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주사위의 신이시여 제게 힘을! [게임]

함께해요 TRPG
글 입력 2022.06.05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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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PG 해보지 않을래?


  

보드게임을 같이 하던 선배가 있었는데 어느 날 새로운 종류의 보드게임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TRPG라는 게임으로 보드게임처럼 진행되지만, 캐릭터 설정을 직접 할 수 있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서 엔딩이 플레이어들의 행동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캐릭터를 외관부터 능력까지 직접 설정한다는 것이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모두 처음이었던 탓이었을까. 게임은 제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내 행동의 결과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선배가 대충 '이러한 결과가 나왔다.'라고 알려주는 식이었고 납득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선배는 캐릭터가 행동하며 말하는 대사까지 정해서 알려달라고 했기에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첫인상이 별로여서였을까. 흐지부지 끝난 이후로는 하자는 소리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SNS에서 본 TRPG 후기들은 굉장히 재밌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까지 즐거움을 느끼지 못해서 거짓말 같았다. 자유도가 높기는 했지만 높은 만큼 기초적인 틀마저 없어 진행이 어수선하고 행동의 결과가 명확하지 않은데 어째서 사람들은 저렇게 즐거워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이후로 다른 복학생 선배가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아도 된다며 TRPG에 대해 처음부터 제대로 알려주고 같이 해주었는데 '이것이 내가 알던 게임이었구나. 나는 잘못된 진행으로 인해 이 즐거움을 놓치고 있었구나.' 그 이후 TRPG에 완전히 빠져들어 일정이 비는 날이면 약속을 잡았다. 스터디룸을 빌리거나 자취방에서 또는 인터넷으로 매번 시나리오로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다. 주사위가 지배하는 자유로운 테이블 어드벤처에 대해 알아보자.


RPG라는 단어는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캐릭터가 모험을 떠나 퀘스트를 해결하고 최종 보스를 무찌르는 종류의 이야기를 RPG라고 한다. 그것을 테이블 위에서 다른 플레이어와 대화하고 주사위를 이용하여 상황을 해결해 나가는 것을 TRPG(Tabletop Role Playing Game)라고 하는 것이다.

 

어떤 룰북, 어떤 시나리오로 플레이하는가에 따라 다양한 진행이 가능하다. 때로는 현대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판타지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다. RPG의 정석처럼 시련을 해결하고 최종 보스나 흑막을 해치우는 이야기도 있지만 숨겨진 자신만의 목적을 남들 모르게 달성하기도 한다.

 

해결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NPC 캐릭터에게 접근할 때 변장하기도 하고 세뇌를 시키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범죄(?)를 통해 얻어내기도 한다. 자유도가 굉장하기 때문에 각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을 '플레이어', 룰북에 맞춰 플레이어가 시나리오를 이어 나갈 수 있도록 진행하는 사람을 '마스터', 마지막으로 실제 사람이 아닌 게임 속에만 존재하는 NPC 캐릭터들이 있다.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캐릭터를 시나리오에서 무사히 살아남으며 다른 플레이어들과 다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좋으며 마스터는 플레이어들이 가면서 룰을 지키면서 너무 다른 길을 가지 않도록 시나리오를 따라 이끌 수 있도록 한다.

 

역할을 나눴다면 다른 준비가 어떤 게 필요할까.

 

 

 

일정을 잡아요


  

TRPG를 플레이하는 것을 보통 '세션'이라고 한다. 세션을 하기 위해서는 혼자서는 하기보다는 두 사람 이상의 인원이 있는 것이 플레이하기도 좋고 다양한 행동을 하기도 용이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을 모아 진행하고는 한다. 1시간이면 끝나는 간단한 세션이 있는가 하면 몇 부로 나눠진 장편 세션 역시 존재한다. 이전에는 모두 대학생이어서 공강이 있는 날, 공휴일 등을 맞춰서 할 수 있었지만, 하나둘 직장인이 되었더니 시나리오 고르기보다 일정 맞추기가 더 힘들어졌다. 그렇기에 마스터를 포함한 최대 5명이 동시에 같은 날, 같은 공간에서 몇 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함께한다는 것은 가까운 곳에 사는 사이가 아니고서는 모이기가 참 힘들다.

 

어떻게 모두 다 되는 날을 잡으면 몇 달 뒤가 되기도 하다 보니 일정을 잡아도 막상 세션에 가까워지면 다들 잊어버리고 다른 일정이 잡혀 세션 약속이 사라지기도 한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5명이 모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프라인보다 인터넷으로 세션을 진행하기도 했다. 초면인 사람들이나 타지역의 사람이 있다면 온라인 세션도 추천한다.

 

 

 

룰북과 시나리오


  

TRPG를 하기 위해서는 룰북이 꼭 필요하다. 룰북이 필요 없는 독자적인 세계관을 가진 시나리오도 존재하지만 보통 룰북이 필요한 시나리오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룰북이란 무엇일까. 정통 판타지의 D&D, 크툴루 신화를 기반으로 하는 COC, 범죄가 판을 치는 피아스코 등 룰북이란 기본적인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책이다. 어떤 룰북을 이용하는가에 따라 주사위를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가, 어떤 인물과 생명체가 등장하는지, 인물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달라진다. 시나리오 진행에 있어 세세한 설정과 위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논쟁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나와 있기 때문에 반드시 룰 북을 준비하는 게 좋다. 룰북을 선택했다면 이러한 룰북을 기반으로 다양한 시나리오 라이터들의 상상을 더한 시나리오를 선택하면 된다.

 

시나리오는 룰북의 세계관을 이용하여 만든 이야기다.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가 룰과 시나리오의 관계 같은 것이다. 같은 룰북을 사용하더라도 시나리오에 따라 분위기가 크게 바뀐다. 같은 CoC를 이용하더라도 신화 속 존재들이 등장하여 플레이어들이 죽어 나가는 시나리오가 있는가 하면 가벼운 분위기의 코미디 시나리오도 존재한다.

 

룰북처럼 시나리오 역시 취향에 따라 준비하면 된다. 잔인한 정도가 부담스럽다면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마스터와 다른 플레이어들과 상의해 그 정도를 조절할 수도 있고 시나리오가 길어 다 끝내지 못했다면 상의를 통해 또 다른 날 이어 할 수 있다.

 

 

 

제발 제발 펌블만은 제발!


  

TRPG의 상징이라고 하면 주사위라고 할 수 있다. TRPG에서 주사위는 다양한 역할을 한다. 행동의 결과를 결정하고 인물들의 위치나 관계 등 자잘한 설정까지도 주사위를 통해 결정한다. 나는 주사위의 종류가 그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육면체뿐만 아니라 사면체 십이면체 팔면체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한 면의 주사위를 사용하고 때로는 다른 주사위 여러 개를 던져 결정할 때도 있다. 주사위도 재료도 다르고 색상도 다르기에 취향에 따라 준비하면 된다.

 


주사위.jpg

 

 

숫자가 클수록 좋을 때도 있고 작을 때가 좋을 때도 있으며 가장 좋은 숫자가 나오면 '크리티컬'이라고 해서 모든 위기를 넘길 수 있을 정도로 가장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며 반대로 최악의 숫자가 나오기도 하는데 우리는 이것을 '펌블'이라고 부르고 있다.

 

펌블이 나온다면 모든 상황이 뒤집어질 정도로 나쁜 결과가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 정도의 상황이 되는 것이다.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기 위해 유일하게 가진 동전을 꺼내다
바닥에 떨어뜨린 동전이 자판기 밑으로 들어가서 꺼내러 들어갔더니
자판기에 머리를 박아 3시간 동안 기절해 있었다.
 

 

주사위를 사용해서 좋은 점이라면 직접 내 눈으로 행동의 결과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내 손으로 결과를 만들어 냈기 때문에 화는 나지만 결과에 순응할 수 있다. 다음번에는 그러지 않기를 속으로 바라고 바랄 뿐이다.

 

 

 

배려, 존중, 인정


  

세션의 진행이 대화를 통해 진행되기 때문에 다른 플레이어들과 마스터와 이견을 조율할 일이 많다. 시나리오 후반에 이르면 상황이 격해지면서 플레이어들이 흥분하여 다른 상대에게 실례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진행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른 플레이어의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서 단둘이 있고 싶다거나,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고 싶어 독단적으로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이 있다.

 

TRPG라고 해도 보드게임, 모두 즐겁기 위해 하는 것이다. 공정하게 주사위를 굴려 결과를 결정하는 것이기는 하나 플레이어 각자가 이 시나리오에서 어떻게 할지 대략 정한 것이 있을 것이다. 모두 그것을 완벽하게 이루지 못할지는 몰라도 자신의 진행을 위해 다른 플레이어들의 즐거움까지 밟을 수는 없다. 자기 행동과 세션의 결과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결정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함께 행동해야 할 때 다른 플레이어 또한 배려해가면서 말이다.

 

 

[빈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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