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완전한 자유로 탈출하는 미로 - 호안 미로: 여인, 새,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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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파블로 피카소 등 스페인의 유명한 화가들은 많이 들어보고 많이 봤지만 ‘호안 미로’는 친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품을 보고 내면에서 올라오는 ‘아…!’는 그의 작품이 알게 모르게 나의 삶에 있었음을 알려줬다. 이름보다는 작품으로 먼저 다가왔던 것이다.
우연히 전시에 간 시간이 도슨트와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 ‘호안 미로’의 작품과 삶을 같이 들을 수 있어서 어려운 초현실주의 작품이지만 나름 이해하며 볼 수 있었다. ‘호안 미로’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다. 원래 미술의 재능이 뛰어났다고 하지만 아버지의 의견을 따라 회계를 공부하고 취업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술을 그만두고 회계를 하려니 몸에 병이 나 아버지의 농장으로 내려가서 요양을 하고 다시 미술을 시작했다고 한다. 재밌던 점은 미술과 회계의 관계인데 감성과 이성으로 나눌 수 있었던 점이다. ‘2+2=4’가 되는 건 회계 상에서만 가능하고 예술에서는 답이 없다고 말한 그의 대답이 이해가 간다.
공간에서의 자유로움, 그리고 별
그의 작품들을 보면 뭔가 우주의 진공 상태 같다. 고대인들이 벽화에 남긴 그림 같기도 하다. 그만큼 기호화 되어 단순하게 표현됐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기호화는 더 고도화된다. 기호화 하면서 공간을 설명해주는 배경은 사라졌다. 즉 수평선, 지평선이 없다. 지평선은 땅과 하늘을 구분하는 선이다. 그림은 온전히 관객의 상상력에 맡겨야 한다고 한 그의 생각이 잘 드러난 특징이다.
사실적이고 완전한 형태는 관객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나름의 독재적인 형식이다. 당시 스페인의 독재정치에 대한 저항으로 볼 수도 있다. 지상과 천상을 통합한 공간은 자유로움을 주며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기호화도 같은 역할을 한다. 최대한 단순하게 표현하고 관객의 상상력으로 채우길 바란 것이다.
지상과 천상을 합친 우주론적 공간은 ‘별’로도 이어진다. 이번 전시의 제목처럼 그의 작품에는 별이 많이 등장한다. 물감을 뿌린 자국으로 형상화한 별자리 같은 표현도 많이 나타난다. 별은 농사에서 중요하다. 농장에서 요양을 하며 농부들을 바라보면서 자란 환경이 그에게 자유로움과 자연친화적인 특징에 영향을 주었다.
우주론적 사고와 자유로움: 여인과 새의 의미
내가 ‘여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피조물로서 여자가 아니라 우주를 말한다.
우주론적인 생각은 ‘여인’에도 드러난다. 그의 작품에는 여성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생물학적인 여성이 아닌 우주를 상징한다고 한다. 여성은 하나의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할 수 있는 존재이다. 하나의 삶을 만들어내는 존재로 우주와 비슷하다. 그의 이런 생각은 한 피사체의 여성이 아닌 작품 전체의 여성으로 나타나며 즉, 자유롭고 경이로운 우주를 나타낸 것이다. 자유로운 공간에서의 여성은 그 자체로 경이로우며 별과 함께 그 의미를 강화한다. 그래서 작품에서 인물로 보이는 피사체를 찾기 어려우며 찾는 거 역시 관객의 역할이다.
자유로움의 상징은 ‘별’뿐만 아니라 ‘새’에서 명확하게 담겨있다. 그가 병에 걸려 아파했을 당시 땅과 하늘을 마음껏 돌아다니는 새를 보고 자유를 느꼈던 그는 새를 작품에 담기 시작했다. 마침 2차세계대전과 스페인의 독재정치로 인간의 악랄함과 독재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고 있던 그는 새로 자유로움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새의 형상은 기호로 단순화되어 표현되고 하나의 획으로도 표현되기도 한다. 여인, 별과 함께 3가지 상징들이 모두 합쳐져 아무런 억압과 관심이 없던 자연의 자유로움을 만든다.
회화의 암살(Assassination of Painting)
그의 작품을 보면 초현실주의 작품으로만 보이지만 그 안에 다양한 기법이 들어가 있다. 앞서 말한 별을 표현할 때 기존의 그리는 방식이 아닌 물감을 뿌리는 방법을 미국에서 배워와 쓰기도 했으며 중국의 서예화를 배워 동양화의 붓 끝처리를 작품에 녹이기도 했다. 손바닥과 발바닥에 물감을 뭍이고 찍거나 걷는 등 다양한 기법을 작품에 사용했다. 그의 이런 면은 매우 도전적이며 그림에 있어 매우 열정적이었던 모습을 보여준다. 작품들이 비슷한 것 같지만 기호화한 정도, 다른 기법의 적용 등에 따라 그림의 변화 과정을 보는 것도 전시의 또 다른 재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모든 기법을 그만두고 그만의 그림을 그려가겠다는 ‘회화의 암살’을 선언한다. 이성이 중요시되던 그 당시, 이성이 전쟁에서 암살 무기로 사용되는 걸 지켜본 후 감성과 무의식을 강조했던 그는 전통적인 회화 방식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자신만의 화풍을 정의하기 시작했으며 온전한 그만의 특징을 명확하게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시장에서 값싸게 구매한 그림 위에 그만의 스타일로 그림을 덧칠하며 ‘회화의 암살’을 표현하기도 했다. 가로의 그림을 세로로 돌려 놓으며 기존의 당연한 것을 파괴했다.
이번 전시를 보고 느꼈던 건 그가 예술에 있어 진심이었다는 것이다. 90살에 가까워 죽음을 앞뒀을 때까지 그는 그림을 계속 그렸다고 한다. 자연친화적이고 자유를 꿈꿨던 그는 죽음은 자연에 돌아가는 과정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스타일을 끊임없이 바꿔가고 새로운 스타일을 도전하고 시대에 대한 저항을 표현하면서 지속적인 도전을 했다. 그가 회계를 그만두고 다시 붓을 쥔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붓을 끝까지 잡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박성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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