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글을 쓰는 게 힘들어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글 입력 2022.05.29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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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본입니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한 장면 중 이런 대사가 나온다. 드라마 작가 역의 천우희가 감독에게 완성된 수정본을 건네곤 하는 말이다.

 

‘하루키는 대단해요. 규칙적인 생활, 아침에 일어나 클래식을 듣고. 낮에 달리며 록 음악을 듣고 하루에 정해 놓은 원고량을 꼭 채우고. 일을 마친 후 마시는 맥주 한 잔에 행복을 느끼며 재즈를 듣고. 잠들기 전에 내일 아침에 들을 클래식 음반을 챙겨 두고. 어느 정도까지는 몰라도 최고의 경지를 위해선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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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대사를 듣고 그가 대단하다고 느낀 건 반드시 정해진 원고량을 채운다는 점이었다. 매일 아침마다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재즈를 즐기는 그는 뭐랄까 오히려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가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수업을 빠지고 재즈 바를 갈 정도로 재즈 음악을 좋아했으며, 학교를 졸업하기 전인 1974년부터 약 7년간 아내와 재즈 바를 운영할 정도였다는 건 알고 있던 얘기니 다음날 들을 음반을 고르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는 건 사실 어렵지 않다.

 

재즈 바를 운영하며 매일 밤 부엌에서 글을 쓰던 그는 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한다. 그리고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첫 장,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완벽한 문장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야.’

 

국내외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조차 그의 첫 작품에선 글을 쓸 때면 절망적인 기분에 사로잡혔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해당 소설에서 ‘나’는 문장에 대한 많은 것을 데레크 하트필드에게 배웠다고 말한다. 하트필드가 얘기하는 좋은 문장이란 이렇다.

 

‘문장을 쓴다는 작업은, 우선 자기와 자기를 둘러싼 사물의 관계를 확인하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감성이 아니라 잣대다.(<기분이 좋다고 안 될 게 뭐야?>,1936)’

 

‘나’가 마지막으로 문장에 대해 얘기한다. ‘나’에게 문장을 쓴다는 건 대단히 고통스러운 작업이라, 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고통에 비하면 그것은 대단히 간단하기에 즐거운 작업이기도 하다, 고. 만약 당신이 예술과 문학을 꿈꾸고 있다면 그리스인이 쓴 것을 보라 말한다. 진짜 예술이란 지중해 태양 아래 노예들이 잡일 거리를 하는 사이에 생겨나기 때문이다.

 

모두가 잠든 한밤 세 시에 부엌의 냉장고를 뒤지는 그런 인간인 ‘나’가 자신은 그 정도의 문장밖에 쓸 수 없다고 말할 때, 여기서 ‘나’란 존재가 무라카미 하루키일지라도 내가 약간의 위안을 받았다면 그건 너무도 바보 같은 일일까.

 

*

 

한밤, 시간을 쪼개며 글을 쓰던 그의 모습에서 그가 지닌 거대한 힘을 발견할 수 있다. 성실함.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그러나 글을 쓰는 누군가에겐 필수적인 자산을 그는 갖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현대 사회에서 직업을 갖고 살아가며 그 와중에 틈틈이 글을 써 완성해 낸다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어려운 일이다. 일을 대신해 줄 노예도, 대단한 재능도, 엉덩이 붙이고 글을 다 쓸 때까지 가만히 앉아있을 끈기도 없는 나에게 그것은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새벽 세시, 피곤한 몸을 끌고 자리에 앉아 반쯤 감긴 눈을 치켜뜨며 그 어떤 문장이라도 쓰려고 애쓴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딱 이 정도라고. 대단한 글 따위는 결코 만들어 내지 못할 거라고.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대공 트리오>같은 클래식 음악이나 재즈 음악이 아니라 드라마 <멜로가 체질> 속 천우희의 이어지는 마지막 대사다.

 

‘규칙적인 생활이라는 게 보통이 아니더라고요. 그렇다면 최고의 경지까진 오르지 말자. 어느 정도만 하자.’

 

어느 정도까지만.

 

 

[강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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