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굿바이 다시 읽기 [도서/문학]

윤이형, 「굿바이」, 『러브 레플리카』, 문학동네, 2016.
글 입력 2022.05.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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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이것이 나의 마지막 기억이다. 나는 이제 다른 곳으로 간다.(p.82)

 

 

3년 전에 읽었던 「굿바이」를 다시 읽었다. 그는 과연 어디까지 가닿았을까.

 

 

 

태어날 준비를 한다는 것


 

윤이형의 SF 단편 소설집 『러브 레플리카』에 수록된 「굿바이」는 인간의 육체를 버리고 기계 인간이 되어 화성에서의 새 삶을 시작하는 근미래 인류에 관한 이야기이다.

 

화성 기지 건설 및 환경 개조, 기계와 인간 육체의 호환등 다양한 과학 기술들이 발전하고 현실화되는 가운데, 소설은 뱃속의 태아인 ‘나’가 엄마인 ‘당신’의 시선을 빌려 ‘당신’과 ‘그녀’를 지켜보는 내용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당신은 지구에 사는 인간이고, 그녀는 화성에 살기 위해 일명 스파이디라 불리는 기계의 몸으로 전환한 신인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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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형, 「굿바이」, 『러브 레플리카』, 문학동네, 2016.


 

기회가 수없이 많았는데도 당신은 나를 없애지 않고 살려두었다. 왜일까. 나는 딸꾹질을 하며 생각해본다. 당신은 내가 모든 것을 안다는 걸 모른다. 당신을 렌즈처럼 이용해 세상을 보고 있다는 걸 모른다. 나의, 그리고 당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속속들이 꿰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어떻게 그토록 모르는 것이 가능할까. 그 까만 무지에서 당신의 희망이 자라난다. 희망은 좋은 것일까. 나는 아주 천천히 숨을 쉬어본다.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희망에 대해서는 잠시 잊고 나는 당신에게 집중하기로 한다. 당신이 보는 것을 보고, 당신이 듣는 것을 듣는다. 당신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p.51)


 

임신 중인 당신 안에서 ‘나’는 지혜와 인격을 버젓이 지닌 존재로, 당신의 시선을 통해 당신이 보고 듣는 것 이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렇듯 ‘나’는 태어나기도 전부터 몸과 자아의 경계를 넘나들며 당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속속들이 꿰고 있는 인물이다.


태아라는 독특한 인물 설정으로 인해 서술자로서의 ‘나’는 여타 소설의 1인칭 관찰자 시점과는 다른 위치에 놓인다. 서술자인 ‘나’는 당신의 처지와 심리, 당신과 그녀의 대화를 교차 진술한다. 그리고 그 위에 당신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지 않은 존재인 ‘나’의 시선이 포개어지며 소설은 전개된다. ‘나’는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로 당신의 세상을 관조하는 듯 하지만, 결국 그 세상은 곧 ‘나’가 태어날 곳이다.




실패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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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모래와 비밀스러운 흉터를 닮은 협곡의 땅, 화성은 희망을 품은 세계였다. 스파이디로서의 삶을 선택한 이들은 어떤 생명도 착취하지 않는 삶을 꿈꿨다. 소화기관이 없이 곧바로 흡수되는 태양열만이 그들의 에너지원이었고, 그들의 머릿속에 든 모든 것은 디지털 신호로 바뀌어 전자뇌에 이식되었다. 기계 몸이 되어 화성으로 건너간 그들은 그야말로 평등에 대한 새로운 시도의 공동체였다.

 

미지의 희망으로 나아가는 그들의 여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우선 자본과 환경 등 삶을 종속시키던 수많은 한계들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느꼈다. 삶이 위협당할 일 없이, 모두가 같은 생김새와 신체를 지닌다는 것이 처음에는 다행으로 여겨졌다. 

 

그들만의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을 발명하기도 했다. 뇌가 연결되는 방식을 전자신호로 패턴화해 접촉하지 않고도 많은 것을 나눌 수 있었고, 개별적인 인격을 잃지 않는 동시에 공동체로 존재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렇게 그들은 이러한 삶의 지속에 대한 전인류적 가능성에 대해 논의해나갔다.

 

 

한때 자신의 몸이었던 육체를 내려다보는 기분이 궁금하긴 하다. 약간의 이질감, 반가움, 그리고 아마 회한이 뒤섞인 감정일 거라고 당신은 짐작한다. 기계 몸을 입고 화성에서 지낸 시간들은 그다지 즐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럭저럭 지낼 만했거나 그곳이 여기보다 나았다면, 스파이디들은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돌아왔다.(p.60)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들은 실패했다. 화성에 정착한 지 오 년째 되던 해에 이유 모를 사망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즈음 그녀를 포함해 네트워크에 접속한 모두의 뇌에 한 개념이 공유된다. 그것은 이전의 몸인 인간 육체로부터 추출된 몇 가지 사소한 경험들을 압축해놓은, 그들이 몸을 바꾼 이후로는 완전히 잊고 있던 감각이었다.

 

이 프로젝트에 선정된 참가자들은 크게 둘로 나뉘었는데, 반은 자신의 육체를 포기할 만큼 프로젝트 자체에 믿음과 애정을 갖는 학자나 연구자였고, 나머지 반은 자본이 만들어낸 범죄와 폭력에 내몰리며 지구에서는 더이상 인간으로 살 수 없다고 판단해 극단을 택한 사람들이었다. 다시금 상기된 인간일 적 개념들로 인해 그들 사이에서는 서로의 과거와 수많은 폐해들에 대한 도덕적인 맹비난이 퍼졌다.

 

이상에서 출발한 토론은 서로를 상처입히는 개념들의 대량 유통으로 변질되어갔다. 각자 가치를 두고 있는 부분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모두가 똑같은 몸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난해하게 여겨지고 공동체의 존속이 흔들렸다. 사망자들이 예전과 다른 규모로 점점 늘어날수록 그들은 동요하고 혼란스러워했다. 이미 대부분의 삶이 획일화된 그들은 인간 사회에서 경험하던 것과는 다른 종류의 무력감과 권태에 빠진다.

 

그렇게 대부분이 피로에 젖어있을 때쯤, 그들에게 지구로 돌아가라는 통보가 내려졌다. 공동체 실험은 실패했으니 인간의 몸으로 돌아가 다시 삶을 시작하는 게 좋겠다는 인간들의 판단이었다. 처음 그들이 실험을 위해 몸을 옮기는 시술을 받았을 때, 그들은 아무것도 지불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올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더 나쁜 쪽으로 변화한 세상과 경력 단절, 그리고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기 위한 사천팔백만 원 정도의 ‘리턴 시술’ 비용뿐이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지구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변화는 어떤 사람들의 삶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당신은 백 년 전의 어떤 사람들이 느끼던 것과 정확히 똑같은 두통을 느끼며 통속적인 삶에 매달려간다. 모멸감으로 말하자면 천 년도 더 전부터 이 땅을 흘러다니던 종류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당신이 이 도시를 떠나 자유로워지는 날은 아마도 오지 않을 것이다.(p.55)

 


앞서 늘어놓은 장황한 이야기와는 상관없이, 당신은 그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리턴 시술 센터에서 복무하며 통속적인 삶을 이어가는 인물이다. 센터에 찾아온 스파이디들에게 냉동 보관된 본래의 몸을 보여주고, 설명하고 설득해서 그들이 시술 동의서에 서명하게 하는 것이 당신의 일이었다. 다른 연인이 있는 남편과 관계를 끊지도 못하고 그의 빚까지 갚아야 하는 당신에게 있어 이곳은 임신한 당신을 받아준 유일한 직장이었다.

 

그런 당신 앞에 그녀가 나타났다. 당신은 원래의 몸일 적 그녀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이십 년 전, 그녀는 중학교에서 당신과 같은 반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어떤 사람들이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삶을 누려왔다. 모두가 그녀를 숭배했고 그녀 역시 자기 자신을 사랑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몸을 태워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여태까지 그런 전례는 없었기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매뉴얼대로 정부 지원과 대출 상품 등을 차근차근 설명하는 당신에게 그녀는 “인간으로 돌아가고 싶으면 노예가 되라는 거냐”고 묻는다. 그러나 당신은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살아가는 거의 모든 순간이 고단하고 힘들기는 했어도 자신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단지 흐르는 것을 첫 번째로 두었을 뿐이었고, 변화를 위해 삶을 거부하는 것과 거리가 멀었을 뿐이었다.

 

 

다만 당신은 조금 궁금하다. 어떤 일들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저 영원한 허구에 불과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현실이 된다. 어째서일까.

도발적인 표정을 한 기자가 그녀에게 묻는다. 어떤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장애를 안고 태어나 평생을 살아간다고. 신이 준 선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온전하고 건강한 몸을 그토록 쉽게 포기하는 것이 사치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느냐고. 그녀는 대답한다. 소중하기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는 게 아닐까요. 아무것도 잃거나 바꾸지 않고, 어떤 고통도 감당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삶을 얻을 수는 없어요.

당신은 곧 기계가 되어 낯선 행성으로 떠나게 될 그녀의 얼굴을 본다. 더이상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p.75)

 

 

떠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신념이라는 이름 하에 누군가는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어떤 것들에 대해 존중심을 느끼지 않았다. 당신은 그녀가 포기했던 것이 무엇인지, 그런 존재로 살아가는 일이 어떤 것인지 상상해보려 했지만 그러기엔 이미 너무나도 피로했다.


누구나 자신만의 사정이 있다. 스파이디의 실패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를 듣게 된 당신은 숭고한 변화와 아름다운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당신과 그녀는 너무나도 달랐다. 세상의 불공평함에 대해서도, 서로에 대해서도, 끝내 이해할 수 없는 삶들이 충돌했다. 하지만 당신은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당신에게도, 그녀에게도, 끝내 설명되지 않고 이해받지 못하는 어떤 선택이 있었다.

 

 

 

망각의 미학


 

 

나는 생각한다. 당신은 혼자서 나를 낳는 중이다. 누구도 당신과 나를 도와주지 않아서다. 

앞으로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아무도 없다.

잘되지 않을 것이다.

잘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내가 어떻게 해야겠는가. 모든 것을 되돌려야 하지 않겠는가. 

사라져야 하지 않겠는가, 어차피 실패할 거라면. 

그렇다면 당신이 나를 알지 못했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당신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다. 그렇게 하겠다. 그렇게 해야겠다.(p.80)

 

 

곧 태어날 세계의 실패를 지켜본다는 것은 어떤 감각일까. 당신의 안위를 고려하는 것 외에는 아직 어떠한 명분도 주어지지 않은 피와 살만으로 이루어진 ‘나’의 세계에서, 당신의 모든 지혜를 가지고도 당장 ‘나’가 고를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의 선택지는 자신의 생사뿐이다.

 

자신을 품은 당신과 일체되어 있는 ‘나’야말로, 당신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도 가장 근접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존재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당신의 모든 것을 이어받은 ‘나’는, 희망이 자라나는 당신의 그 까만 무지만은 이해하지 못했다. 

 

‘나’가 처음 경험한 망각은, 이 소설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희망에 대해서는 잠시 잊고 오로지 당신에게만 집중하기로 했던 순간이었다. 선택의 꼬리잡기 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삶이 또 한번 충돌한다. 그렇게 나는 탄생을 앞두고 당신이 어디론가 돌아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잊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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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당신에게 경고하려고 했다. 나를 사랑하지 말라고. 나는 일어난 모든 것을 보았고 일어날 모든 일을 알고 있다고.

그러나 내가 막 그 말을 하려는 순간 나를 부르는 당신의 나직하고 지친 음성이 들려온다. 그 순간 나는 깨닫는다. 당신은 나를 사랑한다. 당신은 나를 사랑한다. 

그리고 곧이어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목을 휘감아 죄어오던 것들, 당신과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형틀에 묶인 슬픈 예감들과 벌레처럼 통통하게 스스로를 살찌워가던 죄의 감각들이 한꺼번에 잘려나가며 두껍고 포근한 망각이 나를 덮어 모든 것을 지워버린다.(p.81)

 

 

소설 말미의 주에 따르면, 천사가 태중의 아기에게 찾아와 지혜와 지식을 가져감으로써 아무것도 모르는 순백의 상태로 세상에 태어나게 한다는 설정은 심보선의 시 「인중을 긁적거리며」(『눈앞에 없는 사람』, 문학과 지성사, 2011)와 그 시에 인용된 『탈무드』에서 빌려왔다고 한다.

 

무지는 어쩌면 소설 속의 모두가 바랐던, 가장 자유롭고 평등한 시작점일 것이다. 그렇게 당신의 안에서 새로운 세계가 탄생하거나,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

 

 

물론 누구나 그렇듯, 당신 또한 삶이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리라고 처음부터 기대한 건 결코 아니었다. 당신은 다음번에는 모든 것이 나아지리라고 매번 믿었다. 놀라운 건 당신이 지금도 그렇게 믿는다는 사실이다.(p.56)

 

 

관이 닫히기 전 마지막으로 본 그녀의 얼굴을 당신은 떠올린다. 정말 괜찮겠냐고, 당신은 물었다.

괜찮지는 않아요, 스파이디가 대답했다.

괜찮지는 않지만, 그저 없었던 걸로 할 수는 없는 일도 있는 거니까요. 저는 지금까지 언제나 돌아갈 곳이 있었습니다. 정말로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돌아갈 곳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저는 항상 돌아갈 곳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곳으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나는 이제 다른 곳을 향해 갑니다.(p.78)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온다. 내가 저 자비 없는 세상으로 내몰리는 날. 당신이 내게 빌려준 지혜가 모두 산산이 흩어지고, 내가 백지보다 희고 치어보다 연약한 존재로 돌아가버리는 날. 혈관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당신의 시간과 기억을 내 안에 조금이라도 남겨두기 위해 나는 입술을 다물고, 주먹을 꼭 쥐어본다. 두려운가. 그렇지는 않다.(p.79)


 

예상과 희망은 다르다. ‘정말로 괜찮을까’라는 물음 아래 너무나 다른 입장들이 탄생의 순간에 한데 모였다. 그들은 앞으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통해 삶으로 돌아갈 것이다. 시작과 끝의 경계를 자르는 두껍고 포근한 망각의 축복 속에서 ‘나’가 태어나고,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굿바이」에는 많은 레이어들이 존재한다. SF적 상상력이 담긴 배경 속에서 ‘당신’의 이야기는 ‘그녀’의 이야기로, ‘그녀’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로 긴밀하게 연결되며 이어지고 있었다. 다양한 형태의 삶에 희망과 실패, 망각과 시작이 맞물려 겹쳐 보인다. 다시 읽어내고 쓰는 데에만 해도 오랜 시간이 걸렸던 이 이야기를 지나오는 것은 태어나기 전의 시점을 빌려 다녀온 여행과도 같았다. 기꺼이 망각으로 나아가는 감각을 소중히 움켜쥐어 본다.

 

안녕은 새로운 안녕을 낳는다. 당신도, 그녀도, 나도, 이제 다른 곳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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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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