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의 실패한 여정에 관한 기록 [여행]

글 입력 2022.05.25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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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지독한 권태감에 시달렸다.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면서도, 몇 주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극심한 무력감이 나를 압도했다. 써야지, 써야지. 우물의 가장 밑에서 물을 길어 올리듯 의지를 힘겹게 끌어올렸다. 겨우 의자를 당겨 자세를 고쳐 잡았지만, 이상하게도 금세 힘에 부쳤다. 내게 이런 현상은 환절기면 찾아오는 감기처럼 자연스럽다. 단지 이번에는 조금 오래 이어지는 것뿐이다. 다만 몇 주 전과 달라진 점이 있긴 했다. 그때의 나는 왜 안 되냐며 스스로 다그치고 억지로 글을 놓지 않았지만 지금은 힘들면 그냥 눕는다. 봄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만큼 극심한 춘곤증에 시달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려나 하고 넘긴다. 이건 여유가 생겼다고 봐야 할까, 아니면 체념한 상태라 봐야 할까.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고 잘 모르겠다.

 

침대에 누워 하염없이 침잠하다가도 어떤 소재로 쓸지 구상하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막막한 심정으로 책장 앞으로 갔다. 눈에 쌍심지를 켜고 책 제목들을 훑는데, 문득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이라는 책 하나를 발견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는 가장 친했던 친구 Y에게 언젠가 같이 해외여행을 가자는 약속을 했다. 이 책은 Y가 그 약속을 떠올리며 내게 생일선물로 준 거였다. Y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뒤로 보기 좋게 잊고 있다가, 십 년도 더 지난 지금에서야 책을 펼쳤다.

 

책의 프롤로그를 읽자 작가에게서 내가 보였다. 나와 닮은 누군가의 진솔한 이야기를 보면서 감정적으로 동했다.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방학만 되면 불쑥 해외로 떠났다고 한 것을 보면서는 나 역시 그 흐름에 올라타고 싶다는 욕구가 차올랐다. 글을 쓰는 게 괴롭고 소재가 쉽사리 떠오르지 않을 때마다 줄곧 떠나고 싶었지만, 눈앞에 닥친 일들이 있다는 생각에 뒤로 미뤄왔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을 실행해야 할 타이밍인지도 몰랐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영감을 얻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지금 도망칠 수 있는 곳이 어디 있을까. 그때 번뜩이는 생각과 함께 H에게 문자를 보냈다.

 

"뜬금없을 수도 있는데, 같이 등산 갈래?"

 

H는 난데없는 내 제안에 웃음을 터뜨렸다. 평소 친구들에게 혹시라도 등산 갈 일 있으면 나를 빼고 가라고 할 정도로, 등산이라면 치를 떠는 나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네. 나 자신조차 이런 내가 낯설어서 퍽 웃겼는데 H도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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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르기 전, 나는 무엇이든 느끼고 그걸 글로 옮길 수 있게 되리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비록 해외여행과 가까운 산으로 가는 등산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고 해도 말이다. 속으로 정인의 '오르막길'이라는 노래를 여러 번 재생시키기도 했다. 가사에서처럼 등산하는 중에 힘들고 고돼도 우리는 손을 놓치지 않으면서, 또 서로의 속도에 맞춰주고 의지하면서 정상에 당도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도 정상까지 오니까 좋다, 그치. 이러한 말들만 주고받는 훈훈한 상황이 연출될 거 같았다. 평소 감동적인 말들을 불쑥 던지곤 하는 H가 이번에도 명언들을 쏟아내리라 믿었다. 나는 거기서 얻은 감상을 좋게 포장해, 그 과정을 글쓰기와도 엮어서 교훈적이고도 아름다운 글을 완성할 수 있으리라 짐작했다.

 

그런데 산에 몇 발 내디딘 순간부터 급 후회가 몰려왔다. 몇 분째 계속 같은 풍경만이 이어지는데다, 당연히 정상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영감은커녕 당장 눈앞에 나무밖에 보이지 않는 이곳을 언제 올라가고 언제 내려갈지 모르겠다는 일차원적인 감정만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우리 사이에서는 그저 헉헉, 하는 숨소리만이 공명했다. 글 쓴답시고 몇 달 동안 운동도 미뤄뒀던 나였는데, 그래서인지 유독 숨이 찼다. 그 탓에 H가 손이라도 대면 아 더워, 하며 밀어냈다. 우리는 숨소리가 뒤섞여 분절된 문장을 힘겹게 내뱉으며 산을 올랐다. H가 말했다. "내가, 아빠랑은 몇 번 왔어도, 데이트로, 이런 데를, 올 줄은 몰랐어." 나는 나도 그렇다고 했다. H는 어리둥절해하며, 그런데 여기는 왜 왔냐고 물었다. 그러게. 왜 오자 했지? 잠깐 미쳤었나봐.

 

그때 갈림길이 나왔다. H는 잠시 고민하다 호기롭게 오른쪽 길로 향했다. 평소에 나는 그 어떤 길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H는 한 번 간 길도 곧잘 기억해내는 데다가, 한 번 스캔하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지리를 간파하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당연히도 그의 판단이 맞겠다 싶었다. H는 지금부터 평지와 내리막길, 오르막길이 번갈아 가며 등장할 것이라 말했다. "오, 여기는 산인데도 평지가 계속 나와서 좋다." 그 뒤에 우리는 아무런 굴곡 없이, 너무도 평화롭게 그 길을 그대로 타고 내려와 마을 밑에 당도했다. 응? 이게 맞나? 그제야 생각해보니 뭔가 잘못됐다. 산인데 평지만 있다니.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어리둥절해하는 우리 둘 사이에선 정적이 흘렀다. "... 아무래도 아까 왼쪽이 맞았던 것 같아." H는 가족들과 몇 번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생각 없이 그림자처럼 따랐기에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았단다. 어쩐지 옆에서 까마귀가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까악 까악

   

출발 전 초콜릿과 과자를 한 움큼씩 담아올 정도로 만반의 준비를 다 했었다. 고생한 H에게 내밀 생각이었지만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물론 산을 처음 오를 때는 힘겹긴 했지만 기실 내가 바랐던 건 그거였다. 고된 상황속에서 무언가를 얻어내는 것. 그런데 지금은 너무도 허무하게 끝이 나버린 거다. 결국 아쉬운대로 H가 아버지와 등산 올 때마다 갔다던 식당으로 향했다. H는 평소에 거기서 전이나 묵과 함께 막걸리를 마셨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눈을 반짝이곤 했기 때문이다. 한 입 먹는 순간 절로 감탄이 나왔다. 과연 H가 혀를 내두를 만한 맛이었다. 그래, 우리 사실 이거 먹으려고 여기 온 거였잖아. 나는 애써 그렇게 합리화했다.   

 

*

 

돌이켜보면 나는 여행을 할 때 계획대로 되는 때보다 그렇지 않은 때가 더 많았다. 재작년 겨울, 스트레스로 머릿속이 터질 것만 같았던 그때 불쑥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그런데 꼭 비행기가 아닌 KTX나 기차여야만 했다. 기차를 생각하면 설레고 벅찬 기억밖에 없어서였다. 태어나 처음 KTX를 탄 건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부산에서 콘서트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1열 중앙석을 잡았을 때였다. 이후 지하철 탈 일도 몇 번 있었는데, 전부 친구들과 음악 방송을 보러 간 거였다. 전적 대학을 그토록 싫어했음에도 기차를 타고 등하교할 때만큼은 썩 나쁘지 않았던 건, 그때의 향수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당시 당일치기를 계획한 데다가 티켓값이 상당하기도 했기에 멀리 나갈 수는 없었다. 대신 여러 번 방문한 바 있어 나름 익숙한 강릉행을 택했다.

 

그런데 강릉 여행은 아침부터 일진이 사나웠다. 전날 새벽까지 과제를 하며 잠이 든 탓에 원래 계획했던 시간보다 늦게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미련하다고 해야 할지, 성실하다고 해야 할지, 미련하게 성실하다고 해야 할지. 욕지거리가 올라오는 것을 삼키며 버스를 타러 달려 나갔지만,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물론 내 잘못이다. 그런데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첫 단추부터 잘못 채운 느낌이었다. 나는 분하면 불가항력적으로 눈물이 쏟아져 나온다. 그렇게 버스 정류장에 서서 한참을 울었다.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가 다음 표를 예매하려는데 이내, 나 같은 게 무슨 여행인가 싶어 방안에 틀어박혔다. 가족들은 내게 타박 섞인 독려를 쏟아부었다. 그렇게 나는 등 떠밀려 가장 가까운 시간의 표를 예매하고는 KTX에 올라탔다. 기차 안에서는 태블릿에 받아놓은 영화 <윤희에게>를 돌려 봤다. 비록 출발은 순탄하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어딘가로 떠난다고 생각하니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중간중간 KTX 밖으로 비치는 광경과 윤희에게 속 잔잔하고 담담한 감성과 잘 어울렸다.

 

KTX에서 내렸을 때, 제대로 된 여행이 시작될 줄 알았으나 나는 또 한 번 딜레마에 사로잡혔다. 당시 역 밖에서는 칼바람이 불어 단 한 걸음도 나가기 싫었다. 모두가 기차역을 떠났지만, 내내 머물러 있고 싶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나는 용기 내 역 밖으로 한 걸음을 뗐다. 계획해둔 순두부집으로 가기 위해선 어떤 버스를 타야 했기에, 앱 지도를 보며 열심히 정류장을 찾았다. 그런데 웬걸 아무리 걸어도 정류장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 길이 그 길인 것 같았다. 기분 탓인지도 모르지만, 어플에서 가리키는 길의 양상도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해당 위치에서는 앱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천장이 뚫려 있는 미로에 갇힌 기분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농락하기 위해 뫼비우스의 띠를 설치해놓은 걸지도 몰랐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을 걸었을까, 뱃속에서는 뱃고동이 쳤다. 서러움과 분노가 뒤섞여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됐다. 나는 행인을 붙잡고 다소 거칠어진 말투로 물었다. "도대체 ㅇㅇ 정류장이 어디인가요." 

 

그러나 행인이 알려준 대로 향했음에도 해당 정류장은 곧잘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잘못 알려준 건지, 내가 사리 분별을 못 하는 건지, 눈앞이 흐려져 시야가 좁아진 건지 알 수 없었다. 문득 옆을 보자 어떤 토스트집이 나왔다. 우선 주린 배를 채워야지 싶었다. 메뉴판을 보자 스테이크 토스트가 4000원으로 가장 비쌌다. 나는 그걸 주문했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서 4000원짜리 스테이크 토스트를 먹자니 속에서 다시금 울분이 차올랐다. 토스트집, 우리 집 옆에도 있는 건데. 눈물이 절로 흘렀다. 친구들과 강릉에 몇 번 왔을 때는 길이 눈에 선할 정도였는데 혼자서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에서 작가가 장녀 특유의 책임감 때문인지 남한테 기대기가 어렵다고 한 걸 보며 내 이야기인가 했는데, 취소다. 나는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하지 못 하는 사람이었다.

 

사기가 떨어진 나는 책방에나 들러서 책을 구경했다. 네모반듯하게 각져 있는 것들로 이루어진 익숙한 장소를 보니 어쩐지 심신이 안정됐다.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큰 결심과 함께 바다로 향했다. 그런데 도착하고보니 얼어붙을 것 같이 추웠다. 감격이고 뭐고 할 정신도 없었다. 결국 서둘러 사진을 찍고는 걸음을 재촉해 근처 카페로 들어가 버렸다. 하긴 친구들과 겨울 바다를 보러 갔을 때도 너무 추우면 도저히 못 버티겠다며 근처 화장실에 들어가는 나인데, 혼자 있을 때는 오죽할까. 카페에서 빵과 커피를 마시며 진열돼 있던 책 하나를 꺼내어 들었다. 그런데 심신이 지쳐 있던 터라 금세 질려 덮었다. 생각을 비우고자 떠난 여행이었지만 생각들을 주렁주렁 단 채로 쓸쓸히 집에 돌아왔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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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1년 전쯤, 어떤 선배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구미에서 밤새 혼자 호텔에 머물렀던 기억도 떠오른다. 그때는 하필 혼자 묵고 있는 투숙객의 객실로 누군가 무단 침입해 납치 감금을 시도했는데, 그가 기적적으로 탈출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였다. 혼자 호텔에 있으려니 그 사건에 대한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괜히 송골이 묘연해지는 기분에 커튼을 전부 쳤다. 호텔 방문은 출입문과 중문 두 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 들어온다고 해도 중문 뒤에 서 있으면 바로 눈치채지 못할 것 같았다. 바깥에서 사람들이 호텔 문을 여닫는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랐다. 밤새 틀어놓을 생각으로 텔레비전을 켰다. 그렇게라도 사람 목소리를 들어야 기나긴 밤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무 크면 혹여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갈까 염려돼 중간 정도의 크기로 조정했다. 

 

부풀어만 가는 걱정을 가득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 만약 이 상황에 정말 침입자가 들어오면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 머릿속에서는 거기에 대한 시나리오를 계속해서 굴리고 있었다. 우선 신고하기엔 핸드폰이 멀었다. 게다가 신고를 하다가 침입자가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물으면 당황해 얼어붙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우선 신고는 보류하고 당장 살길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물론 내가 어떤 식으로 하든 범죄자를 막을 길은 없다. 그런데 만약 침입자를 보고 겁을 먹으면 상대 쪽에서 더욱더 거세게 공격해오진 않을까 싶었다. 어쩐지 태연하게 대응해야만 할 것 같았다. 누군가 들어오면 선배 아니냐고, 아니면 선배의 지인인 거냐고 자연스럽게 물어볼 생각이었다. 돌연 그가 혹시 무기라도 들고 있으면 어떡하지? 의연하게 진짜 칼이냐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굴면 도리어 그쪽에서 당황하진 않을까. 상상이 끊임없이 이어지자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빠르게 뛰었다. 그런데 표정은 애써 평온한 것처럼 유지하려 애썼다.

 

쫓기듯 세안을 마친 뒤 침대로 간 나는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현재 어디에 있는지 행방을 적어뒀다. 물론 일상 이야기를 하는 척하며 보냈다. 걱정돼서 보내놓는 것이라는 뉘앙스로 연락을 취한다면, 혹여 침입자가 핸드폰을 몰래 봤을 때 내가 공포심으로 점철돼 있단 사실을 알아챌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이후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안한데 잠들기 전까지만 통화해주면 안 될까. 온갖 상상이 돼서 무섭다는 것을 핑계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붙잡았다. 아빠는 그럴 거면 여행을 왜 갔냐고 타박했다. 또 시작이네 또 시작이야. 엄마는 못 살겠다는 말을 남발했다. 나 자신도 답답했지만, 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니 전화를 끊지만 말아달라 부탁했다. 그때는 극도의 불안감에 잠식돼 앞뒤 구분이 되지 않았다.

 

돌연 공중파 채널로 맞춰놓았던 텔레비전에서 화면 조정 시간을 알리는 화면이 뜨면서 삐, 하는 소리가 들리자 화들짝 놀랐다. 수화기 너머에서 가족들은 혀를 끌끌 찼다. 나는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종일 선배와 돌아다니느라 고단해서 눈은 감기는데도 나는 쉽사리 잠들지 못 했다. 바깥에서는 천둥 번개가 쳤다. 눈을 감으면 침입한 누군가가 내 앞에 떡하니 서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펼쳐졌다. 그렇게 싸늘한 감각을 잠재우고자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 썼다가도, 이내 앞을 살필 수 없어 다시금 이불을 내리기를 반복했다.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 돌연 공포스러운 꿈과 함께 잠에서 벌떡 깼다. 가족들에게 걸었던 전화는 이미 끊겨 있었고, 텔레비전은 꺼져 있었다. 누가 끈 거지. 물론 호텔 내에서 자연스럽게 몇 시간이 지나면 꺼지는 걸지도 몰랐으나 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혹시 뒤 돌면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핸드폰으로 영상을 틀었다. 연예인들이 일렬로 서서 유머러스한 농담만 즐비하게 늘어놓는, 왁자지껄한 토크 예능 영상이었다. 나는 연예인들이 웃긴 이야기를 할 때마다 괜히 따라 웃었다. 그렇게 조금씩 긴장을 푼 뒤 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 다행이었다. 이후에도 졸린 눈을 억지로 들어 올리며 꾸역꾸역 영상을 시청했다. 언제 잠든 줄 모르게 잠들었다가 눈을 떴을 때는 아침이었다.

 

그렇게 도망치듯 천천히 조식을 먹고 방에 들어왔다. 서둘러 준비하고 겨우 짐을 챙겨 밖으로 나오자 햇빛이 강렬해 눈이 부셨다. 마침내 안도감이 들었다. 이게 뭔가 싶었다. 쉬러 내려왔는데 밤새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가 호텔을 나왔을 때 도리어 해방감이 들다니. 여행이 아니라 극기 훈련을 하고 돌아가는 꼴이었다. 물론 내 상상력이 자초한 거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내 여행은 늘 이런 식이었다. 더 최악인 건, 최근 핸드폰의 고장으로 근 2년간 저장돼 있던 약 5만 장의 사진이 전부 날아갔다는 거다. 그래서 그때를 추억할 만한 사진 한 장도 남아있지 않다. 이로써 정말 말 그대로, 실패한 여행기가 완벽하게 완성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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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렇게 머피의 법칙과도 같은 내 여행의 패턴이 현재의 등산에도 영향을 미친 셈이다. 그런데 한 가지 말하지 않은 게 있다. 등산을 후 밥을 먹고 다시금 산으로 향할 때의 이야기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다시금 산을 넘어야 했으나 이미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H와 나는 이대로 올라갔다가는 조난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결국 산을 오르기를 포기하고 빙빙 돌아서 집을 돌아가려 했다.

 

그때 우리는 뜻밖에도 한 카페를 발견했다. 몇 개월 뒤로 편지를 보낼 수 있는 우체통이 있는 곳이었다. 나는 옳다구나 싶은 생각으로 잽싸게 H를 끌어 당겼다. 그렇게 우리는 카페에 앉아 각자 쓰고 싶은 상대에게 편지를 썼다. 물론 둘 다 서로에게 쓰고 있지만 모르는 척하는, 속이는 사람만 있고 속는 사람은 없는 판이었다. 컴퓨터 자판에 익숙해져 있는 나는 도무지 종이에 바로 글을 못 쓰겠다 싶었다. 그래서 핸드폰 메모장에 글을 쓴 다음에 편지로 옮겨 담자 시간이 두 배로 걸렸다. 그런데도 H는 옆에서 보채지 않고 천천히 쓰라며, 여유롭게 기다렸다. 혹 내가 조바심을 느낄까 괜히 다른 일을 하는 척하면서였다. 

 

우리의 등산은 결국 정상 한 번 찍지 못한 채 허무하게 마무리됐다. 그런데 또 한 번 서로를 배려하고 기대며 무언가를 만들어가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후회가 되지는 않았다. 비록 어설프지만 특별한 추억 하나가 생긴 것 같았다. 여기 오길 잘했다, 그치? 우리는 서로 마음이 통하기라도 한 듯이 그런 말을 주고받았다. 어쩌면 조금 일찍 출발했더라면, 여유롭게 산을 올랐더라면, 갈림길에서 잘못 선택했을지라도 다시금 다른 길을 찾았더라면, 우리는 무사히 정상을 찍고 내려왔을 수도 있다. 그런데 등산에 실패했기에 우체통 앞에 마주앉아 6개월 뒤로 선물을 보내는 새로운 추억을 쌓게 된 것은 아니려나.

 

걸리버는 폭풍우를 만나 계획에도 없는 소인국에 당도했다. 앨리스는 호기심이 동해 숲속에 있는 굴로 들어갔다가 이상한 나라로 떨어졌다. 그런데 두 이야기 다 어떤 쪽으로든 크게 경험하고 종국에는 무언가를 얻거나 성장을 했다. 그들처럼 나 역시 소재와 영감을 찾아 떠난 등산이 실패로 끝나 허무함에 잠겨 있었지만, 어쨌거나 그 경험이 이 글이 됐다. 어떤 글은 정석적인 길이 아니라 이상한 구렁텅이로 빠지는 데서 시작하는 것 같다. 내 어설프고 서툰 여행기를 주변에 말하면, 너는 왜 항상 그런 일만 일어나냐며 다들 웃는다. 당시에는 답답하고 서러웠던 기억들인데 그걸 털어놓는 순간 전부 무용하지 않은 무언가가 되나보다. 정상을 찍는 일에 실패하고 나서 자괴감이 들었지만, 그걸 또다시 추억하고 있듯이. 어쩌면 다소 서툴고 이상할지라도, 이게 내가 삶을 여행하는 방식은 아닐까. 그런 점에서 꼭 실패라고만 칭할 수는 없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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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예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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