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산책을 닮은, 산책을 담은 책 - 작가의 산책

작가의 빛나는 언어가 돋보이는 산책 여담
글 입력 2022.05.3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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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은 잔잔하게 밀려오는 순간들을 수집하는 일이기도 하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내음을 맡고, 피부에 닿는 온기를 헤아리며 마주한 장면들을 기억으로 수집한다. 발걸음 따라 자신의 방식대로 또 느낌대로 얼기설기 이야기를 지어가듯 산책을 이어간다. 이따금 실없는 생각을 끝말잇기하듯 떠올리기도 하면서.


어느 곳이든, 어떤 시간이든. 산책하다 보면 같은 곳도 조금씩 다르게 보고 느끼게 된다. 묵혀둔 기억을 새삼스레 떠올리거나 새로운 기억을 만들기도 하면서. 우연의 연속에 불과한 듯하지만 이따금 아무렇게나 지나치지 못할 이야기가 완성되곤 한다. 불현듯 일어난 사건 때문에, 시작된 대화 때문에, 유독 시선에 걸리는 장면 때문에. 아니면 보이는 것과 전혀 상관없이 내 안에서 일어난 여러 상념 때문에.


그런 산책을 작가가 이야기한다면 어떨까. 저마다의 시선으로 마주한 것들을 섬세하고 예리하게 표현하며 속삭이는 작가들의 언어들로 말이다. 이번에 도서 『작가의 산책』에서 그 언어들을 만나보았다. 일상에 덩그러니 놓인 평범한 풍경을 산책한 작가들의 소소하고도 특별한 이야기들을.

 

 

『작가의 산책』

_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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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산책을 닮은, 산책을 담은 책

  

 

작가의 빛나는 언어가 돋보이는 산책 여담

 

이 책에 등장하는 일본 작가들은 하나같이 글 잘 쓰기로 너무나도 유명한 대문호들이다. 그래서일까. 묘지로, 꿈에서, 역 앞에서, 모두 잠든 거리에서, 백화점에서 그리고 낯선 나라에서…… 작가가 가는 곳은 특별하지 않지만 표현은 특별하다. 작가의 감각은 공기에 예민하다. 냄새만으로도 거리를 표현한다. 보고 듣고 만지는 것의 색깔과 냄새와 촉각을 한껏 풍성하게 받아들인다.

 

- 책소개

 

 

『작가의 산책』은 그 제목처럼 작가들의 산책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아주 대단하고 멋진 여행이 아닌 일상 속의 산책을 이야기하는 글들은 얼핏 보면 단조롭고 평범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러기에 작가의 사색과 시선이 더 선명하게 일렁이는 언어들이란 걸 느낄 수 있다.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관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저마다의 호기심과 상념을 떠올리는 작가의 의식의 흐름을 곁에서 산책하듯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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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 노부인들이 옛날 옛적 소녀들이나 했던

네잎클로버 찾기를 하다니!"

-호리 다쓰오

 


"빨리 결혼이라도 해서 똑바로 살아, 똑바로."

 

아사쿠사 어느 카페에서 사촌 형 같은 사람이 사촌 동생으로 보이는 이에게 말했다. 그 녀석들은 내 테이블 바로 옆에서 생맥주 한 잔을 30분에 걸쳐 마시고 있었다. 나는 술을 마셔 기분이 좋았다. 말동무가 있었으면 하는 한편 없어서 편하기도 했다.

 

가게 밖으로 나오니 달이 아름다웠다. 전차와 사람과 상점 위로 달님은 구름 속을 들락날락하며 시원스레 흘러갔다. 산들바람이 불었다. 가슴 한가득 숨을 들이쉬었다.

 

“그렇군, 똑바로 살아, 똑바로, 인가.”

 

- <산책 생활>(나카하라 주야)

 

 

전혀 모르는 시간과 공간이지만 몇 문장을 따라 읽다 보면 작가가 거닐은 순간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절로 그려진다. 길 위에서 대화하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멀리서 흘러오는 소박한 소음이 귓가에 걸린다.

 

골목을 채운 다정다감한 내음이 느껴지고 신발 바닥 너머로 밟히는 땅의 질감이 괜스레 그려진다. 아무런 사연 없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들. 사람과 사물과 소리들에 시선을 빼앗기듯 때론 무관심하듯 하며 자신의 생각과 함께 이야기를 그려보는 작가의 문장들은 산책을 흥미로운 여담으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풀을 향한 이 친밀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내게 풀이란 아무리 작고 덧없을지라도 땅속에 숨어 있는 생명의 눈이다. 촉각이다. 온각이다. ‘생명’이란 아무리 변덕스럽고 헛된 표현을 하더라도 아름다움이 있고 힘이 있고 광채가 있다. 수많은 물질 가운데 풀에 드러난 생명만큼 겸손하고 소박하며 정직하고 참을성 강한 것은 없다. 풀이야말로 내게는 ‘언어’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신기한 존재다. 발굽이 없는 탓에 한곳에 멈춰 선 작은 짐승이다. 성대가 없기에 평생 침묵을 지키는 작은 새다.

 

- <풀 베는 냄새>(스스키다 규킨)

 

 

가벼운 산책인 만큼 잔잔하나 사소한 감각마저도 하나하나 제 곁에 피워내듯 표현하는 문장들이 이어졌다.

 

그저 주변을 둘러보는 듯하다가도 얼핏얼핏 드러나는 삶에 대한 사색이나 사물을 대하는 작가들의 태도는 문장을 따라가던 눈길을 잠시 멈춰 세우기도 했다. 작품을 위한 치열한 고민이 아닌, 보이는 것들을 보고 떠오른 것들을 붙잡는 자유로운 유영 속에서 작가 저마다의 그 다움을 엿보기도 했다. 그 그대로의 시선, 호기심, 감각 같은 것들.


많은 누군가가 걸었을 길이 작가의 언어 속에서 전혀 다른 빛깔과 분위기를 냈다. 소박한 언어가 퍽 또렷하게 그려내는 풍경들 덕에 책을 읽으며 산책하는 듯한 느낌을 만끽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걸었던 또 다른 일상적이고도 평범한 길들이 슬며시 궁금해지는 이야기들이기도 했다.

 

작가들처럼 나도 내가 줄곧 걸었던 길에 좀 더 관심 어린 시선을 두고 내 멋대로의 생각을 즐기며 산책을 더 풍성히 누려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호기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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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산책』은 소박하기에 군더더기 없이 더 선명하게 베어나는 작가의 시선과 특별함을 헤아려볼 수 있는 글들이고 책이었다. 문장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떠오르는 장면과 느낌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산책하는 듯한 기분을 오롯이 머금을 수 있던 독서가 아니었나 싶다.

 

잔잔하게만 흘러갈 것 같은 이야기들 사이에서 마음을 동하게 하는 문장을 마주하는 것 또한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마치 산책 중에 우연히 마주한 장면에 이유 없이 발걸음을 멈추고 또 다른 생각의 물꼬를 틀곤 하는 것처럼.

 

『작가의 산책』은 이유 없이 걷고 싶어지는 따사로워지는 계절 속에서 모처럼 만난 산책을 닮은, 산책을 담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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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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