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성영화 시대를 재현하다 - 찰리 채플린 라이브 콘서트

수고로움이 선사하는 낭만
글 입력 2022.06.06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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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영화의 관람 형태



인류 최초의 영화는 1895년, 최초의 유성영화는 1927년이었다. 그렇다면 이 32년이란 공백동안 무성영화 관객들은 정말로 아무 소리 없이 화면만 보고 있던 걸까? 흐릿한 흑백 화면에 지루한 적막 속에서?


아니다. 관객은 소리가 없음에도 충분히 즐겁게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다. 스크린 옆에서 피아니스트가 연신 경쾌한 음악을 연주해 주었기 때문. 재즈 특유의 아슬아슬한 당김음이 영화 속 긴박한 스토리를 표현하기에 딱 들어맞았다. 순식간에 상황을 변주시켜 로맨틱한 멜로디를 들려주기도 했다.


작은 업라이트 피아노 한 대가 작품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매우 물리적이고 수동적이며 변수가 많았던(연주자에 따라 선곡이 달라졌다) 최초의 영화 음악은 영화예술과 함께 발전한다. 피아노를 보조해줄 오르간이 추가되더니 드럼, 트럼펫, 바이올린… 종국엔 관현악 오케스트라까지 등장한다.


상상해 보라. 고작 흰 천에 비친 상(像)을 위해 수십 명의 음악가들이 동원된 상황을. 밋밋한 화면에 생동감을 불어 넣는 진짜 라이브 연주. 그 공연의 에너지가 바로 무성영화를 완성시키는 매력이었으리라.


그렇게 30여년이 흐른 뒤, 영리한 인류는 필름에 소리 입히는 법을 발명한다. 상황에 딱 들어맞는 효과음, 로맨틱한 테마곡, 배우의 대사, 모든 게 필름 한 롤만 틀면 해결된다. 더 이상 영화 한 편을 위해 수십 명의 오케스트라가 수고할 필요는 없다. 훨씬 경제적이고 효율적이게 됐다. 무성영화의 그 독특한 관람 문화는 짧은 기간 강렬한 인상을 남긴 채 곧 사라졌다.




문화를 재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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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공연은, 이런 추억을 되새기는 아날로그적 시도다. <찰리 채플린 라이브 콘서트>는 찰리 채플린의 대표작 <시티 라이트 City Lights>를 40인조 오케스트라가 직접 연주하는 기념비적인 공연이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대형 스크린이 걸리고,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화면을 보며 악기를 켠다. 관객은 잠시, 열악하지만 낭만적이었던 그때 그 무성영화 시대에 빠져 본다.




City L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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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찰리 채플린의 여러 대표작 가운데 하필 <시티 라이트>일까? 물론 <시티 라이트>도 훌륭하지만 <모던 타임즈>나 <황금광 시대>, <위대한 독재자> 같은 다른 작품들을 선정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영화 음악 측면에서 본다면 <시티 라이트>는 의미 있는 선택이다. 찰리 채플린의 직접 작곡한 첫 번째 스코어* 음악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품을 위해 제작된 연주곡

 

연출, 각본, 제작, 편집, 연기까지 모든 걸 손수 해내던 이 천재 예술가는 곧 음악에까지 손대기 시작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을 독학한 실력자였다. 음악에 대한 애정은 자연스레 영화로 이어졌다. 악보를 보진 못했기에 다른 음악가들의 도움을 받아 작업했고, 결국 영화 속 모든 음악을 작곡하는데 성공한다.


그렇기에 <시티 라이트>는 하나부터 열까지 채플린의 손길이 닿아있는 영화다. ‘내’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창작자의 열의가 형상화된 작품이다. 스쳐 지나가는 작은 장면조차 모두 채플린의 의도가 담긴 것이다. 귓가에 들리는 음악 또한 마찬가지다. 감독이 직접 선정한 ‘장면과 가장 잘 어울리는 멜로디’다. 음악까지 들어야만 이 영화가 완성된다.




수고로움이 선사하는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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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예술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난 뒤, 이젠 후대의 살아있는 예술가가 그것을 이어갈 차례다. 고인이 된 감독의 열정을 구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할 순간이 왔다.


영화 오케스트라 라이브는 꽤나 까다로운 작업이다. 뮤지컬처럼 배우와 반주자가 실시간으로 호흡을 주고받을 수 없기에, 필름의 싱크를 맞추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미 촬영된 영상을 보며 때맞춰 소리 내야 한다. 채플린이 익살스런 행동을 할 때의 효과음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강도 높은 집중력과 연습이 필요한 작업이다. 어떤 면에선 비효율적이기도 하다. 어차피 관객은 연주자가 아니라 영화 화면을 볼 텐데, 굳이 라이브를 고집할 필요가 있나? 그냥 녹음본을 들려주면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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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곳에서 제기되는 ‘예술의 효율성’은 그것을 직접 체험한 순간 사그라든다. 거대한 공연장에 울려 퍼지는 웅장한 음악을 듣는 순간, 그 수고로움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지만 영화 한 편만 틀고 그치기엔 대극장 공간이 아깝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하고 오케스트라의 서곡이 연주되자마자 그런 생각은 소멸됐다. 영화 속 음악을 라이브로 들을 때의 생동감과 위압감은 상상 이상으로 감동이었다. 공간이 주는 위압감과 현장감이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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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문화예술을 재현하고 체험하는 것은 큰 의미이자 추억이 된다. 당시의 예술상을 이해하고 작품 의도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소리를 녹음할 수 있는데도 구태여 직접 연주할 때, 그 수고로움은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어낸다.

 

잠시 동안, 낭만 가득했던 무성영화 시대에 다녀온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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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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