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돼지책'을 읽으면서 큰 ‘어른이’를 위한 가장 따뜻한 전시: 앤서니 브라운 원더랜드 뮤지엄 展 [전시]

글 입력 2022.05.16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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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브라운_공식 포스터.jpg

 

 

피곳 부인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벽난로 선반 위에 봉투가 하나 있었습니다.

피곳 씨는 그 봉투를 열어 보았습니다.

안에는 종이가 한 장 들어 있었습니다.

“너희들은 돼지야.”

 

- 앤서니 브라운, 『돼지책』 中

 

*

 

나는 앤서니 브라운의 따뜻한 책과 함께 컸다. 『돼지책』, 『우리 엄마』, 『우리는 친구』 등의 책을 읽으며 그의 작품 전반이 풍기는 따뜻한 분위기를 참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의 글과 그림은 주로 가족과 사랑을 다룬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가족의 역할을 일깨워주고, 궁극적으로 나의 성장을 함께할 존재는 가족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글과 그림을 통해 이렇게 따뜻한 메시지를 전달하기까지, 작품 이전의 앤서니 브라운을 만날 수 있는 ‘’앤서니 브라운 원더랜드 뮤지엄 展’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2022년 8월 31일까지 열린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기획된 전시인 듯하지만, 『돼지책』을 읽고 자란 세대라면 누구나 그 추억을 향유하며 관람할 수 있는 전시다.

 

전시에는 앤서니 브라운의 대표작 원화 200여점이 전시되었다. 그의 작품을 다채로운 관점에서 창의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미디어 아트도 여러 점 전시되었고, 놀이형 설치 작품 또한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총 12개의 섹션으로 이루어져 있다. 순서대로 <프롤로그>, <어니스트의 멋진 하루>, <가족>, <윌리>, <어린이 눈으로 본 세상>, <초현실주의와 셰이프게임>, <앤서니 브라운의 동반자, 한나 바르톨린>, <배경에 숨긴 디테일>, <고릴라와 꼬마곰>, <앤서니 브라운의 빌리지>, <셰이프게임>, <에필로그>이다.

 

이 글에서는 전시를 드러낼 수 있는 세 가지 키워드를 꼽아, 나름의 감상을 덧붙이려 한다. ‘가족과 사랑’, ‘윌리’, ‘숨 쉬는 디테일’이 바로 그 키워드이다.

 

 

 

가족과 사랑


My Mum 2005 @ Anthony Browne .jpg

My Mum, 2005, Anthony Browne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에서는 그가 가족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뭐든지 척척 해내는 우리 엄마와 나를 위해서라면 전력 질주를 하는 우리 아빠.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가족의 모습은 작가 본인의 가족 이야기이기도 하다.

 

앤서니 브라운이 10대 후반일 때 그의 아버지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는데, 책에 지속해서 등장하는 고릴라 캐릭터는 강하지만 동시에 자상하고 섬세한 성격이었던 그의 아버지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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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Girl, 2020, Anthony Browne

 

 

이번 전시에서는 <넌 나의 우주야> 신작이 아시아 최초로 공개된다.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애정 어린 시선이 그림에서도 충만하게 느껴진다. 그의 그림을 보며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딸에게 아버지는, 아버지에게 딸은 서로에게 세상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나아가, 형용할 수 없는 끈끈함으로 연결된 가족이라는 구성체는 세상이 아무리 가혹하고 모질지라도 언제나 따뜻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된다. 관객은 그림 앞에서 저마다 그리는 가족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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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y the Wimp, 1984, Anthony Browne

 

 

온화하고 사려 깊은 침팬지 윌리는 앤서니 브라운을 상징하는 캐릭터이다. 실제로 작가의 유년기 분신과도 같은 존재다. 윌리는 길에서 걸을 때 자기 발에 개미가 밟힐 것도 걱정할 만큼 세심하고, 한편으론 소심한 침팬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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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y the Wimp, 1984, Anthony Browne

 

 

고민에 직면하고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윌리의 모습, 소심하지만 다양한 도전을 하며 세상과 마주하는 윌리의 모습은 보는 이에게 용기를 준다. 앤서니 브라운은 윌리라는캐릭터에 그 자신의 유년 시절을 투영해서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어릴 땐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누구나 긴장하고 누구나 힘들 수 있다고 말이다.

 

 

 

숨 쉬는 디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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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ggybook, 1986, Anthony Browne

 

 

그의 작품에는 디테일이 살아 숨 쉰다. 배경 하나 허투루 지나가지 않는다. 때로는 배경에 작품 전체의 플롯을 암시하는 작은 디테일을 숨겨두기도 한다. 그림을 꼼꼼히 확인하며, 그 숨겨진 디테일을 찾는 것이 작품을 감상하는 또 하나의 재미 요소가 되었다.

 

사진은 『돼지책』 삽화 중 일부이다. 모든 가사 노동을 짊어지던 엄마가 가출하자, 아빠와 두 아들은 돼지로 변한다. 이때,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창밖의 나무 그림자, 벽지의 패턴, 옷의 장신구 등 배경의 세밀한 디테일이 모두 돼지로 바뀌어 있다.

 

그의 작품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자세히 보면 볼수록 새로운 요소를 발견해낼 수 있고, 작품 전체의 흐름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는 구조. 적극적으로 관찰하게 하고, 상상력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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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ough the Magic Mirror, 1976, Anthony Brow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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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ough the Magic Mirror, 1976, Anthony Browne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은 르네 마그리트, 조르조 데 키리코, 살바도르 달리와 같은 초현실주의 거장들의 작품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서는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작품을 오마주한 요소가 드러난다.

 

초현실주의 작품은 때론 이해하기 어렵지만,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은 이해하기에 전혀 어렵지 않다. 초현실적인 요소들은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프레임을 구성하는 요소로써 자리 잡는다.

 

 

 

어른이를 위한 가장 따뜻한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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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는 어린이를 위해 기획된 듯하지만, 작품은 어른의 마음을 움직이기에도 충분했다. 역시 그림책만의 매력일까? 어린 시절 익숙했던 몽글몽글한 그림을 다시 마주한 바로 그 순간, 마음이 따뜻하게 채워졌다.

 

앤서니 브라운 특유의 다채로운 색감과 넘치는 디테일은 작품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돼지책』을 읽으면서 자란 ‘어른이’라면, 잠시 마음이 따사롭게 어려질 수 있는 이 전시에 한 번 들려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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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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