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당신, 혼자 지내는 거 안 어울려요. [영화]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리뷰
글 입력 2022.07.10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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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산다>와 같은 예능이 등장한 지는 이미 오래, 개인주의 성향이 짙어진 사회다. 혼코노, 혼밥, 혼영 등 신조어의 다수 출현이 표방하듯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게 일종의 트렌드로 자리할 정도다. 누가 뭐라고 하든 ‘마이웨이’ 반응으로 내 갈 길을 가고 소신 발언을 하는 것을 멋있다고 바라보는 시선들이 상당해지기도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진아는 이러한 사회에 최적화된 인물이다. 혼자 사는 일에 거리낌 없는 것은 물론, 누군가와 함께 어울리는 일을 필사적으로 거부할 정도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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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가 도래한 이후 개인이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


사회생활을 할 땐 하릴없이 자신을 억지로 그 안에 끼워서 맞추는 경우가 잦다. 상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긍정만을 하거나 함구하는 게 최선일 때도 있다. 그러나 콜센터 직원인 진아는 상사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따위 추호도 없다. 직장 상사가 “다음 주에 신입 하나 받자”라고 제안하자 고민도 없이 무표정하게 ‘싫어요’라고 답할 정도니까. 상사는 신입 교육을 하는 동안에는 콜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으로 진아를 설득해보지만, 진아는 오히려 콜 받는 게 더 편하다고 응수할 뿐이다.
 
진아가 이렇게 사람들과의 소통에는 인색해도 매월 1위를 점할 정도로 능력 있는 직원이라는 사실에 주목해본다. 일의 특성상 조금이라도 사적인 생각이 개입되거나 감정이 불쑥 고개를 들면 제동이 걸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람들을 단절하면서 각종 사사로운 감정에 시달리지 않는 진아는 일을 우수하게 해내기에 제격이었을 것이다.
 
이는 신자유주의 사상이 지배적인 사회적 맥락과도 결부시킬 수 있다. 신자유주의 이후, 더 빨리 더 많은 것을 생산해야 한다는 압박에 따라 고도의 능력을 탑재하는 것을 최우선의 가치로 보는 풍토가 생겨났다.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각을 비우고, 감정을 지워야 한다. 그래야만 기계처럼 일해낼 수 있고 이 사회의 규격에 맞아떨어져 살아남을 수 있으므로. 잠시 진아가 콜센터에서 우수사원으로 뽑혔을 때 상사가 했던 말을 상기해본다.
 
“저번 달 우수사원도 1등도 진아 씨네? 다들 이거 보면서 뭐 느끼는 거 없어? 모친상 치른다고 이틀이나 빠진 사람이 1등이잖아.”
 
‘모친상을 치렀음에도’ 기어코 1등의 자리에 오른 진아를 언급하며 직원들을 타박하는 상사는 신자유주의가 지배적인 사회를 적극적으로 표상한다. 모친상이라는 상실과 극심한 감정적 고통 앞에서 사람은 무너지게 마련이다. 그 와중에 1등을 차지할 정도면 마음을 추스를 시간조차 없었을 것이다. 사실 일을 열심히 해 돈을 많이 버는 건 궁극적으로 주체인 우리가 잘 먹고 잘살기 위함이다. 그런데 그 목표를 일궈내기 위해선 개인의 감정은 배제되면서 끊임없이 몸이 갈리고 다쳐야만 얻을 수 있다는 점은 상당히 모순적이다. 그것을 일종의 미덕인 것처럼 언급한 상부의 언사는 또 어떠한가. 이에 관해선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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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대물림되는 무관심 속에서


자신을 고립시키는 진아와 달리, 진아의 밑으로 들어온 신입사원 수진은 어떻게든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수진은 한창 졸다가도 점심시간이란 말에 벌떡 일어나 필사적으로 겸상할 동료를 찾아나서는가 하면, 진아로부터 우회적으로 거절 멘트가 돌아왔을 때조차 기어이 함께하려 한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에 소속되려는 수진의 노력은 자꾸만 좌절된다. 진아에게 건넨 프로폴리스 스프레이는 잘못 분사되어 분위기는 싸해지고, 첫 콜을 받았을 때는 수화기 너머로부터 욕설이 날아오기 일쑤다. 수진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며 억울함을 호소해보지만, 진아는 그저 고객에게 사과할 것을 부추길 뿐이다. 말하자면 수진은 부적응자인 셈이다.

이러한 수진은 회사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대뜸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선배님 제가 잘할게요." 열정이 불타오르는 똘망똘망한 눈빛을 탑재한 채였다. 그 말에 진아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도리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넘겼다. 왜일까. 진아는 이 사회에 찌들어져 있을 만큼 파이팅 인사가 이질적으로 느껴졌을 수도, 대꾸할 말이 없었을 수도 있다. 다만 확실한 건 앞서 말했듯 이 세계에서 "잘한다"라는 것은 나를 지우고, 내 감정과 생각을 지우고 기계화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진아가 수진의 말에 반색하지 못한 것은, 은연중에 드는 회의적 시각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부적응자가 생겨나는 이유에는 뭐가 있을까. 일이 힘들어서일 수도, 직장 내 동료와의 사이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다양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그런데도 모두가 눈 가리고 아웅 하듯 문제를 함구한다는 사실'이다. 사수들은 제대로 신경을 써주지 않으면서 신입이 잘하기를 바라고, 신입은 불만을 쉬이 얘기하기 어렵다. 그 안에서 겨우 버틴 신입은 또 다른 신입에 대물림하는 패착을 범한다. 영화에서 상부는 직원들이 자꾸 일을 관두는 이유를 두고 ‘신입 때 교육을 잘 못 받아서’라고 지적했다. 이는 원인이 총체적으로 촘촘하게 엮여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개인에게만 책임을 돌렸다는 점에서 문제다.
 
그런 점에서 앞서 진아가 수진에게 미묘한 표정을 지은 것은 혹 수진에게서 자신의 과거 모습을 발견하고 기시감을 느낀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언젠가 상사는 진아에게 수진이 주눅 든 거 안 보이냐며, 일뿐만 아니라 멘탈도 좀 챙겨주라고 타박했다. 이때 진아가 한 말이 인상 깊다. “팀장님이 제 사수일 때랑 똑같이 하고 있는 건데요.” 진아는 처음부터 고도의 능력을 탑재한 우수사원이었던 것이 아니라 이 생존 서바이벌에서 피 튀기는 전쟁을 치러온 개인이다. 그리고 이렇게 잔인한 메커니즘이 지배적인 공간 안에서 수진은, 말하자면 진아의 과거다. 공교롭게도 둘은 같은 '진' 자 돌림을 사용한다. 물론 이렇게 사소한 포인트를 주제 의식과 결부시키는 건 비약일지라도, 어쨌거나 그들이 비슷한 궤적을 밟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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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함께 한다는 것


한편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회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던 진아가 감정적으로 무너지는 순간이 등장한다. 진아는 내내 본가에 설치한 CCTV를 통해 아빠가 생활하는 모습을 지켜봐 왔는데, 아빠가 엄마의 죽음을 추모한다는 명목으로 집에 사람들을 한가득 불러놓고 친목을 쌓는 광경을 본 탓이다. 진아의 아빠는 바람을 피우고 집을 나간 것도 모자라, 엄마가 사망 이후엔 재산을 당신에게 양도하라고 한 작자다. 이러한 전적을 가진 아빠였기에, 그의 만행이 더욱 끔찍하게 다가왔으리라. 진아는 그간 단 한 번의 흔들림 없이 최고의 실적만을 쌓아왔다. 그러나 아빠 일로 타격을 입자, 밥조차 넘기지 못하고 극심한 공황에 시달린다. 
 
그런데 곧 진아가 자신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깨닫고 변화하는 계기가 등장한다. 옆집으로 이사 온 성훈이 누군가를 추모하는 광경을 목도한 이후다. 추모식은 성훈이 이사 오기 전 원래 주인이었던, '자살로 생을 마감한 남자'를 위한 거였다. 성훈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남자에게 경건하고 정중하게 인사를 건넨다. 이는 아내의 추모식을 동호회나 사교 목적으로 이용한 아빠의 만행과 상반되는 태도다. 나아가 성훈은 죽은 남자와 대화했다는, 어쩌면 황당무계할지도 모르는 진아의 발언을 믿기도 했다. 성훈의 행동을 경유해 진아는 깨닫는다. 자신은 혼자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허울뿐인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아 의도치 않게 혼자가 된 거라는 사실을. 이에 진아는 불필요한 관계를 단호히 정리한다.
 
“아버지. 아버지 집 거실에 홈 캠이 있어요. 원래는 엄마 혼자 있을 때 보려고 달아놓은 건데 그걸로 아버지 집 거실 볼 수 있어요. 그걸로 자주 아버지 들여다볼게요. 딱 그렇게까지만 지내요, 우리.”
 
그간 진아는 사람들과 부딪치기 싫어, 텔레비전 화면을 거쳐서만 사람들을 바라와왔다. 그런데 이제는 아빠가 화면 속에 갇힌 대상이 됐다. 티브이는 내가 원할 때 보고 원치 않을 때 안 볼 수 있는 수단이다. 그러한 화면 속에 아빠를 가둔 것은 자신과 무관한 대상으로서 거리를 두겠다는 선언이다. 이후 진아는 도리어 심적으로 편안하고 충만해진다. 그동안 밥을 먹을 때든, 길을 걸을 때든 늘 영상을 틀거나 텔레비전을 틀어놓은 상태로 지내왔는데 그제야 처음으로 텔레비전을 끈 채 잠들 수 있게 된 데서 그렇다. 혼자 있으면 여러 생각으로 머릿속에 잡음이 껴서 다른 소리를 통해 잠재워 왔으나 이제는 다른 수단 없이 편히 잠들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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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건네다


한편 성훈의 추모식 이후 진아는 자신이 놓친 게 무엇인지를 깨닫기도 한다. 그간 힘들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회피하기만 했을 뿐, 누군가를 제대로 마주하거나 작별 인사조차 건네지 못 해왔다는 사실이었다. 그제야 진아는, 언젠가부터 콜센터에 출근하지 않는 수진에게 자발적으로 전화를 건다. 진아는 본인이 전화를 걸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망설인다. 그러나 이내 이렇게 덧붙인다.
 
"사실 저도 혼자 밥 못 먹는 거 같아요. 혼자 잠도 못 자고, 버스도 못 타고, 혼자 담배도 못 피우고, 사실 저 혼자 아무것도 못 하는 거 같아요. 그냥 그런 척하는 것뿐이지... 그냥 저는 수진 씨에게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하고 싶어요. 잘 가요, 수진 씨. 만나서 반가웠어요. 못 챙겨줘서 미안해요."  
 
수화기 너머에서 수진은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진아의 진심이 전도됐기 때문일 것이다. 진아는 그간 미뤄왔던 엄마를 향한 애도도 행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엄마의 핸드폰'이라는 상징을 통해 드러나는 부분이다. 엄마의 죽음 이후 아빠는 엄마의 핸드폰을 사용해 진아에게 전화를 걸곤 했는데, 진아는 그걸 못마땅히 여기면서도 어떠한 시도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일련의 사건을 거친 뒤에야 핸드폰에 저장된 엄마라는 이름을 지우고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바꿔놓는 데 성공한다. 더는 엄마의 죽음을 회피하고 묻어두는 게 아니라 정면 마주하고 받아들이겠다는 뜻일 것이다. 어쩌면 수진에게 건넨 인사말들은 사실 엄마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들이 아닐까 싶다. 바쁘게 현실을 살아내느라 꾹꾹 눌러삼켰던 작별인사 말이다. 엄마, 잘 가요.

이후 진아는 휴직계를 낸 뒤 상사에게, 정리되면 밥 한번 먹자는 말을 건넨다. 진심이든 아니든 필요한 말 외엔 하지 않았던 진아가 빈말을 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변화다. 그러니까 더는 감정을 마주하는 일을 미루지 않고 오늘을 살아내겠다는 뜻이 아닐까. 휴직하는 것 역시 일에 압도되어 없어지다시피 했던 자신과 생활과 삶을 되찾겠다는 다짐은 아닐까. 아침이 되어 블라인드를 치자, 그제야 늘 어둡던 집안으로 빛이 새어 들어온다. 비로소 혼자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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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거 안 어울리세요"


진아는 내내 혼자가 편하다며, 아무렇지 않은 척 두꺼운 가면을 쓰고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운 채 주변 이들을 마주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야 자신의 진짜 속내를 들여다봤다. 그리고 사실 자신은 온기가 필요하단 것을 알게됐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부유했다. 과연 사람은 세상을 온전히 혼자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  
 
동시에 어떤 희곡이 떠오르기도 했다. 201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서 당선된 『비듬』이라는 희곡이었다. 잠시 희곡의 줄거리를 소개하고 싶다. 『비듬』의 주인공 ‘용식’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 자체를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 자신을 방에 고립시키면서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한다. 그렇게 몇 년 동안 홀로 지내다 보니 머리에 비듬이 너무 많이 생겨서 하릴없이 미용실로 향한다. 용식은 미용실에서 한 가지 사건을 겪는다. 어떤 낙천적인 손님과 가치관 대립으로 싸우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 돌연 상대의 손길이 용식의 손을 스친다. 옆 손님은 이상한 사람이라며 신경질을 내며 밖을 나간다. 그러나 용식은 울컥 눈물을 흘리고 만다. 그 잠깐의 손길이 실로 오랜만에 닿는 사람의 체온이라서, 그게 너무도 따뜻해서였다. "혼자 사는 거 안 어울리세요" 미용사는 그를 보며 말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진아에게서 용식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물론 혼자가 되기를 자의로 택한 이도 있겠지만, 진아와 같이 고립된 이들 역시 적지 않으리라 짐작한다. 철저히 혼자 감정을 절제해야 일을 제대로 해나갈 수 있는 잔인한 구조 속에서, 불가피하게 그런 삶을 영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 내에서 히키코모리였던 옆집 남자가 죽은 원인은 관심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었듯, 진정으로 혼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누군가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함께 하는 과정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소외시키지 않고, 변방으로 치부하지 않는 데서 변화는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글 제목은 201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서 당선된 희곡 『비듬』의 대사를 변주하여 차용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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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예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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