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초여름 밤에 내리는 '눈' [음악]

- 눈, 눈, 눈
글 입력 2022.06.04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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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정리하지 못한 겨울 이불에 더워 몇 번이고 잠에서 깨기를 반복하는 조금은 이른 여름밤, 겨울만 되면 더위를 많이 타 여름을 싫어하면서도 여름날의 이 지겨운 밤을 그리워했는데 지금은 다시 조금은 추웠던 겨울의 밤이 그리워진다.


겨울에는 지금처럼 잠든 사이 모기에 물려 붉게 부풀어 오른 상처를 마주할 일도, 나의 더위가 잔뜩 묻은 매트리스 위에서 뒤척이는 일도, 나사를 덜 조인 탓인지 틀 때면 팬 돌아가는 소리가 나는 고장 난 선풍기의 소리를 들을 일도 없다.

 

추운 공기가 묻어있는 창문을 조금 열어두고 잔뜩 느끼던 나의 온기, 잠든 사이에 내린 눈을 기대하며 열어보던 오래된 우리 집 창문, 이르게 저무는 노을을 뒤로하고 오렌지색 조명을 켜 침대에서 읽어내렸던 서너 권의 책들, 특유의 겨울 분위기를 담아내는 노래들을 들으며 잔잔한 밤을 보내던 겨울밤.

 

더워 며칠간 깊게 잠들지 못했던, 더운 지방에 살아서 눈을 결국 눈에 담아내지 못하고 겨울을 지나 보냈던 '더위'에 지친 마음에 <눈>이라는 제목으로 겨울을 잔뜩 불러주던 겨울 노래 3곡을 내리게 해보는 건 어떨까.

 

 

 

SURL - 눈


 


 

사람들 많은 곳을 가봐도

괜히 또 울적해져

거리에 서서 생각하며

 

올 것 같던 

 

좋던 일은 오지 않고

옛날의 기억들은

다시 내게 기대를 

부풀려보지만 결국

 

 

Surl의 <눈>은 신발에 눈이 너무 많이 묻어 차가워지다 못해 시린 발을 한 채 머나먼 집으로 걸어가는 듯한 곡으로 느껴진다. 연말의 들뜬 사람들 속 어떠한 것도 이루지 못하고 상실감 혹은 괴리감 같은 것들을 느끼며 길을 걷는듯한, 외롭고 아프고 시린 겨울 곡.

 

번지듯 고조되는 <눈>의 서글픔은 '서글픔'만이 노래에 남아서 더 마음에 오래 남는 듯하다. 그래도 괜찮다고, 다음에는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지 않기에 한없이 시리고 서글프지만 모두가 거리에 걸린 조명들처럼 빛나는 것 같아 보여도 우리도 결국 별반 다른 게 없이 외롭고 아픈 겨울을 보내고 있다고, 잘될 거야라고 막연하게 미래를 그리라고 펜을 손에 쥐여주는 게 아니라 나와도 너무 비슷한 존재가 함께 손을 쥐고 말없이 눈앞이 흐리게 내리는 눈 길 사이로 천천히 한 발을 내딛게 해주는듯하기 때문일까.

 

여름밤에 듣는 Surl의 <눈>은 겨울만의 치열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여름의 치열함은 어린 나날의 끝이 없는 것만 같이 뜨겁게 타올랐던 나날들이라면, 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여기저기 붙어있는 거리와 같은 사회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청춘들의 여리지만 절대 꺼지지는 않는 치열한 불씨와 나날들을 닮은듯한 <눈>.

 

꼭 뜨거워야만 타오르는 건 아니니까, 닿으면 녹아버리는 눈이라고 해도 결국엔 단단해질 눈과 닮은 나. 더워져가는 여름에 Surl의 눈을 들으며 여름이라 잊혔던 겨울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

 

 

 

Zion.T, 이문세 - 눈


 


 

눈이 올까요 우리 자는 동안에

눈이 올까요 그대 감은 눈 위에

눈이 올까요 아침 커튼을 열면 눈이 올까요

 

잘 봐요 밖이 유난히 하얗네요

눈이 와요

 

 
머플러를 꺼내들게 되는 겨울이 오고 아버지가 틀어둔 뉴스에서 눈 소식이 들릴 때면 나는 자연스레 이 곡을 찾게 된다. 우리는 언제쯤 눈을 볼 수 있을까. 눈이 잘 안 오는 더운 지역에 살고 있는 터라 열세 살이었던 해의 크리스마스에 내렸던 눈 그 후부터는 항상 잠에 든 새벽에만 눈이 내려 아침에 일어나 열어본 우리 집 오래된 창문 밖의 눈은 사라져 있었다.

 

그래서 눈 소식이 들리는 날이면, 차가운 공기를 발로 느끼며 서둘러 뛰어가 열어본 창밖엔 눈이 펼쳐져 있기를 기대하며 이 노래를 들으며 잠에 들곤 했다. 비록 눈이 내리지 않아도, 잠든 사이에 녹아버린 눈의 흔적만을 바라보게 되어도 이 노래를 듣고만 있으면 언젠간 내릴 눈을 맞이할 그날만을 생각하며 눈에 담지 못한 눈에 대한 아쉬움도 사라져간다.

 

초여름에 눈이 내릴 일은 없다지만, 겨울에도 내리는 눈을 눈에 담지 못한 나에겐 어쩌면 이 여름도 눈이 내릴 것만 같다. 몇 번이고 눈이 내리지 않은 날을 마주한다고 해도, <눈>을 들으며 다시 겨울이 돌아와 차가운 눈을 만질 수 있는 날까지 눈을 기다리며 잠에 들 것 같다.

 

 

 

새소년 - 눈 (winter)




 

 

겨울은 또 봄을 외면해 버린

너무 많이 쌓인 눈

어디로 숨어볼까

나는 꼭 겨울 같아

 

 

 Surl의 <눈>은 차갑고 시린 겨울의 거리의 가로등을 그려지게 하고, Zion.T의 <눈>은 차가운 밤 하늘에서 대비가 이루어지는 하얀 눈이 가득 내리는 밖을 담아내는 창문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온기가 가득 묻은 침대를 그려지게 한다면, 새소년의 <눈>은 사랑으로 바라보던 이를 멀리서만 바라볼 뿐, 다가가지도 멀어지지도 못하고 애매한 자리에 서서 가득 쌓인 눈과 자신만이 멈춰있는 세상을 살고 있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겨울은 봄과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다른 존재로써 존재한다. 봄은 시작을 겨울은 끝을 의미하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winter가 부제인 이 노래는 사랑을 말하지만 결코 시작되는 사랑이라던가 이어지는 이어질 사랑을 말하지 않는듯하다. 멈춰버린 사랑을 이어나가고 싶지만 두려움에 혹은 그 외의 어떠한 벽 때문에 혼자 그 자리에서 멀어져 가는 사랑을 바라보며 불안히 서 있는 사람의, 사랑의 형상.

 

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선풍기의 바람이 선명히 느껴지는데도 불구하고, 이 곡만 들으면 정말 겨울이 된 것만 같다. 옅은 바람에도 불안히 흔들리는 촛불처럼, 불안하게 사랑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이 노래가, 사랑 앞에서 자신이 '겨울' 같다고 칭하는 이 노래가 겨울의 푸르면서도 조금은 음울한 분위기를 잘 담아낸 듯하다.

 

사랑 앞에서 자꾸만 겨울 같을 때, 한여름만 같은 사랑이 두려워 도망치고 숨고만 싶을 때, 새소년의 <눈>을 들어보는 건 어떨까.

 

 

[김명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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