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상의 모든 자라지 못한 아이들에게 [드라마/예능]

자라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글 입력 2022.05.05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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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일.

 

이날만큼은 모든 아이들이 한껏 행복해야 한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놀이동산에 가고, 맛있는 것을 먹고, 선물을 가득 끌어안은 채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해야 한다. 5월 5일이 아니더라도, 모든 아이들은 잘 자라기 위해 행복이라는 감정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누려야 할 감정이 행복이 아닌, 불행인 경우가 있다. 과거부터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는 범죄 중 하나가 바로 아동학대이다. 불과 2년 전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가 부모의 학대로 숨졌다. 이 사건은 모든 국민들의 공분을 샀으며, 이에 따라 아동학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고조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아동학대 사건은 끊이질 않았다. 심지어 매년 증가하고 있다.


꾸준히 늘어가는 아동학대 속에서 아이들은 자라났다. 이전에 학대받던 아이들은 몸이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몸만 자랐을 뿐. 고통을 받던 아이는 여전히 커다란 몸 안에 웅크려 울고 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지는 아동학대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 드라마와 같은 미디어에서 자주 비치는 주제는 아니다. 그 이야기 깊고, 어둡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에 꼭 필요한 이야기이기에 이런 주제를 갖고 있는 미디어가 많아지고 있다. 이제 이야기할 드라마는 학대받는 아이들과 학대받았던 어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하는 자라지 못한 아이. 붉은 달 푸른 해의 이야기를 하며, 그 중심에 있는 '은호'라는 인물을 이야기하려 한다.



*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붉은 달 푸른 해 - 붉은 달이 비추는 낮, 푸른 해가 비추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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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부터 2019년에 방송된 붉은 달 푸른 해는 차우경(김선아)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남편과 배 속의 아이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우경은 도로로 뛰어든 아이를 피하지 못하고 사고를 내면서 삶이 점점 무너진다.

 

한편, 드라마에서는 커다란 사건 하나가 이어지는데, 바로 아이들을 학대하는 어른들의 죽음이다. 자식을 학대해서 살해한 박지혜의 죽음을 시작으로 아이들을 학대한 어른들이 잔혹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그리고 시신에는 한 편의 시가 놓여 있다. 우경은 이런 미스테리한 사건을 형사인 강지헌(이이경)과 함께 수사하게 되고, 학대당하는 아이들과 학대하는 어른들 그리고 과거 학대의 기억과 마주하게 된다.

 

드라마는 학대를 하는 어른들의 죽음을 보여주지만, 그에 대해 통쾌함이라는 여지를 주지는 않는다. 앞서 박지혜를 살해했던 의사는 유서를 남기며 자살을 선택한다. 그러던 중 이 의사와 관련된 '붉은 울음'이라는 용의자가 발견되는데, 학대하는 어른들을 살해하는 주된 축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지헌은 붉은 울음의 존재를 쫓으며 인물들의 관계를 넓혀 나가게 된다.

 

이 드라마에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현재의 아동학대를 다루고 있지만, 몇몇 어른들 또한 과거 아동학대의 피해자였다는 것이다. 먼저 우경의 경우, 도로로 뛰어든 아이를 피하지 못하며 난 사고에서 아이가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차로 친 아이는 남자아이였다. 동료 정신과 의사의 도움으로 그 여자아이는 남자아이의 동생이라고 판단하게 되고, 우경은 그 아이를 찾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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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여자아이는 남자아이의 동생도, 실존하는 인물도 아니었다. 바로, 우경의 환시였던 것. 이 환시는 우경의 과거에서 시작하게 된다. 우경과 우경의 동생 세경은 새엄마를 맞이하게 된다. 어느 날 새엄마는 세경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온몸에 멍이 들 정도로 학대했고,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세경은 그로 인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본 우경은 기억을 잃었지만, 무의식 속에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세경이 계속 존재하게 됐던 것이다.

 

직접 폭력이 노출됐던 아이가 아니더라도 아동학대의 기억은 평생 사람을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수십 년이 지났을 세경의 모습은 여전히 우경의 무의식 속에 남아 있다. 또한, 드라마에 나오는 다른 인물인 전수영(남규리)은 어릴 적 오빠에게 폭행당하며 살았다. 하지만 그녀의 엄마는 폭행 사실을 알면서도 조용히 하라며 방관했다. 이 과거는 과거에서 멈추지 않고 현재까지 이어진다. 그녀가 자라 경찰이 되었어도 그녀의 오빠 앞에서는 입을 꾹 막은 채 폭행에 노출되는 것이다.

 

이처럼 붉은 달 푸른 해는 현재의 아동학대를 보여주며, 과거 아동학대의 흔적이 현재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리고 우경과 수영에 더불어 이를 입체감 있게 그려내는 인물이 바로 은호이다.

 

 

 

자라지 못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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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형과 함께 등대에 버려진 은호(차학연)는 한울이라는 보육원으로 가게 된다. 그러나 입양을 가게 된 형과 다르게 은호는 보육원에 남는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동학대의 그림자가 드리우게 됐다.

 

은호를 학대했던 것은 다름 아닌 한울 보육원의 원장이었다. 그가 은호에게 가했던 폭력은 언어적, 신체적, 이루 말할 수 없는 모든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렇게 자란 은호는 어릴 때부터 갖고 있었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울에서 일하며, 원장이 시키는 모든 것을 했다. 그리고 많이 늙고, 몸이 약해진 원장은 여전히 공포의 대상이었다.

 

과거부터 이어지던 신체적 폭행이 커서도 지속됐다. 원장은 지팡이와 장총으로 때렸고, 원장의 아들인 부원장도 피가 나도록 때렸다. 그럼에도 은호는 보육원에서 일하는 것에 만족했다. 밝게 웃으며 뛰어노는 아이들이 그를 행복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은호는 아이들의 행복을 지켜주고 싶었다. 거기에는 자신의 어릴 적 불행함이 어느 정도 투영되어 있을 것이다. 학대를 하는 어른들에 대한 분노. 그 분노는 아동학대의 가해자에게로 향했다.

 

붉은 울음이 바로 은호였다. 시간이 지나 재회한 형이 함께 살인을 도모했지만, 은호는 직접 어른들을 죽였다. 그렇게 많은 가해자를 죽였음에도 정작 은호는 자신을 학대했던 원장에게 손을 대지 못했다. 몸이 이렇게 자라고, 힘이 이렇게 세졌는데도 대항하지 못했다는 말처럼 어릴 때부터 이어져 온 학대의 그림자는 늘 은호를 따라다녔다.

 

은호는 자라지 못한 아이를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물론 몸은 자랐지만, 그의 모든 것은 학대에 시달리던 어린 시절에 멈춰 있었다. 특히나 차학연 배우가 그려내는 은호가 그랬다. 커다란 몸과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 놀아줄 수 있는 힘을 가졌음에도 어른을 보면 몸을 굳히고 덜덜 떨었다. 사람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항상 주눅 들어 있는 모습은 어릴 적 그 또래의 아이들과 있을 때만 밝은 기운을 찾았다. 여린 음성에서 나오는 어른스럽지 않은 말투가 자라지 못한 아이를 그려냈다.

 

이런 은호의 살인도 드라마에서는 경쾌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우경도 아동학대의 피해자였고, 수영도 아동학대의 피해자였지만 그들이 어른이 되어 한 것은 사람들을, 아이들을 돕는 일이었다. 은호도 아이들을 도우려 했지만, 비틀린 수단은 그를 자살에 가까운 타살로 몰아넣는다. 마치 과거의 아동학대 사실을 내세우며, 폭력을 대물림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는 어른들을 비판하는 듯했다.

 

 

 

세상의 모든 자라지 못한 아이들에게


 

이번이 어린이날 100주년이라고 한다. 이 말은 이번까지 총 100번의 어린이날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린이날이 100번을 맞을 동안 수많은 어린이가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100주년인 지금, 그림자에 가려져 온전히 행복하지 못했던 아이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몸이 자랐을 뿐, 어릴 때의 그림자에 갇혀 자라지 못한 아이들. 지금은 어른이 되어 평범하게 사회의 일원이 되어있을 수도 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어린아이가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만약 그 아이가 가끔 튀어나와 당황하게 한다면 숨기려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그저 그 아이를 꼭 안아주고, 자신은 너를 아프게 했던 어른들과 달리 훌륭한 어른으로 자랐다고, 이제는 내가 너를 지켜주겠다고 다독여줬으면 좋겠다.

 

세상의 모든 우경에게, 수영에게 그리고 은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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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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