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가족도 결국 타인이다

감정적 단절 후에 알게 된 것
글 입력 2022.04.16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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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이 가장 많은 상처를 받는 곳은 바로 가족이다. 상처받는 이유의 근원은 기대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화내는 대신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주길 바라는 기대. 하지만 내 부족함을 가장 잘 아는 만큼 제일 거침없이 상처 입히는 이들. 우리가 가족에게 바라는 건 그 부족함을 알기에 날 더 포용해주는 것일 텐데 말이다.


‘가족’이기에 바라는 ‘무조건적 사랑’, 그에 대한 기대를 떨쳐 버려야 한다. 내 기대가 상대에겐 일방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가족일지라도’ 말이다. 가족 또한 내 기대가 미치지 않는, 그리고 그것을 수행해줄 의무가 없는 타인이란 걸 받아들인 순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작년 한 해 동안 나는 총 33회차의 상담을 받았다. 훌륭한 상담사님의 도움으로 종국엔 ‘가족에 대한 타인 개념’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 가족 구성원들과 나 사이 각각의 관계를 정의하고 감정을 정리했다. 다음과 같다.

 

 

아빠

- 폭력적이고 위협적인 존재.

- 동시에 가족에 아주 헌신적이고 묵묵히 희생하는 사람.

- 아주 기구한 삶을 살았음. 부모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한 또 다른 피해자.

- 때문에 본인을 전혀 돌보지 못하는 사람. 그에 대한 연민으로 드는 지독한 양가감정.

  

엄마

- 유대관계 좋은 편.

- 나에게 정말 잘 대해 줌. 다만 남동생을 편애함.

- 아빠의 가정폭력으로부터 날 방어해주고자 하는 의지가 낮았음.

  

남동생

- 애정에 대한 이해관계가 매우 차이 나는 관계. (내가 더 큼)

- 끈끈한 남매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지만 나에게 별 관심이 없다는 생각에 서운했었음.

- 마찬가지로 아빠로부터의 폭력, 그 외 외부 폭력에 대해 날 지지/위로/동정해준 적 전혀 없음. 오히려 피해망상으로 여기는 태도.

  

가족과 나

- 그럼에도 ‘화목한 가족’을 만들기 위해 혼자 부단히 노력했었음. 하지만 아무도 이에 동참해주지 않아 계속 상처받았던 기억.

 

 

가족이란 영원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이어야 한다고 고집했던 나에게, 가치관의 변화는 생각보다 갑자기 찾아왔다.


엄마는 나와 달리 아주 이타적인 사람이라 감당 범위 이상의 일을 도맡았고, 그러느라 늘 전화를 붙잡고 있었다. 함께 고된 일을 마치고 기진맥진한 채로 밥을 먹던 그날도, 엄마는 밥 먹기를 멈추고 길게 통화를 이어 나갔다.


예전 같았으면, ‘일 좀 줄여라. 몸도 약한 사람이 왜 그러냐. 돈도 안 되는 일이지 않느냐. 왜 남을 위해 엄마만 고생하냐.’라는 짜증 섞인 잔소리와 걱정을 잔뜩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문득, 저것도 엄마의 삶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선택한 엄마의 삶인데, 엄마는 바쁘고 돈 못 벌어도 저런 삶을 선택한 거구나, 싶어졌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나와 다른 사람이란 걸 인식하기. ‘타인 개념’을 깨달은 나는 이것을 각각 가족들과의 관계에 대입시켰다.


 

아빠: 내가 ‘감정적으로’ 끊어내야 할 타인

- 연민이란 감정에 더 이상 휘둘리지 말 것. 언제든 다시 폭력적으로 변할 여지가 있는 사람이란 걸 인지하기.

- 다소 극단적이더라도 아예 관계를 단절할 필요가 있음.

  

엄마: 내가 ‘영향’을 줄 수 없는 타인

- 왜 저런 아빠랑 이혼하지 않고 살지? 왜 저렇게 고생만 하지? 답답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삶이었다는 걸 인정하고 존중하고 관여하지 않기

- 또 날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보호해줄 ‘엄마’라는 기대 버리기.

- 특정 누군가를 더 편애하고, 다른 누군가에 더 소홀할 수 있는, 엄마라는 모성애적 존재가 아니라 그저 감정의 높낮이가 들쑥날쑥할 수 있는 한 명의 인간이란 점 자각하기

 

동생: 날 ‘타인’으로 대할 수도 있는 사람

- 어쩌면 일찍부터 나를 ‘누나’가 아닌 ‘타인’으로 대하고 있었다는 사실 깨달음.

- 내가 엄마아빠와의 관계를 정리한 만큼 동생도 이미 나와의 관계를 정리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 인정하기.

- 그리고 이제껏 날 타인으로 대했던 것에 서운해하지 않기.

 

 

가족도 타인이란 걸 인식하게 된 후 좋았던 점은 스스로를 더 지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화목한 가족을 만들기 위해 혼자 희생하거나, 가족이 준 상처라서 더 깊이 아파하거나 하는 일이 현저히 줄었다.


물론 여전히 가족들의 폭언에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아빠의 언성이 조금만 높아져도 순식간에 온몸이 굳고 기분이 바닥을 친다. 하지만 내가 영향을 줄 수 없는 것처럼 그들도 내게 영향 줄 수 없는 타인이란 걸 생각하며 전보다 회복 속도가 빨라졌다.


하지만 웃기게도 나는 어느 순간 불쑥 기대한다. 아빠가 진심으로 반성해서 더 이상 폭력적이지 않을 거란 기대, 숱한 성추행의 불쾌함과 가정폭력의 공포감을 동생이 함께 분노하고 위로해줄 거란 기대, 본인이 행했던 경미한 아들딸 차별을 엄마가 깨닫고 인정하는 날이 올 거란 기대.


그치만 수백 번의 실패를 겪은 결과 절대 불가능하고 비현실적인 일이란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젠 그게 각 개인의 특성이란 걸 안다. 과연 내가 나를 위한 상대의 변화와 노력을 요청할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나 또한 그들에겐 간섭할 권리가 없는 타인인 것이다.


가장 긴밀하다는 착각에 가장 큰 무례와 폭력을 가하고 있는 관계는 어쩌면 가족일지 모른다. 그것에서 분리되면 조금 슬프지만 상처받을 일이 훨씬 줄어든다. 가족도, 나도, 결국엔 서로 타인이다.

 

***

 

글을 기고하기 전 가명을 쓸 지에 대해 고민했다. 너무 사적인 얘기이고, 그럴 수록 감정 쓰레기통처럼 글을 쓸까봐 염려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나의 생각을 내 가족 중 누군가 읽게 될까봐 그냥 본명을 쓴다. 흔치 않은 내 이름 석자를 구글링해서 이걸 발견할 수 있는 가족이 있을까? 이 글이 누군가에게 닿게 될까? 역시 난 아직 완전히 기대를 버리진 못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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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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