜리 '짝퉁' 목걸이는나름 성의있게 만든(?) 짝퉁이라는 전제 하에 내구성이나 디자인 측면에서 차이가 거의 없다. 설령 품질에 차이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495만원 어치의 차이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짝퉁 목걸이를 사지 않는다. 사더라도 부끄러워한다. 그리고 대출을 받아서라도 '진짜' 명품 운동화를 사려고 한다. 인간에게 얼마나 '진품'에 대한 열망이 강하냐면, 이 열망 하나로 '감별사'라는 직업이 생겨났을 정도다. 그래서, 5만원 짜리 대신 500만원 짜리 '진품'을 얻었을 때의 물리적인 효용은? 없다. 그냥 "야 이거 진짜야"라고 자랑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긴 것 뿐이다.


NFT의 가치 역시 이와 마찬가지다. 가상 세계에 구현된 예술 작품의 데이터에 아무리 NFT를 갖다 붙여도 해당 파일은 무제한 복제되어 수많은 '짝퉁'을 만들어낼 것이다. 하지만 '유일한 것', '진짜', '원본'을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 탓에, 구매자들은 원본 NFT 속 소유자 정보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박아넣고자 기꺼이 몇 억을 내놓을 것이다.

 

**


책을 읽고 보니 비트코인이든 NFT든 실체fundamental가 없는 자산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비트코인과 NFT는 많은 사람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면 가치가 생겨나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가치가 없어진다. 둘 다 그저 다수의 심리적 요인에 의해 가치가 매겨지는, 그야말로 '가상의 자산'인 것이다.

 

그 무엇보다 과학적인 방식으로 개발된 자산이지만, 어쩐지 그 무엇보다도 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하다. 가치 있다고 믿으면 진짜로 가치가 생기고, 진품이라는 믿음을 사기 위해서 쓰이는 자산이라니. 인간의 '믿음'에 값을 매긴다면 그것이 바로 가상 자산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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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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