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 곁의 슬픔을 돌아보는 일 - 소설 '슬픔이 역류하여 강이 되다' [도서]

슬픔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을까?
글 입력 2022.05.02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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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할 뿐이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한 말이다. 실제로 그는 본인의 저서 『우상의 황혼』에서 ‘상처에 의해 정신이 성장하고 힘이 솟는다’고 말하며, 인간은 고통을 겪으며 더 강해지고 성장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어떤 고통은 그것을 이겨내고, 그것으로 인해 생긴 상처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성장의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끝도 없이 밀려오는 고통과 슬픔 앞에 그저 죽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간은 계속 강해질 수 있을까? 어쩌면 아직 간신히 숨을 쉬고 있을 뿐, 끝없이 차오르는 고통과 슬픔에 점점 가라 앉는 중인 것은 아닐까?

 

궈징밍 작가의 소설 『슬픔이 역류하여 강이 되다』의 주인공 ‘이야오’도 하루하루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 속에 살아간다. 가정폭력, 학교폭력, 갑작스러운 임신과 낙태까지… 고작 17년을 이어 온 이야오의 삶은 너무 무겁고 가혹한 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일상이 되어버린 폭력 속 무력해진 청춘


 

이야오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온전한 일상을 살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폭력과 위협에 시달린다. 모든 폭력이 끔찍하지만 특히 가정과 학교와 같이 일상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점점 그 폭력에 익숙해지고 무력해지도록 한다는 점에서 정말 더 끔찍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폭력은 피해자의 온전한 일상과 삶 자체를 무너뜨린다. 다른 학생들에게는 어쩌면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들도 이야오에게는 엄청난 위협으로 다가왔던 것처럼 말이다.

 

어린 시절 이야오의 아버지가 집을 떠나 다른 사람과 가정을 이루고 난 후 이야오의 어머니 ‘린화펑’은 몸을 파는 일로 생계를 이어 가고, 린화펑과 이야오는 끔찍한 가난과 주변의 무시 속에 살아간다. 그 속에서 린화펑은 오히려 딸의 죽음을 바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물리적인 폭력을 가하며 이야오를 지속적으로 학대한다. 그렇게 집 안에서 반복되는 폭력은 이야오에게 어느새 일상이 되어 버린다.

 


"정말 미운데, 어떤 때는 사랑하는 것 같아."

 

p.19.

 

 

이야오와 어린시절부터 같은 골목에서 자란 ‘치밍’이 린화펑에 대해 묻자, 이야오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린화펑과 이야오는 서로의 곁에 남은 유일한 가족이었지만, 켜켜이 쌓인 세월만큼 뒤섞인 서로에 대한 감정은 그것이 증오이든 사랑이든 서로를 더 아프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주고 받은 상처는 서로의 마음 깊은 곳에 남아 그들의 삶을 무너뜨렸다.


 

이런 것이었다. 서로 간의 어떠한 대화도, 동작도, 눈빛도, 자세까지 모두가

무한히 무거운 의도를 담고 있었다. 그렇게 10년을 함께 보내 온 모녀 사이였다.

무심히 나눈 대화, 무심히 지은 표정이 암흑 속에서 고정된 선을 따라

뿌려진 바늘이 되어 미리 정해 놓은 시간이 되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상대의 몸을 찌른다. 그리고 고통스러워하는 상대의 표정을 보면서

자신이 상상한 것과 같은지 확인한다.

 

pp. 179-180.

 

 

물론 린화펑이 이야오에게 행했던 폭력은 명백한 학대고, 어느 것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하지만 린화펑도, 이야오도 서로의 죽음을 그렇게 계속해서 입에 담았던 것은 죽음이 아니고서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관계와 상황이 모두에게 너무나 끔찍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이야오의 아버지 ‘이자옌’은 최소한의 양육비조차 지급하지 않으며 연락을 끊었고, 이웃 사람들도 냉대와 조소로 일관하며 둘을 무시했다. 심지어 린화펑이 쓰러져 병원으로 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이야오가 사정할 때도 이웃들은 이야오를 외면한다.

 

학교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치밍과 이야오의 관계를 질투했던 같은 반 학생 ‘탕샤오미’는 이야오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뜨리고 다른 친구들과 함께 이야오를 난처한 상황으로 몰아가면서, 이야오를 계속 괴롭힌다. 비록 이야오를 향한 학교 폭력의 주동자는 탕샤오미였지만, 다른 학생들도 이야오에 대한 소문만 듣고 이야오를 비난하고 조롱한다.

 

이야오는 이런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삶을 이어 가려 하지만, 이야오가 탕샤오미에게 반격하려 하거나, 폭력에 맞서려고 하면 오히려 ‘못됐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야오를 둘러싼 악의와 폭력 앞에 이야오가 할 수 있는 저항은 미약했고, 이야오에게 호의를 가졌던 사람들도 ‘완전무결한’ 피해자일 것을 강요하며 이야오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이야오는 누구에게도 ‘온전한 자신’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며, 일상적인 폭력 앞에 스스로의 무력함을 계속해서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이야오가 임신하고 낙태를 했다는 사실은 학교 안에서 이야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핑계로 작동한다. 심지어 학교에서 나서서 공개처형하듯, 이야오를 학생들 앞에 내세우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는 청소년을 ‘무성(無性)적인 존재’로 상정하며 그들의 성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금기시해 온 인식과 관련되어 있으며, ‘성녀/창녀 이분법’으로 이야기되는 여성에 대한 시선과 여성의 성경험에 대한 잣대와 규범 등 뿌리 깊은 여성 혐오와도 맞닿아 있다.

 

그러므로 이야오의 이야기를 단지 극단적인 소설 속 이야기로만 치부할 순 없다. 이렇게 이야오에게 요구되고 씌어졌던 여러 프레임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도 존재하며, 많은 여성 청소년과 폭력 피해자들을 억압하고 ‘무력한’ 존재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와 누군가의 온전한 일상을 지키는 힘은 누군가를 온전히 그 존재 자체로 바라보고 존중하려는 노력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우리의 일상 공간 역시 누군가의 일상이 함께하는 곳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우리를 둘러싼 폭력에 더 주의를 기울일 수 있기를, 그리고 그러한 폭력 앞에 사람들을 더 무력하게 만드는 왜곡된 프레임들을 짚어내고 없애 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슬픔만 가득한 세계를 살아내는 한 사람을 지탱하는 것


 

『슬픔이 역류하여 강이 되다』라는 제목만큼, 주인공 이야오의 세계는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 이야오의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가다 보면 이야오가 자신의 세계를 놓아버리는 순간, 오히려 어떻게 계속해서 그 세계를 버텨올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이야오와 ‘치밍’, 그리고 ‘구썬시’와의 관계를 살펴봐야 한다. ‘치밍’은 어렸을 때부터 이야오와 한 골목에서 자라며 늘 함께 했던 친구이다. 둘은 오랜 시간 속에서 많은 상처와 아픔을 공유했지만 둘의 세계는 점점 더 달라졌고, 이야오의 세계에 더 짙은 어둠이 드리울수록 서로가 완전히 다른 궤도 위에 있다는 것을 둘 모두 마음 저리게 깨달아 간다.

 

 

너는 그녀 곁에서 함께 천천히 성장했다.

그녀가 좁디 좁은 틈새에 끼여 어렵게 살아온 것을 너는 모두 지켜보았다.

너는 네가 가진 모든 것을 그녀에게 주고 싶었다. 그녀가 원치 않더라도.

이런 그녀가 모래가 흘러 들어가는 소용돌이 안에 있는 것 같았다.

주변 모든 것을 와르르 집어 삼키는 구멍이었다.

그녀는 바로 이 소용돌이에 빠져 있었다. (...)

이렇게 소용돌이 곁에 서서 그녀가 하루하루 더 깊이 빠져 드는 것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언젠가는 그녀가 검은 소용돌이에 완전히 휘말려

자기 자신조차 거대한 검은 소용돌이가 되는 때가 올 것만 같았다.

멀리 도망가고 싶었다. 모래를 빨아들이는 저 무정한 황무지에서 떠나고 싶었다.

 

pp. 325-326.

 

 

결국 치밍은 이야오의 세계에서 떠나간다. 치밍은 점점 이야오가 짊어져야 하는 아픔과 상처의 무게를 감당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게 된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듯한 ‘구썬샹’과 점점 더 가까워지며 이야오와 멀어진다.

 

이야오와 치밍의 관계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기, 이야오 앞에는 구썬샹의 쌍둥이 남동생인 구썬시가 등장한다. 그는 탕샤오미에게 이야오가 ‘100위안만 주면 아무하고나 잔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야오를 찾아온다. 이야오는 자신에 대한 모욕적인 소문을 이야기하는 구썬시의 말을 반박하며 구썬시에게 사실을 털어 놓는다. 그 이후 이야오와 구썬시는 서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여러 번 마주치게 되고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조금씩이지만 솔직한 감정과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되어 간다.

 

치밍과 구썬시는 이야오를 완전히 이해하지도, 이야오의 고통을 나눠질 수도 없었지만, 아주 작은 온기가 되어 이야오의 곁에 있었다. 악의와 폭력에 둘러싸인 이야오의 세계에서, 이들은 이야오의 마음과 상황에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려고 했던 유일한 존재였다. 그런 치밍과 구썬시가 이야오를 완전히 믿지 못하고 그의 세계에서 떠났을 때, 이야오 역시 자신의 세계를 떠나 버린다.

 

 

자기의 세계를 포기하는 것은 분명 더욱 고통스러운 느낌일 것이다.

너무너무 아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붙잡을 힘이 남지 않았다면,

그렇게 그 세계가 나를 포기할 때, 나 역시 천천히 손을 놓고 만다.

 

p. 443.

 

 

린화펑에게 수없이 죽으란 말을 들었을 때도, 탕샤오미에게 모욕이 담긴 모함을 들었을 때도 자신의 세계를 놓지 않고 살아내 온 이야오였기에 이야오의 선택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만큼 치밍과 구썬시의 존재와 그들이 건넨 온기가 이야오의 세계를 지탱하는 큰 힘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에서는 어둠이 끝없이 흘러나오는 ‘어둠의 샘’이라는 비유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야오와 이들의 관계를 보면서 어둠은 생각보다 약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둠’으로 비유되는 아픔과 슬픔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을 축소하거나 외면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아주 작은 불빛 하나로 조금씩 주변을 밝혀가고 어둠에 맞설 수 있는 것처럼, 그저 곁에 있는 한 사람의 존재가 누군가의 세계를 지탱할 수 있는 힘이 될 지도 모른다. 치밍과 구썬시의 존재가 이야오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나도, 당신도, 누군가에게 그런 아주 작은 불빛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슬프고 무거운 어둠만 가득한 세계 속에서 자신을 놓지 않고 붙잡아 온 당신이 작지만 든든한 불빛을 발견 할 수 있기를, 그리고 서로에게 그러한 존재가 될 수 있는 우리이기를 바라본다.

 

 

 

우리 곁의 슬픔과 아픔을 짚어내는 섬세한 표현들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감정이나 관계를 그려내는 섬세한 묘사와 표현들이었다. 등장인물들이 겪는 슬픔이나 아픔, 오랜 세월 어긋나온 여러 관계들을 다양한 표현으로 변주하며 생생하게 전달한다.

 

 

사실 생활이란 너무도 솔직하고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일들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수많은 사정이 가장 평범한 형태로 쌓이고 쌓이다

어떤 틈새로 당신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가 눈시울을 붉히게 하고 마는 것이다. (...)

세상은 사실 그렇게 화려하지도 자극적이지도 않다.

세상은 언제나 그렇듯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다.

가장 단순하고 가장 잔혹하게 매분 매초 끊임없이 돌아간다.

 

p. 440.

 

 

작가의 말에 적힌 것처럼 때론 ‘평범’하고 ‘보편적’이라고 여겼던 것들에서 가장 슬프고 아픈 감정과 관계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에게 익숙해서 오히려 뚜렷하게 설명할 수 없었던 이러한 것들을 책 속에서는 섬세하게 표현해 간다.

 

 

치밍은 수도 없이 생각했다. 많은 강이 그렇듯이 흘러 내려 온 모래가 쌓여

강바닥이 상승하고 우연한 몇 차례의 가뭄을 겪고 나면 강바닥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렇게 된 후에야 맞은편에 있는 엄마가 천천히 자신을 향해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자신인지 엄마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어떤 손이 날마다 강바닥을 파내고

모래를 치워서 더 많은 물길을 내 버렸다. 하루가 다르게 점점 깊어지는 참호처럼, 발을 내디뎌 나아가다 보면 순식간에 머리까지 잠기고 마는 것이었다. 

 

p. 55.

 

 

치밍과 치밍 엄마의 관계는 점점 깊어지는 강을 사이에 두고 맞은 편에 있는 두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 멀리서 보면 맹목적으로 자신의 아들만을 위하는 희생적인 어머니이지만, 치밍 엄마가 가진 극단적인 이기심이 정작 치밍을 얼마나 옥죄고 엄마로부터 멀어지게 했는지 잘 보여준다.

 

 

그녀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얼음조각을 가슴 속에 쑤셔 넣은 것처럼

찌를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한여름에 갑자기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었다가

너무 차가워서 도로 뱉어 낼 때 느끼는 통증 같은 거였다.

그런데 가슴 속에 박힌 얼음은 어떻게 뱉어 낼 수 있을까? - p. 47.

 

그녀의 이마와 얼굴에 남은 상처를 보면서 그의 마음은 엎질러진 물처럼 동요했다. 흘러내린 물은 심장과 가슴에서 넘쳐 그의 몸 낮은 곳으로 흐르고, 그곳에 웅덩이를 만들었다. 그 위로 작은 고통들이 비췄다. - p. 82.

 

 

제목만큼이나 등장인물들의 정서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슬픔’이라는 감정은, 이렇듯 다양한 비유와 묘사로 표현된다. 모든 감정들이 그렇지만, 슬픔은 특히 더 다양하고 복합적인 측면이 있는 감정인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생각보다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빨리 잊어버리고 외면하려고 하고, 얼른 회복된 모습을 보고싶어 한다.

 

하지만 슬픔 역시 우리 곁에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감정이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 안에 존재하는 슬픔을 면밀히 살펴보고 똑바로 마주하는 것도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더 이해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를 포함해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책 속의 다양하고 섬세한 여러 표현들을 접하며 우리 곁에, 혹은 우리 안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뚜렷이 짚어낼 수 없었던 감정과 관계들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보고, 그것들을 마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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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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