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이라면, 사랑할 수 있습니까?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4.1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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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너무나 유명한 청소년 장편소설이다. 감정 표현 불능증이 있는 윤재, 여리기에 무력으로 자신을 꽉꽉 채워버리려 하는 곤이, 오로지 자신을 위해 달리고 또 달리는 도라의 이야기를 주축으로 그들이 처한 상황과 그 속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아주 매력있게 담아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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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줄거리나 매력 포인트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을 읽었거나, 미래에 읽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 다만,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건 소설의 스토리가 아닌 작가의 말이다.

 

작가는 소설의 끝에서 이 소설을 시작할 때의 마음을 담담하면서도 솔직하게 적어낸다. 작가는 4년 전 태어난 자신의 아이를 보며 그 아이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곱씹어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여러 조건을 붙여보며 과연 내가 어떤 상황에서도 이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과연 나라면 사랑할 수 있었을까?’ 하는 마음으로 윤재와 곤이를 만들어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랑이 아이들을 인간으로, 괴물로 만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아몬드’ 소설 속 기적처럼 멋지게 성장하고, 따뜻한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게 된 두 아이의 이야기에는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아이를 조금 더 따스하고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자는 작가의 메세지가 담겨있던 것이다.

 

이 말을 읽은 후 숨이 턱 막혔다. 윤재와 곤이에 대해 한 차원 물러나서,  소설 속 주인공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내 눈앞에 확 다가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과연 나라면 사랑할 수 있었을까?’

 

사실 그러고 싶다. 누구든 조건없이 사랑하고 싶고, 타인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인정하며 이해하고 싶고, 지금의 부족함보다는 가능성을 보고 싶으며 모두의 상황에 공감하고 싶다. 그러나, 자신은 없다는 게 내 솔직한 대답이다. 모든 이들을 따스하게 보기에는 윤재와 같은 아이를 대할 때 편견이 앞서고, 곤이 같은 아이들의 적의에 찬 눈길에 내가 되려 먼저 상처받을까 봐 두렵다. 그리고 조금 더 산 깜냥으로 도라와 같은 아이들에게 마구 충고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힐 때도 있다. 아이들을 떠올릴 때도 이런데, 사회 일반에 대해서는 내가 얼마나 더 비겁할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이 들 때는 동시에 인간 사회에서 이기가 무조건 나쁜 것도, 이타가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무조건 상대방을 위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상대방을 위하는 행동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동시에 나를 위하는 마음에서 상대를 위한 행동을 취하고 진심을 전달하려면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얼마나 큰 사랑을 주어야 할까 아득해진다. 모든 사람들에게, 아니 적어도 주변 사람들에게라도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으려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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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함 외에 내가 모든 아이를 ‘과연 사랑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소설은 실제와 다르기 때문이다. 독자 시점에서 투명하게 바라보는 윤재나 곤이 같은 아이라면 보듬어줄 수 있겠지만, 현실에서 만나는, 어쩌면 가면을 쓰고 있을 아이에게 우리가 보여야 할 태도는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특히 최근 ‘소년재판’ 등 미디어에서도 다뤄졌듯, 청소년 범죄가 심각하다. 남들을 해친 아이들이 아픈 과거와 상처, 조금은 특수한 상황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사랑받을 자격이 있을까? 아무리 죗값을 받는다고 해도, 그런 아이들을 품어주고 교화할 수 있도록 기다려줄 자신은 나에게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범위도 ‘금쪽같은 내새끼’에 나오는, 문제행동은 보이지만 아직 다른 사람에게 해를 가하지는 않은 아이들로, 나랑 마찬가지인 듯하다.


진정한 사랑은 어렵다. 어렵기에 울림이 크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사랑하고 싶은지, 사랑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사랑의 힘으로 사회가 바뀌어나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원동력으로 사회를 바꾸어나가는 사람이고 싶다. 이 글은 그런 지향점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너무나 멀리 있는 나의 자기 고백이며 사랑의 길에서 길을 잃고 고민하는 중의 기록이다.

 

 
[김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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