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존재의 위로, 임세모 - 건강하세모 [음반]

같은 짐을 지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글 입력 2022.05.04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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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견해지만 요즘 사람들은 위로나 쉼을 꺼리는 듯하다. 오히려 냉소적이고 염세적으로 변했다. 백세희 작가의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향한 태도만 봐도 그렇다. 사람들은 몸과 마음의 건강을 쉽게 지나치다 번아웃이나 우울증을 단순한 감정으로 치부했고,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불안 속에서 위로를 철 지난 유행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위로가 필요할 때는 분명히 있다. 앞만 보고 달리던 사람들이 오은영 박사의 ‘금쪽 시리즈’로 위로받은 것처럼, 누군가 던진 위로는 챙기지 못했던 몸과 마음의 건강을 돌아볼 수 있게 한다.

 

지난 3월 발매된 임세모의 <건강하세모>는 ‘작정하고 위로하려고 만든’ 앨범이다. 과거 어쿠스틱 포크 뮤지션들이 오늘도 수고했다거나 지칠 때 내게 기대라고 말했듯, 임세모는 불안과 우울의 시대에서 따뜻한 위로를 던진다. 차이점이 있다면 사람들이 겪을만한 감정을 이해하는 방식이 아닌 임세모만의 이야기와 생각으로 공감을 노래한다는 것이다. 그의 음악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권유하기보다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며 경험의 보편성으로 ‘누구나 겪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여준다.

 

싱어송라이터 임세모는 첫 싱글 <지구멸망이 좋겠다>로 데뷔해 맑고 발랄한 어쿠스틱 포크를 선보였다. 종종 냉소와 염세가 뒤섞인 모습도 등장하지만 이중적인 위트에서 끝나며, 여러 싱글과 <안녕하세모>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밝은 음악을 이어왔다. 임세모의 음악은 일상의 영역을 쉽게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흔히 겪을 수 있는 평범한 소재를 다루고 복잡한 생각마저도 단순하게 이해하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모습을 <퍼즐세상>이라고 표현하거나, 끝없는 걱정을 <생각의 생각>이라면서 툭 끊어내는 모습은 임세모만의 태도라고 할 수 있겠다.

 

<건강하세모>는 임세모 특유의 일상적 위로를 담은 앨범이다. 그동안 자전적 가사를 풀어왔던 임세모가 자전적 태도로서 위로를 의도했다는 측면은 음악적 변화로도 볼 수 있다. 두 번째 EP에서 달라진 구석은 이뿐만이 아니다. 사운드의 규모가 일부 확장된 면도 있지만, 트위치와 유튜브 저변에서 종종 얼굴을 비추던 행보가 음악에 반영되었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앨범 크레딧에는 만화가이자 스트리머인 ‘이병건’과 ‘주호민’의 이름이 실렸다. 이들과의 교류 속에서 영감을 얻고 앨범을 완성한 임세모의 특별한 감사 표시다. 특히 직접 만든 도자기로 촬영한 앨범커버는 수영하는 사람의 모습을 의도했으나, ‘몸이 작으니 시체가 떠 있는 것 같다’라는 주호민의 조언으로 크기를 수정했다는 식의 소소한 일화가 있다.

 

첫 곡 ‘지쳤어’는 침착맨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노래다. 그의 휴방 공지에서 “즐겁지만 버겁다”라는 표현을 보고 주제가 떠올랐다고 한다. 임세모는 ‘지치면 쉬어’라는 권유보다 ‘내가 지쳤어’라는 경험을 서술하며, 한숨처럼 푹 꺼진 목소리와 느린 템포로 소진된 상태를 그대로 전달한다. 마찬가지로 ‘영웅이 아니에요’ 또한 침착맨과의 대화에서 영감을 받은 곡이다. 임세모는 일과 음악을 병행해야 하는 고민을 나눴을 때 “우리가 영웅도 아니고, 퇴근하고 하고 싶은 거 하면 영웅이지”라는 조언을 듣고 곡을 썼다고 전했다. 바쁘게 살아내기만 해도 버거운 삶이기에 꿈과 열정에서 멀어졌다는 소극적 낙오를 맥없이 노래하지만, 발랄한 분위기와 카주까지 들어간 구성은 우울하면서 밝은 이중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파리나 개미나 우리나’에서는 보편적 존재로서의 인생관이 드러난다. 임세모는 길 가다 죽은 파리를 보고 인간의 생명도 작은 동물과 다를 바가 없음을 깨닫고 쓴 곡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곡의 메시지는 생명의 평등보다는 존재의 평등에 더 가까운데,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친구가 임세모를 부러워하는 이야기는 서로가 ‘대단만 할 필요가 없는’ 존재임을 말한다. 흘러가는 대로 살아도 충분하니, 그리 대단할 필요도 없고 남들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는 이야기가 통통 튀는 리듬 속에서 무심하게 흘러간다.

 

<건강하세모>는 임세모의 새로운 음악적 시도 또한 담아낸다. ‘도망쳐!’는 임세모의 발랄한 작곡이 아케이드 게임 풍으로 편곡된 트랙이다. 미니멀한 드럼머신과 8비트 음악을 연상시키는 신시사이저는 어쿠스틱 포크에서 한 층 발전된 음악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마지막 트랙 ‘잘 자’는 첫 곡 ‘지쳤어’와 마찬가지로 어쿠스틱 기타와 목소리로 대부분의 사운드를 채운다. 하지만 임세모는 지친 하루를 깊은 잠을 통해 회복을 기원하며, 앨범의 시작을 장식한 고난 서사를 위로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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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모는 앨범 소개글에서 ‘아직 멋지고 다정한 위로는 어려워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건강하세모>가 위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임세모는 앨범을 듣고 ‘얘도 이런 적이 있구나, 나도 이런 적이 있는데’라고 생각하며 위로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일상적인 영역에서 머문 임세모의 음악은 누구나 겪어볼 법한 이야기와 누구나 듣기 쉬운 선율과 리듬으로 채워졌다. 하지만 보편적인 평범함은 존재로서 힘을 얻는다. 임세모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면 고통은 나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같은 상황에서도 노력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기에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이다. 멋진 말보다 같은 짐을 지고 있는 존재의 위로가 더 클 때가 있다. 좋아하는 일과 생존 사이에서, 열정과 번아웃 사이에서, 꿈과 평범함 사이에서 함께 방황하는 자체로, <건강하세모>가 보여준 임세모의 이야기는 존재의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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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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