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선과 무의식 [사람]

수업을 듣고, 글을 적으며 알게 된 생각들
글 입력 2022.06.0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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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작성하며 ‘시선’과 ‘관점’ 따위의 말을 자주 쓴다. 좋아하는 단어여서도 있지만, 글에는 그만큼 작성자의 시선과 관점이 많이 반영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는 사용하는 단어에서도, 문득 다가오는 문체에서도 티가 난다.

 

때문에 잘 쓴 글을 가려내기는 쉽지 않아도 좋아하는 글을 가려내는 것은 꽤나 쉬운 편이라 생각한다. 각자의 관점에서 우열을 나누는 것은 어렵지만 자신과 생각이 비슷하거나 지향점이 같다면, 혹은 쓰는 단어가 비슷하다면 좀 더 친밀감을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러한 이유로 다양한 종류의 글을 읽어보는 편이다. 최근에는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인터뷰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며 자주 읽고 있는데, 좋다고 생각되는 단어와 문장을 모아두면 그 곳에서도 나만의 시선이 보이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몇 달 전 학교 수업을 듣고 글을 작성하며 확실히 깨달은 지점이 한 가지 더 존재한다. 바로 시선과 무의식의 관계다. 그동안은 생각이 모여 주관이 되고, 그 주관이 시선이 되어 여러 대상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시선은 다분히 의식적이고, 스스로 컨트롤하고 바꾸어 나갈 수 있는 무형의 것이라는 의미가 되겠다.

 

하지만 순간의 경험을 통해 나는 시선이 생각보다 무의식의 영역에서도 많이 발현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경험을 통해 얻게 된 인사이트는 직접 작성한 글 2편과 연관되어 있었기에, 당시 겪었던 일을 설명하며 본격적인 내용을 시작해보기로 한다.

 

이번 학기에는 7과목의 수업을 들으며 꽤 빽빽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 중 가장 흥미를 끈 수업이 있다면 매주 영화를 시청한 후, 이에 숨어있는 문화적 현상을 알아보며 어떤 관점에서 사건을 해석할 지를 다루는 수업이다. 수업의 과제로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전 각각 1번씩 좋아하는 작품을 골라 A4 1장 내외의 발제문을 작성하는 것이 있었다. 작품의 목록을 보고 관심 있는 주제에 해당하는 영화 2편을 골랐는데, 그 중 하나는 이전에 본 적 있었던 영화 <보이후드>였다.

 

이 영화와의 첫 만남은 공교롭게도 학교 수업에서였다. 전적대에서 글쓰기 교양 수업을 들으며 비평문 작성 과제로 보게 된 영화가 바로 이것이었으니 의도치는 않았으나 수업과 꽤나 연관이 깊은 영화가 되어버렸다. 당시에는 비평문이라는 이름 하에 글을 써야 하다 보니 영화를 분석적으로 뜯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또한 대학교에 입학하여 처음 쓰는 글이었기에 평소보다 많은 문헌을 참고하려 애쓰기도 했다. 영화의 형식 면에서도 특별한 지점이 있었고,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도 확실했기에 이를 충실히 담으려 노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많은 내용을 담기에 급급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완결된 글을 작성했을 때의 뿌듯함과 애정을 느끼게 된 첫 순간이었던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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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3년이 흘러 비슷한 시기에 다시금 똑같은 영화에 대해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당시에 어떤 내용을 썼는지 어렴풋이 기억만 나는 수준으로 영화를 한번 더 시청한 후 가장 크게 느낀 부분이었던 ‘아이의 성장에 부모가 미치는 영향’이라는 내용을 중심으로 수업과 연관 지어 글을 작성했던 것 같다. 내용적으로 풍부해진 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과거 썼던 글보단 확실히 간결하게 작성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수업에서 발제문을 발표한 후, 교수님께 “성장 과정에서 어린 시절의 경험이 미래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맞다고 대답했는데, 아마도 스스로 그렇게 느끼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좋았든 나빴든 어린 시절의 경험과 그때 들었던 말은 아직도 영향을 미쳐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주는가 하면, 때로는 족쇄가 되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기도 했다. 향후 성장을 크게 저해할 정도라면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분리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심리학 강의에서 배운 적이 있는데, 아직은 노력하는 과정에 있을 뿐 쉽지는 않더라.

 

교수님께서는 내 대답을 존중하시며 실제로 아이의 성장과 이때 필요한 부모의 역할을 심리학에서 강조하는 부분과 연관 지어 설명해주셨다. 첨언하여 수업의 내용과 내가 지적한 부분이 영화와는 어떻게 결부되어 있는지도 한번 더 짚어주셨다. 이러한 부분을 통해 내 관점을 견고히 해 나가면서도 폭넓게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조금은 기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수업 후 과거 쓴 글과 최근의 글을 비교하며 내용을 곱씹는 순간, 비로소 무의식이 글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인지하게 되었다. 작년 말부터 모종의 일로 과거의 경험을 성찰하고 심리학과 뇌과학에 관심을 가지며 마음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 중에 있다. 이 과정에서 내 행동과 심리상태에 부모님의 영향이 어느정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영화를 보며 주제와 함께 내가 끌리는 부분에 집중하며 보고자 했는데, 한창 위와 같은 생각을 했던 나였기에 무의식적으로 부모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이 가장 먼저 보였던 것이다. 비평문을 작성할 당시에는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영화의 정보라는 객관적인 사실에 집중했다 보니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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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의도하지 않은 것들이 드러나는 순간, 머리에 불현듯 전구가 켜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내가 하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어느새인가 집중하고 있는 대상과 연결되어 있었고, 이게 글에도 반영되었던 것이다. 애써 영화를 부모와 아이 사이의 관계에서 집중하여 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그러한 부분에 자연스럽게 시선을 옮긴 것이 아닌가 싶다.

 

이를 깨닫고 나선 더더욱 글이 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하나의 거울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원래도 생각이 많아지는 날엔 일기를 자주 쓰곤 했지만 그러한 순간에 집중하는 것에서 나아가 어떤 글을 쓰고 나서든 현재 하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 스스로 무엇을 바라는지 살피게 된 것 같다.

 

나를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많이 하게 된 것이 도리어 조금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스스로를 발전하도록 이끌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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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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