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파도를 맞는 모두를 위하여 - 로마 [영화]

잔물결이 파도가 되기까지
글 입력 2022.04.24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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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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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파도가 치는 영화에 약해진다. 20년을 파도가 치던 바다 근처에서 살아서 그런지 모르겠다. 파도 앞에 선 인간을 보면 괜히 벅차고 그런다. 특히 ‘노매드랜드’가 그랬다. 문명을 구축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인간이라 할지라도 자연 앞에 서면 작아진다. 그리고 그걸 인정하는 듯한 인물들을 보면 자연이 끄집어내는 깊은 내면이 느껴진다.

 

‘로마’도 그렇다. 멕시코의 지리가 잘 보이는 듯한 자연은 비록 빛깔을 잃은 흑백일지라도 눈부시다. 영화 속 산불은 자연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는 신처럼 위대하게 느껴진다. 파도도 마찬가지다. 멀리서 볼 때 파도의 철썩임은 마음의 빈 공간을 채워주지만 파도 앞 가까이에 서면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은 거대한 괴물의 입처럼 보인다. 자연의 갑작스러운 위험은 인간을 뭉치게 만든다. 그래서 자연이 아름다운 걸까. 산불이 났을 때 모두가 나와 물을 길어 진압하거나, 파도에 빠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거침없이 바다에 뛰어든다. 이런 면에서 이 영화는 인간과 자연의 아름다움, 정이 느껴진다.

 

파도의 속성을 ‘물’이라고 칭할 때 영화에는 2가지 물이 등장한다. 앞서 말했던 자연의 물 ‘파도’와 주인공 ‘클레오’의 직업과 관련된 물이다. 편하게 사회적 물이라고 하겠다. ‘클레오’는 가정부로 일하고 있으며 물과 가까운 존재다. 매 청소 때마다 물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타일 바닥에 흐르는 물로 시작한다. 파도의 잔물결처럼 바닥 타일에 흐른다. 바닥 타일을 흐르는 물은 그녀의 직업적, 그리고 사회적 정체성을 나타낸다. 1970년대 중산층의 한 가정에서 가정부로 일하고 있는 여성임이 드러난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파도와 대비되는 그녀의 잔잔한 삶을 보여준다. 변화가 많은 파도와 다르게 그녀의 삶은 항상 물과 동반하기 때문에 일상적인 느낌이 강하다. 영화를 보면 잔잔하다. 한 사람의 인생을, 한 가정의 집안을 지그시 바라보는 느낌이다.

 

자연적 물, ‘파도’는 잔물결 같은 그녀의 일상에 임신으로부터 온다. ‘클레오’는 임신을 한 후 남자친구에게 버림을 받는다. 그리고 출산이 임박했을 때 시위대를 진압하는 남자친구의 폭력성에 큰 충격으로 유산하고 만다. 1970년대 여성들은 주로 집안일을 담당했다. 가정부로 일하면서 엄마의 역할을 담당하지만 실질적으로 엄마가 되지 못했다. 아이의 죽음은 곧 그녀의 죽음이다. 죽음을 없어져 사라진다는 ‘소멸’이라고 볼 때, 엄마로서의 역할이 소멸했으며 가족 형성의 소멸이다. 남자친구에게 버림을 받아 남편과 아내라는 관계는 소멸했고 아이의 죽음으로 딸과 엄마라는 관계가 소멸했다. 그녀는 파도에 휩쓸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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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죽었던 그녀의 삶은 뜻밖에도 파도가 치는 바다에서 다시 소생한다. 평소 그녀는 수영을 못해서 바다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바다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릎 쓰고 바다에 뛰어든다. 그녀는 파도를 맞는다. 파도에 맞아가며 아이들을 구한다. 그녀가 무서워하던 바다에 고민도 하지 않고 어떻게 들어갈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죽은 아이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자신이 돌보는 아이들을 구함으로써 미안한 죄책감을 덜 수 있지 않았을까. 파도에 모든 걸 털어내고 싶은 건 아니었을까. 아이들을 구하고 ‘클레오’는 처음으로 자신의 진심을 말한다. 그의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다고 사모님과 그녀의 가족들과 끌어안고 울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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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클레오’ 한 여성의 개인적인 이야기만 나오지 않는다. 죽음과 삶 사이의 있던 파도 앞에서 버려진 여성들의 연대도 보인다. ‘클레오’가 모시는 사모님 또한 파도 앞에 선 인간이다. 남편이 바람을 펴서 버림받았으며 혼자 가족을 책임져야 했다. 아이들 앞에서 울음을 참았던 그녀지만 ‘클레오’와 함께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영화에는 ‘사랑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클레오’와 사모님의 가족은 정말 가족 이상의 사랑을 보여준다. 물론 사회적 지위의 차이는 보이며 사모님의 까칠한 모습도 보이지만 한 인물에게 버려진 이후, 강한 연대를 보인다. 아이들이 평소에 ‘클레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면은 그녀가 아이를 잃은 걸 더 안타깝게 만들지만 한 편으로는 사랑을 주고받는 그들의 행복이 느껴진다. 그리고 바다에서 모든 걸 내려놓고 끌어안던 그들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파도가 친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클레오’는 똑같이 가정부로 일한다. 일상적인 물로 돌아온 것이다. 마지막, ‘클레오’는 빨래를 하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간다. 카메라는 올라가는 그녀와 하늘을 담아낸다. 타일 바닥만 보였던 영화 초반과 비교하면 그녀에 대한 희망이 느껴진다.

 

영화를 보고 버려진 자들의 연대에 대한 내용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서로 구해준 자들의 연대에 대한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클레오’는 한 가정의 행복을 구했으며 사모님도 아이를 잃은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줬기 때문이다(조금 까탈스럽긴 했지만). 사회적 계층의 차이는 직업적으로 극명하게 보인다. 그럼에도 계층을 넘어 사람이 사람을 보듬어줄 수 있음을, 영화는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모두에게 잔물결은 있다. 지금도 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큰 파도가 밀려올 것이다. 그 파도에 내가 맞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맞을 수도 있다. 파도를 맞고 버틸 수 있고, 남을 구할 수 있는 건 정말 대단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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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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