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오늘 밤, 좋은 사람들과 와인 한 잔 기울이고 싶은 밤! -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

글 입력 2022.06.0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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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_표1(앞표지).jpg


 

와인과 미술을 즐기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와인 & 미술 동시 입문서

 

와인을 알지 못해도, 미술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도,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더라도 볼 수 있는 '와인 & 미술 동시 입문서'이다. 저자가 프랑스에서 와인을 공부하고, 10년간 미술관 투어를 진행한 입담으로, 흥미진진하게 와인과 미술을 엮었다. 이 책은 가장 기초적인 와인 용어부터 외래어로만 들린 와인 생산지와 포도 품종까지, 뭔지 정확히 알지 못했던 와인 용어를 알아들을 수 있게 해준다. 또한, 공통된 가치와 감정이 느껴지는 와인과 미술 작품을 조화, 사랑, 위로, 신념, 변화 등 36개 키워드로 담아냈다. 그래서 와인 따로, 미술 작품 따로 접할 때보다 더 풍부하게 볼 수 있고, 쉽게 기억된다. 더불어 와인과 관련된 장면이 담긴 명화와 예술가의 작품이 실린 와인 라벨도 소개한다. 이 책 한 권으로 쉽고 풍성하게 와인과 미술을 맛보자!

 

 

내가 와인에 대해 갖는 인상은, 분위기를 내고 싶을 때 마시는 술이었다. 적당한 가격대로 달고 맛있으면 그만. 하지만 때로는 궁금했다. 엄청난 돈을 주고 와인을 수집하는 사람들, 오랜 시간에 걸쳐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숙성하는 사람들, 그 속에 담긴 가치는 어떤 것일지.

 

무지한 상태에서 호기심으로 펼쳐 들었던 이 책은 내 생각보다 훨씬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단순히 와인의 역사와 맛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와인이 갖는 의미와 인생의 교훈까지 고찰했다. 그 내용을 알고 나니 와인이라는, 어쩌면 나와는 거리가 멀었던 주류가 흥미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최고의 순간을 축복하는 나만의 와인을 꼭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1장, 와인과 미술에 담긴 가치

2장, 작품과 와인에 스며든 감정

3장, 명화 속 와인

 


책은 크게 3장으로 분류되며 와인과 미술을 접목해 재미있는 시각을 제시한다. 오늘 리뷰는 이 중 내 마음에 와닿았던 주제를 중심으로 소개하려고 한다.

 

 

 

사건: 와인의 역사적 사건이 담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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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뿐 아니라 세계 술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19세기 말 유럽의 포도밭을 황폐하게 만든 필록세라 사건입니다. 필록세라는 포도나무 뿌리에 기생하면서 영양분을 빼앗아 포도나무가 말라죽게 만드는 진드기입니다." (그림을 닮은 와인이야기, 27p)

 

필록세라 진드기에 대한 면역이 없었던 유럽 포도나무들은 완전히 황폐해지고, 와인 생산량이 약 1/4가량 감소했다. 하지만 인상깊었던 점은 이 일로 인해 벌어진 긍정적 효과였다. 와인 품귀 현상으로 인해 가짜 와인이 성행하자 프랑스에서 원산지를 표기하는 법률 시스템을 만들고, 그 결과 최고의 와인을 생산하기 위한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또한 필록세라의 영향이 덜했던 미국으로 이주한 와인 생산자로 인해 미국에도 와인이 퍼지는 계기가 되었다. 만약 필록세라 피해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의 와인 법률 시스템이 확립되기 전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전화위복의 정신이 돋보이는 이야기이다. 결국 변화를 위해서는 계기가 필요한 법이다. 설령 부정적 계기일지라도 받아들이기에 달린 일이니.

 

정말 흥미롭게도, 필록세라 병충해는 반 고흐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아를의 붉은 포도밭>을 통해 필록세라 병충해가 성행했을 때의 포도밭을 그렸다.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그가 살아있을 때 판매된 ‘유일한’ 그림이라고 하니 묘한 기분이 든다. 그는 왜 하필 이 그림을 그렸을까? 감히 추측하건대 병이 들어 붉게 변한 포도밭을 보며 자신과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시련을 견디고 이겨내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그 점을 생각하면 그림이 판매되었다는 사실이 더욱 운명적으로 다가온다.

 

 


산뜻함: 빠르게 완성되는 그림과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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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빛의 사냥꾼이라는 별명을 가진 화가답게 순간을 화폭에 담으려고 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빠르게 순간을 그려냈는지 살펴볼까요? <네 그루의 포플러 나무>를 그리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까요? 단 7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림을 닮은 와인이야기, 59p)

 

그림을 보며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7분 만에 이런 그림을 그려낼 수 있다니. 정말 천재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순간을 담고자 했던 그의 열정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모네는 밑그림을 그리지 않고 물감으로 바로 그림을 그리는 ‘알라 프리마’ 기법을 활용했다고 한다. 한 겹이나 두 겹으로 얇게 붓질해 가볍고 자연스러운 그림을 표현해낸 것이다. 특히 나는 책에 실린 <파라솔을 든 여인>이라는 그림을 보고 무척 감탄했는데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네는 이 그림을 그릴 때 아내와 아들, 그리고 바람을 그리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산들거리는 바람이 그림에 고스란히 담겨 시원한 기분이 든다.

 

모네의 그림과 관련해 추천되는 와인은 ‘보졸레 누보’, 일명 햇와인이다. 지역의 특성상 포도를 오래 숙성시킬 수 없었던 보졸레 지역은 오히려 짧은 숙성이라는 특징을 발휘해 상큼하고 시원한 와인을 탄생시켰다. 마치 와인에서 느껴지는 감상이 꼭 모네 같다. 다만 이 와인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바로 빨리 소비해야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 단점을 역이용한 와인 중개상의 재치로, 보졸레 누보는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마실 수 있는 햇와인이라는 마케팅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책에 따르면, 모네도 처음에는 가벼운 그림을 그려 벽지보다 못하다고 치부되었다고 한다. 그저 그리고 싶은 순간들을 그릴 뿐이었다는 모네. 가볍고 경쾌한 인상이 주는 부정적 인식 탓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었지만, 끝내 그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 성공을 이룬 모네와 보졸레 누보. 그 재치와 끈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미완성: 완성만큼 가치 있는 미완성


 

"미완성으로 남겨진 그림이 완성작보다 값어치가 낮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화가들이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떤 삶을 살았으며, 어떤 생각의 변화를 겪었는지를 이러한 미완성작과 습작을 통해 알 수 있고, 그들의 다른 작품들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죠." (그림을 닮은 와인이야기, 156p)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감히 말하건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이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표정을 온전히 그리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광야의 성 히에로니무스> 역시 미완성인 그림이지만 그의 신념인 ‘표정’만큼은 완벽하게 표현되어 있다. 미완성에는 어떤 가치가 있을까? 이전의 나는 결과를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겼다. 과정보다는 그 과정 끝에 얻은 성과, 완성된 보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보며 생각이 달라졌다. 미완성에도 가치가 있다.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경험과 교훈을 놓친다면 나는 많은 것을 놓치게 될 것이다.

 

"변질된 와인이라 의심될지라도 한번 마셔보기를 권합니다. 왜냐하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와인이 지닌 여러 가지 모습을 확인할 수 있고, 이후 다른 와인을 접할 때 변질된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닮은 와인이야기, 160p)

 

와인도 마찬가지이다. 미완성이라 볼 수 있는 와인도 고유한 가치가 있다. 미완성이 된다면 어떤 맛과 향이 날지, 오히려 더 좋은 부분은 없는지, 그리고 완성작과 구분할 수 있는 요소는 무엇일지 깨닫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 책은 우리 인생이 매일 황금기가 아닐지라도 모든 날은 각각의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이 지점이 마치 미완성 와인을 즐기는 것이라 평한다. 미술, 와인, 인생으로의 고찰까지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꿈: 별을 담은 그림과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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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하면 어떤 작품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책에 고흐가 이야기한 인상 깊은 말이 있어 꼭 소개하고 싶다.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그럴 때 묻곤 하지.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 갈 수 있듯 왜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게는 갈 수 없는 것일까?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다.” (그림을 닮은 와인이야기, 236p) 

 

별에 대한 그의 생각과 비범한 가치관이 잘 느껴지는 구절이다. 고흐에게 별은 꿈을 주는 존재였다. 그가 생각한 죽음과 별의 관계를 성찰하며, <별이 빛나는 밤에>를 다시 본다면 마치 고흐가 그의 죽음을 예측한 듯한 기분이 들어 묘한 기분이 든다. 별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죽음이 다가왔을 때 그는 바라마지 않던 별에 갈 수 있다. 단순히 명작이라고 생각했던 그림이 달리 보이는 시점이었다. 프랑스의 한 수도사는 와인을 마시고 별을 마시고 있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책은 반짝이는 별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와인으로 돔 페리뇽 샴페인을 추천했다. 톡톡 터지는 맛이 마치 별처럼 다가올 것 같다. 지금은 조금 달리 보이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바라보며 돔 페리뇽 샴페인을 마시고 싶다.

 

 


믿음: 종교와 와인의 관계


  

국회의사당 해태상 아래 와인 72병이 묻혀 있다. 

 

이 말을 믿을 수 있는가? 놀랍지만 사실이다. 1974년 국회의사당의 해태상을 만들 때, 예산이 부족해 해태그룹에서 기증을 받았다고 한다. 이때 해태 주류에서 생산한 와인 72병을 해태상 아래에 묻고, 100년 뒤인 2075년에 건배주로 사용하기로 했다는 사실! 나도 처음 들었을 때 믿을 수 없어 충격을 받았지만 생각해보니 참 재미있는 이야기다. 내가 70대가 되었을 시절, 잊지 않고 그 와인병을 꺼내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 많은 것이 바뀐 지금, 그리고 더욱 미지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는 2075년에 와인만은 그대로, 조용히 숙성되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점이 고고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참 재미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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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과 미술은 세월이 반영된다는 점에서 참 신기하고 희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는 내가 소개한 이야기들 외에도 흥미롭고 유용한 내용들이 가득 차 있다. 나는 기존에 와인과 미술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무척 재미있게 책을 읽었다. 따라서 평소 편하게 와인을 즐기면서도 약간의 호기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더불어, 와인과 미술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작가가 제시한 질문들을 고찰하며 더욱 깊은 생각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밤, 좋은 사람들과 와인 한 잔 기울이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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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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