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결핍에서 피어난 고통 - 뮤지컬 '스메르쟈코프' [공연]

살아있다는 증거는 무엇일까
글 입력 2022.04.17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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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스메르쟈코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메르쟈코프] 메인포스터.jpg

 

 

뮤지컬 <스메르쟈코프>는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스핀 오프 작품이다.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재해석한 뮤지컬로, 네 명의 형제 중 누가 아버지 '표도르 까라마조프'를 살해했는지를 추리해나가는 내용이다. 그중 아들로 인정받지 못하고 하인의 삶을 살던 인물이자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인 '스메르쟈코프'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극이 바로 뮤지컬 <스메르쟈코프>이다.

 

그렇기 때문에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내용을 조금이라도 익히고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를 관람하지 않았고, 관극 전 기본 정보 및 줄거리를 찾아 읽고 가서 겨우 극의 흐름을 따라갔으며, 그럼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이에 극의 줄거리와 해석보다는 대사와 인물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어 리뷰를 작성하고자 한다.

 

 

"아버지라 여겨지는 표도르를 살해한 후 며칠간의 긴 발작을 시작한 스메르쟈코프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 속에서 긴 여행을 시작한다. 포도르의 제안으로 시작한 모스크바 요리학교부터 학비를 벌기 위해 일하던 공동묘지까지. 산자를 자백하게 만드는 고문기술자부터 죽은자의 고백을 들어주는 조시마 장로까지.


수많은 시공간을 넘나들며 꿈인지 사실인지 모를 만남을 이어나간다. 그 만남 속에서 그는 하나씩 깨달음을 얻어나간다.


자신의 이름, 태어난 의미, 그리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까지."


- 뮤지컬 <스메르쟈코프> 시놉시스

 

 

이 극에는 무려 세 명의 배우가 주인공 스메르쟈코프를 연기하는데, 이는 스메르쟈코프의 어지러운 내면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연출이다. 각 스메르쟈코프가 어떤 때에 등장하는지, 각각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불명확하기에 이해하기 어렵지만, 오히려 그것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고 발버둥 치는 스메르쟈코프의 불안한 정신세계를 잘 나타낸다. 모든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스메르쟈코프라는 인물을 세 가지 키워드로 나누어 보았다.

 

 

 

Keyword 1. 물음



스메르쟈코프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인물이다. '나의 이름은 무엇인가.'라는 가장 원초적인 질문부터, 살아있다는 증거는 무엇이고 선과 악은 무엇이며 신이 자신을 힘을 증명하기 위해 악을 만들었다면 결국 신은 악을 없앨 수 없지 않느냐는 철학적인 질문까지. 답을 알 수 없어 고통 속에 내뱉는 그 질문들은 이야기 밖의 나에게도 참신하게 다가왔다.

 

스메르쟈코프는 누구도 의문을 품지 않는, '진리라고 통용되는 것'에 질문을 던진다. 요리 학교에서도 유일하게 귀족을 위한 빵을 만드는 것에 의구심을 가지고, 성직자 조시마 장로에게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의심을 품는 질문을 서슴없이 뱉는다. 이런 그에게 뿌리가 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1. 나의 이름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인가?

2. 죽음의 근거가 무덤이라면 삶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름에 대한 의문은 결국 그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다. 스메르쟈코프는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와 살아 있다는 근거를 찾고자 한다. 죽은 이처럼 묘지에서 지내던 스메르쟈코프는 삶의 증거에 대해 궁금증을 안게 되고, 결국 여정을 떠난다. 이러한 전반부 내용을 보며 스메르쟈코프가 그 여정의 끝에서 어떤 해답을 얻게 될지 기대되었다.

 

그러나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스메르쟈코프는 명확한 답을 찾지는 못한다. 이름의 뜻과 삶의 근거에 대한 답은 찾아내지만, 전반부에서 폭발할 듯 쏟아졌던 물음들에 비해 후반부에 그가 정의 내린 답은 몇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극을 볼 당시에는 머릿속에 물음표만 가득 찼고, 극이 굉장히 불친절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다시금 복기해 보면 그 자체가 스메르쟈코프라는 인물을 설명하는 듯하다. '불명확'으로 이루어져 있는 삶의 근거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무엇 하나 채워지지 않는, 설령 답을 찾아냈다 해도 그게 옳은 답인지 알 수 없는 스메르쟈코프의 삶이 해답 없이 나뒹구는 질문처럼 보인다.

 

또한 그가 던지는 질문은 대부분 이분법적이다. 삶과 죽음, 빛과 어둠, 신과 악. 그러나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분법적인 체계로 정의할 수 없다. 예컨대 '나는 신인가요 악인가요'라는 그의 질문에 두 선택지 중 하나로 답할 수 없다. 결국, 그의 질문들은 그의 결핍을 채워주지 못한다.

 

 

 

Keyword 2. 고통


 

마침내 스메르쟈코프가 찾아낸 삶의 근거는 '고통'이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스메르쟈코프는 고통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다. 스메르쟈코프는 끊임없이 괴로워한다. 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과정에서 동반되는 정신적 괴로움도 있겠거니와, 그는 실제로 간질을 앓고 있다.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자신은 어떤 존재인지 그 어느 것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는 스메르쟈코프에게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안겨다 주어 결국 그의 삶을 고통으로서 증명하게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삶의 근거가 고통이라고 한 스메르쟈코프는 고통에 의해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스메르쟈코프는 자신이 형들과 연결되어 있기에 형들의 죄악을 이어 받아 자신이 대신 발작을 하는 것이라 믿는다. (과거 간질은 악마의 저주라고 여겨졌다.) 그래서 그들의 욕구인 아버지 표도르의 죽음을 자신이 대신 행하면 고통스러운 발작이 멈출 것이라 생각했고, 결국 살인이라는 죄악을 저지른다.

 

스메르쟈코프는 악한 인물로 등장하는 공동묘지 주인 코폴라와 아버지 표도르 앞에서 한없이 약하고 당하는 인물처럼 그려지지만 결국 두 인물 모두 스메르쟈코프의 손에 죽게 된다. (코폴라는 직접 살해한 것은 아니지만 뮤지컬 연출 상 스메르쟈코프의 손에 죽는다.) 또한 성직자 조시마 장로는 스메르쟈코프를 구원시키려 하지만 오히려 그와의 대화에 말리고, 점점 타락해간다. 이러한 장면을 통해 스메르쟈코프는 선과 악 그 어느 범주에도 가둘 수 없는 인물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스메르쟈코프는 어떤 장면에서는 선 같지만 어떤 장면에서는 선명하게 악이다. 그가 극의 후반부에서 깨달은 이름의 뜻 '수증기'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 가능하다. 고정된 형태가 없는 수증기처럼 스메르쟈코프도 선과 악을 비롯한 그 무엇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인물인 것이다. 극 내내 자신의 명확한 정체성을 찾고 싶어 했던 스메르쟈코프의 정체성이 '불명확'라니 애잔한 마음마저 든다. <스메르쟈코프>에는 표현되지 않지만,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에 의하면 스메르쟈코프는 자살을 한다. 이에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자마자 그 수증기처럼 결국 사라지고 만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죽음으로써 삶의 근거인 고통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Keyword 3. 결핍


 

앞서 언급한 두 키워드 물음과 고통은 결국 그의 결핍에서 피어난 것들이다. 스메르쟈코프는 태어나자마자 쓰레기통에 버려졌기에 엄마의 얼굴을 알지도 못하며, 아버지에게 아들로 인정받지 못하고 하인으로 살아간다. 몸은 간질을 앓고 있어 시도 때도 없이 발작을 하고 자신을 형들에 비해 보잘것없고 약하다고 생각한다. 스메르쟈코프의 출생부터 일생 전반에 걸친 그의 결핍은, 결국 자신의 존재를 정의하는 것에 집착하게 만든다. 신성을 모독하고, 아버지를 죽이고, 모든 존재에 의심을 갖는 그는 어느 방면에서 봐도 '과해'보이지만, 그 과함은 결국 결핍에서 비롯되었다.

 

세 명으로 표현되는 내면세계, 형들과 이어져 있어 있다는 믿음, 미친 듯이 사람들을 만나며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찾으려는 행동, 유약한 인물임과 동시에 누구보다 악한 존재로 나타나기도 하는 스메르쟈코프의 모든 모습들이 스메르쟈코프의 채워지지 않는 결핍을 보여준다. 결핍을 채우는 방법조차 몰라 정신없이 사람을 만나고 여행을 하던 스메르쟈코프는 극의 마지막에 결국 자신의 결핍을 마주한다. 처음으로 엄마에 대한 노래를 부르는데, 쓰레기통에 버려졌기에 한 번도 엄마라고 불러보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세상을 향한 질문 속에서 자신을 찾으려던 스메르쟈코프가 마침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 것이다. 그러나 곧이어 죽음을 택했기 때문에, 삶이란 바깥의 것들로 입증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을지는 미지수다.

 

 

 

김지은 (1).jpg

 

 

[김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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